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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원준 Feb 20. 2020

육아휴직하니까, 기분이 어떻냐고요?

두 번째 육아휴직을 시작했다. 지난주 마지막 출근 날엔 사무실 이곳저곳을 돌며 직장동료, 선후배들에게 인사를 하러 다녔다.


이때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 중 하나는 “육아휴직하니까 기분이 어때?”였다.


나는 선뜻 이렇다 할 대답을 하지 못했다. 두 아이를 남의 손에 맡기지 않고, 아빠인 내가 돌볼 수 있게 됐다는 것은 정말 감사하고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3년 전 첫 번째 육아휴직을 했을 때에는 느낄 수 없었던 부담감이, 이번에는 조금 있었다.


그 ‘부담감’은, 올해로 다섯 살이 된 첫째로부터 비롯된 감정일 것이다. (이번 육아휴직은 돌이 갓 지난 둘째를 위한 것이지만 첫째가 더 부담이 된다는 아이러니한 상황.)


훗날 첫째가 이 글을 보게 된다면 서운할 수도 있겠으나, 지금이 그럴 만한 시기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어쩔 수 없는 '미운 다섯 살'


요즘 첫째의 행동은 종잡을 수가 없다. 무엇이든 본인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면 잔뜩 짜증을 낸다. 소리를 지르지 않으면 다행이다. 대부분의 경우,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 위해 온갖 최선을 다한다.


그중에서 아내와 내가 유독 참지 못하는 순간은 아이가 폭력적인 모습을 보일 때다. 손에 들고 있던 물건을 집어던진다거나 손찌검을 하면, 간신히 부여잡고 있던 이성의 끈이 '툭' 하고 끊어져 버린다. 그러면 아이 앞에서 금세 화를 내고 만다.


인내심을 발휘해 간신히 화를 참더라도 타격을 입지 않는 건 아니다. 누군가 바로 옆에서 2, 30분 간 소리 지르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그게 아무리 어린 아이라 할지라도, 내 자식이라 할지라도 그 순간을 버텨내는 일은 감정적으로 상당히 고된 일이다.


내가 육아휴직을 한다고 해서 첫째의 그런 모습이 하루아침에 나아질 리는, 당연히 없다. 앞으로 적어도 1년은, 더 했으면 더 했지 덜 하진 않을 것이다.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기에, 나에게 이번 육아휴직은 좋으면서도 동시에 긴장되는 일이었다.



육아휴직 첫날부터 아이에게 화낼 뻔한 사연


왜 불길한 예감은 틀린 적이 없는 건지. 첫째는 육아휴직 첫날부터 나를 시험에 들게 했다.


오랜만에 출근을 했던 아내는 피곤했는지 둘째를 재우러 방에 들어갔다가 아이와 함께 일찌감치 잠이 들었다. 첫째 취침 준비는 온전히 나의 몫이 되었다는 얘기다.


첫째를 전담 마크해야 하는 건 처음 있는 일이 아니었지만, 이 날은 유독 어려웠다. 조금이라도 더 놀고 싶어 하는 첫째의 짜증이 점점 절정으로 치닫고 있던 상황.


시간이 늦었으니 안 되는 건 안 된다고 단호하게 말해야 한다는 생각과, 그래도 육아휴직 첫 날을 평화롭게 마무리하고 싶다는 생각이 충돌했다.


'얘를 어떻게 해야 하지...' 머리를 굴리고 있었는데 내 허벅지 쪽에서 '찰싹' 소리가 났다. 통증이 느껴졌다. 첫째의 손찌검이 시작된 거였다.


"아빠 때리면 안 되지." 하고 낮은 목소리로 얘기해 보았지만 첫째는 이미 이성을 잃은 상태였다. 수 차례 내 몸 여기저기를 가격했고 강도도 점점 높였다. (다섯 살의 손찌검이라고 해서 얕보면 안 된다. 꽤 아프다. 그래서 맞으면... 화가 난다.)


그 순간 몇 번을 고민했는지 모른다. '훈육 모드'로 들어갈까. 조금만 더 참아볼까.


일단 조금 참아 보기로 했는데 첫째의 손은 멈출 줄을 몰랐다. 마치 내 인내심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알아보려는 듯했다. 지고 싶지 않았다.


'한 번만 더 참아보자...'

"퍽!"

'.... 참자... 참아야 하느니라...'

"퍽!"

'.... 후...'


첫째의 손은 계속 나를 향했다.


화를 내기 직전까지 감정이 올라왔지만 나는 좀 더 참는 쪽을 택했다. 평소 같았으면 아이를 들춰 업고 방으로 들어가 훈육을 시작했겠지만 이번만큼은 참아 보고 싶었다. 그래도 육아휴직 첫날 아니던가.


호의를 베푸는 대신 나는 무표정한 얼굴로 아이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굳이 화를 내지 않아도 지금 아빠의 기분이 어떤지, 첫째가 스스로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첫째의 손찌검은 금방 잦아들지 않았다. 나도 오기가 생겼다. '네가 언제까지 때리나 보자'라는 생각으로 참았고, 시선은 첫째의 얼굴에 계속해서 고정시켰다.


내가 눈으로 쏜 레이저가 나름 효과가 있었는지, 첫째는 점점 내 눈을 피했다. 나를 때리는 횟수도 조금씩 줄어들다 결국은 멈췄다.


그리고는 입으로 웅얼웅얼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무슨 말이냐고 물으니 그제야 조금 소리를 높여 나에게 말했다.


"아빠, 때려서 미안해요."


신기하게도 그 한 마디에 가슴속에 쌓였던 감정들이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왜 아빠를 때렸냐며, 다른 사람을 때리는 건 나쁜 행동이라고 지난번에도 얘기해주지 않았냐며 아이를 나무랄 필요도 없었다. 첫째의 말에서 충분히 진심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육아휴직 첫날의 마무리를, 해피엔딩으로 만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안심할 수는 없다. 내일이고 모레고, 첫째는 언제 자기가 사과했었냐는 듯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있으면 짜증을 낼 것이기 때문이다.


육아휴직은 내가 직접 아이를 돌보며 가족과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는, 감사한 시간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동시에 아이를 상대하는 과정에서 내가 내 감정을 얼마나 잘 조절할 수 있는지 끊임없이 심판(?)받는 기간이기도 하다.


앞으로 1년 간의 육아휴직이 얼마나 행복할 것인지는, 온전히 나에게 달렸다. 어깨가 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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