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의 글
글을 시작하기 전 저에 대해 짧게 소개하자면, 저는 여의도에 있는 벤더회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여 약 9년간 해외영업을 했었고, 그 후 2년 정도 온라인 패션플랫폼에서 재무 데이터분석 및 기획업무를 했었습니다. (과거형)
아래의 글은 그동안 짧게 적어놓았거나 머리에 담아두었던 생각을 갈무리하여 하나의 글로 묶은 것입니다. 평소에도 현상을 분석하는 걸 좋아하고, 주변사람 모두가 인정하는 극강의 T성향인 사람의 생각을 글로 옮겨 적은 것이라 취업준비생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것과는 다소 거리가 있고, 조금은 자극적일 수도 있다는 점 미리 알립니다.
목차는 아래와 같습니다.
1. 패션이 너무 좋아요. (feat. 지원동기)
2. 나는 특별한 사람입니다.
3. 대기업에 들어가고 싶어요.
4. 자격증을 따야 할까요?
5. 제2외국어는 어떻게 준비하나요?
6. 저는 비전공자인데요.
7. (비전공자이지만,) 디자이너가 되고 싶어요.
8. 회사는 왜 나의 미래를 봐주지 않을까요?
9. 아르바이트를 해 볼까요?
왜 이 업계에서 일하고 싶은가요? 예쁜 옷을 사 입고, 자기 자신을 꾸미는 게 너무 좋아서 그런가요?
그래서 왜 이 업계에서 일하고 싶은가요? 언젠가는 내가 좋아하는 옷을 직접 만들어 보고 싶어서인가요?
그런데 그것뿐인가요? 다른 지원동기는 없나요?
인스타그램을 보면 멋진 옷을 입고, 예쁜 카페나 음식점에 가서 맛있는 음식을 자랑하는 사진이 많잖아요. 그런데 맛집투어를 다니고 먹는 게 너무 좋아 요리사가 되거나 식품회사에 가겠다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데, 예쁜 옷을 사 입고 꾸미는 게 좋아 디자이너가 되거나 패션회사에 취직하는 게 꿈이라는 사람은 왜 그렇게 많을까요?
이 업계는 그저 옷을 좋아하는 이유 하나로 일하고 싶어 하고, 실제로도 그렇게 시작한 사람이 많은데요, 다른 업계랑 비교하면 대단히 이상한 겁니다. 철강회사를 다니는 사람들은 취업 전부터 쇳덩이가 좋아서 철강회사에 취직한 것이라 생각하나요?
잠시 타인의 시선으로 취향과 직업을 구분해서 생각해 보아요.
예쁜 자취방에서 살고 싶어 오늘의집과 이케아에서 소품을 사고, 유튜브에서 다른 집 인테리어를 구경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도배나 타일을 배워 셀프인테리어를 해 보겠다는 것과 아예 도배로 돈을 벌어 보겠다는 건 삶의 방향이 완전히 달라지는 결정입니다. 소품을 사거나 셀프인테리어로 집을 꾸미는 건 취향을 반영하는 삶이지만, 인테리어업자가 되겠다는 건 직업으로서의 삶입니다.
요즘 젊은 사람 중에 꾸미는걸 안 좋아하고, 예쁜 카페나 맛있는 음식점 찾아다니는 걸 안 좋아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나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디자이너가 되거나 요리사가 될 필요는 없습니다. 다른 업계에서 돈을 많이 벌어 그 돈으로 예쁜 옷을 사 입고, 맛집을 찾아다니며 맛있는 음식을 사 먹는 것도, 본인의 취향을 반영하며 멋지게 살 수 있는 방법이에요.
네. 여러분은 모두 특별한 존재입니다. 다른 사람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유일무이한 존재이지요.
하지만 나만 남들과 다르게 살고 싶고, 나만 특별하다고 생각할까요? 아니요. 여러분 주변의 대부분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나는 보잘것없다. 나는 평범하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 ¹⁾은 드뭅니다. 다른 사람들도 남들과 다르게 살기 위해 노력하고, 특별한 존재가 되길 바랍니다.
모두가 특별해지길 바라는 세상에서는 특별해지고 싶다는 생각 자체가 대단히 평범한 생각에 불과합니다. 평범하고 보잘것없는 존재가 되지 않으려고 노력할수록, 대체로 전형적이고 진부해집니다.
저 위에 제가 질문한 지원동기에 대해 그저 패션을 좋아한다는 답변뿐이라면, 여러분은 특별한 사람이 아닌 수많은 사람 중 하나일 뿐이에요. 냉정히 말해 취향과 직업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은 특별한 사람이 아닙니다.
‘내가 가진 패션과 옷에 대한 열정은 누구보다 뛰어난데, 일만 시켜주면 누구보다 잘할 수 있는데’라는 말은 특별하게 들리지 않아요. 여러분은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세상에 하나뿐인 존재이지만, 회사입장에서는 그저 다른 사람들과 같은 말을 하고 있는 사람 중 하나일 뿐입니다.
나는 남들과 다르고, 나는 특별하다는 믿음은 세상을 살아갈 때 큰 도움이 됩니다. 그걸 부정하려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때론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스스로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운동에는 근력만 중요한 게 아니고, 유연성과 밸런스도 중요합니다. 나는 특별한 존재라는 믿음이 근력이라면, 제3자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자신을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은 유연성입니다. 둘 중에 더 중요한 건 없어요. 둘 다 중요합니다. 한쪽만 발전시켜서 근자감이나 자기혐오에 빠지지 마세요.
¹⁾ 이들은 역설적으로 드물기 때문에 오히려 더 특별한 부류입니다. 이런 부류는 대체로 자신감이 부족한 사람으로 보이지만, 간혹 냉철한 자기객관화를 통해 자신의 평범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아주 높은 자존감을 가진 사람도 있습니다.
종종 아무 설명 없이 대기업에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밑도 끝도 없는, 현실감각이 떨어지는 질문을 봅니다. 이 질문에 대한 대략적인 답을 모르는 사람은 대기업에 못 들어갑니다.
신입으로 대기업에 입사하는 가장 쉽고 빠르고 효율적인 방법은 좋은 대학에 다니며 높은 학점과 뛰어난 영어실력을 가지는 것이고, 아주 특별한 케이스를 제외하면 이를 이미 알고 있는 사람만이 대기업에서 일할 수 있습니다.
다양한 인재를 원하는 시대에 꼭 이런 틀에 박힌 방식만 필요한 건 아니라고요? 네 맞습니다. 다른 방법도 있어요. 여러분이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정도의 성과를 가진 사람이라면 가능합니다. 신문에 나올 정도의 성과라면 누구나 인정해 주는 사회입니다.
LG에선 간혹 본인의 위험을 무릅쓰고 사람을 구한 의인에게 원하는 계열사에서 일할 수 있는 조건으로 입사를 제의하기도 합니다.
스타일난다를 창업한 김소희 씨는 4년제 대학출신도 아니고, 알려진 영어점수나 자격증도 없지만, 패션업계에서 성공했습니다. 무신사를 창업한 조만호 씨도 알려진 스펙이 별로 없지요.
나도 그런 사람 중 하나일 거라고요? 그렇다면 위에 2번을 다시 읽고 오세요.
다르게 말하자면, 대기업에 들어가기 위해 위에 언급한 3가지를 모두 무시하고 다른 방향으로 노력하는 건 대단히 어렵고 비효율적인 방법이라는 겁니다. 불가능하진 않아요. 단지 매우 어렵고, 비효율적이고, 운도 따라줘야해요.
내가 남들보다 특별히 더 운이 좋아 가능할 거 같다면, 굳이 어려운 방향으로 노력하지 말고 로또를 사 보세요. 특별한 운을 가진 사람이라면 대기업에서 일을 하지 않더라도, 좋아하는 옷을 맘껏 사 입으며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생각해 보니 진짜 운이 좋았다면, 수지나 차은우로 태어나지 않았을까요? 어차피 패션의 완성은 얼굴인데...)
원단과 봉제퀄리티가 좋은 옷이 색감도 좋고 적절한 부자재까지 있다면, 그 옷은 고객의 선택을 받기 쉬울 겁니다. 그런데 원단과 봉제가 좋지 않은데, 이상한 부자재만 많다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아마 디자인도 애매하고, 불필요한 부자재로 낮은 품질을 가리려고 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요?
회사에서 바라보는 여러분의 스펙을 위 예시에 대입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학교, 학점, 영어 = 원단 퀄리티, 봉제 퀄리티
그 외 스펙 = 그 외 요소
이 중에서 가장 바꾸기 어려운 게 출신학교인데, 인지도가 낮은 학교 출신은 어떻게 하냐고요? 그럼 높은 학점과 뛰어난 영어실력을 가지셔야 합니다. 이 3가지는 다른 스펙으로 커버하는 게 아닙니다. 3가지 중 한 가지가 부족하다고 생각한다면 나머지 2가지로 커버해야 합니다. 2가지가 부족하면 다른 1가지만이라도 월등해져야 합니다.
학점과 영어점수가 부족하니 자격증을 따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말고, 자격증을 준비할 시간과 비용, 노력으로 학점과 영어점수를 먼저 만드세요. 자격증을 준비하기 전에 본인이 생각할 때 이 정도면 됐다고 생각하는 정도의 학점과 영어점수를 만들어 놓는 게 먼저입니다.
패션업계에서 실무적으로 인정해 주는 자격증은 거의 없습니다. 섬유/의복분야의 각종 산업기사나 기사 자격증은 정부에서 관리하는 국가기술자격임에도, 현직자들 중에는 이런 자격증이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더 많아요.
MS office, Adobe suite, clo를 포함한 CAD 같은 업무도구 역시 자격증이 있어야지만 다룰 수 있는 것도 아니라서 관련 자격증 하나 없이 잘 다루는 사람도 많고, 반대로 자격증이 있어도 잘 다루지 못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회사에서도 그걸 알기에 자격증에 큰 점수를 주진 않습니다. 그저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한 노력을 참고해 보겠다는 정도일 뿐이니, 자격증에 너무 높은 비중을 두진 마세요.
기본이 잘 준비되어 있다면 자격증은 본인을 좀 더 돋보이게 하는 포인트장식이 될 수 있겠지만, 부족한 점을 메꿔주지 못합니다. 그렇기에 2급이 좋냐, 1급이 좋냐 따위의 글 역시 무의미합니다. 충분히 준비가 된 사람에게는 당연히 2급보다 1급이 더 돋보입니다. 아주 조금이지만요.
신입채용 시 학교 + 학점 + 영어가 최우선적으로 평가되지만, 제2외국어는 약간의 예외가 있어요.
몇몇 언어의 경우, 그 언어를 원어민급으로 구사가 가능하거나, 현지에서 오랫동안 생활했다면 영어가 부족해도 됩니다. 경우에 따라 학점이 낮아도 됩니다. 영어 + 주요 언어를 원어민급으로 잘한다면 낮은 확률이지만, 학교조차 무시할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를 오해하지 마세요. 제2외국어가 부족한 학점과 영어점수를 커버해 줄 수 있는 상황은 몇 가지 조건을 만족했을 경우뿐입니다.
일단 회사에서 원하는 언어특기자는 진짜 그 언어가 지원자의 특기인 경우를 말합니다. 그러니 최소 B2수준의 실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의미가 없습니다. 일상회화나 비즈니스회화가 가능한 정도가 아니라면 실무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되므로, 초급 수준의 제2외국어는 위에서 언급한 자격증과 비슷한 취급을 받습니다.
어찌 보면 질문자체가 잘못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 정도의 수준은 이제부터 준비한다고 얻기 힘듭니다. 오랜 시간을 통해 이미 장착된 상태여야 합니다.
다음으로 어떤 언어의 선호도가 높은가에 대해 이야기해 볼게요.
패션업계에선 프랑스어나 이탈리아어를 많이 인정해 줄 것이라 생각하겠지만, 이 2가지 언어는 취업시장에서 선호도가 상당히 낮습니다. 명품 브랜드의 한국지사에 입사를 생각하는 게 아니라면 실무에서 매우 제한적으로 사용되는 언어이고, 그 업계에서조차 일반적으로 영어를 사용하는 업무환경에 더 많이 노출됩니다.
언어 특기를 살려 취업하려면, 결국 해당 업종과 직군에 맞춰 그 회사에서 우대하는 언어가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중국어, 베트남어, 말레이인도네시아어, 스페인어, 일본어, 프랑스어정도가 그런 언어이고, 이탈리아어, 태국어, 미얀마어, 캄보디아어, 벵골어, 포르투갈어 정도를 후순위로 추가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후순위의 일부와 언급하지 않은 나머지 언어는 모 아니면 도입니다. 희소해서 회사에서 모셔가든가, 활용도가 떨어져서 원하지 않던가요.
실무에서 업종, 직군을 가리지 않고, 영어 다음으로 많이 사용되는 언어는 현재 중국어입니다. 하지만 중국어는 그만큼 구사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중국어 특기만으로 취업은 쉽지 않습니다. 다른 기본적인 요소가 잘 준비되어 있고, 이에 더해 중국어도 준비되어 있다면 큰 무기가 될 것이고, 일단 취업이 성공한 이후 실제 업무상 중국계와 소통이 많은 환경 속에서는 압도적인 부러움을 받을 수 있을 겁니다.
중국어를 제외하고, 위에서 언급한 언어를 특기로 가지고 있다면 업종, 직군에 따라 영어를 못해도 일부 커버가 가능합니다만, 말했다시피 해당 언어가 유창하지 않은 경우, 결론은 또 한 번 영어가 우선입니다. 어차피 비즈니스환경에서는 상대방도 나도 영어를 먼저 사용합니다. 어정쩡하게 초급 수준의 다른 언어를 익힐 시간과 노력으로 영어를 중급 또는 고급으로 만드세요. 취업 시에도 취업 이후에도 그게 더 많은 도움이 됩니다. (영어가 이미 실무적으로 막힘이 없을 정도라면, 다른 제2외국어를 배우셔도 돼요.)
의류 섬유 패션업계는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세분화된 산업이라 업종, 직군이 다양합니다. 일단 업계 외부사람들이 흔히 오해하는 게 패션 = 디자인이라는 것인데, 실제 업계에서 디자이너 직군은 소수입니다.
이 업계에 관심이 많지 않은 사람들은 물론이고, 취업준비생 역시 패션업계에 대한 어떤 환상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체로 업계가 가진 패셔너블하고 스타일리시한 이미지를 가지고 싶어, 이 업계에서 일하고 싶은 경우가 많아 보여요. 인스타그래머블한 삶, 솔직히 남들한테 자랑할 만하고 멋지잖아요...? 하지만 스타트업 종사자들도 스타일리시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고, 정유사나 이차전지 업계도 멋진 사람들은 매우 많습니다. 굳이 패션업계에서 일하지 않더라도 주변에 꾸미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은 어마어마하게 많고, 돈을 많이 번다면 더더욱 알아서 잘 꾸밉니다.
비전공자인데 패션회사에서 마케팅을 하고 싶어요 ²⁾라거나, 옷이 너무 좋아서 디자이너나 패션MD가 되고 싶어요 ³⁾와 같은 글을 보면, 명확한 업무내용도 잘 모르는 상태에서 그저 본인이 생각했을 때 업계나 직군명칭이 가져다주는 소위 있어 보이는 이미지를 이유로 패션업계에서 일하고 싶은 게 아닌가 의문이 듭니다.
²⁾ 마케팅 직군은 패션에만 국한된 직군이 아니기에 패션을 전공하지 않았더라도 하고 싶으면 하면 됩니다.
³⁾ 디자이너와 MD는 전혀 다른 능력을 필요로 하는 직군이라, 이런 글은 '소리를 좋아하여 피아니스트나 철도기관사가 되고 싶다' 또는 '인체에 관심이 많아 의상디자이너나 해부병리학자가 되고 싶다'와 비슷한 느낌을 줍니다.
말이 나온 김에 MD에 대해 잠시 이야기해 볼게요. (내용이 길어서 MD에 관심이 없다면 건너뛰세요.)
위에서 마케팅이 패션에만 국한된 직군이 아니라 말했지만 MD 역시 패션업계만 존재하는 직군이 아닙니다. 올리브영, 다이소, 이마트, 오늘의집, 편의점과 같이 대부분의 소매업에는 MD가 존재합니다. 요즘은 하이브나 스타벅스 같은 곳에서도 자체 기획 굿즈가 주 수익원이 되고 있어서 별도의 MD를 채용하고 있고요.
뛰어난 MD란,
1. 고객이 구매할만한 상품을 잘 골라
2. 부족하거나 넘치지 않는 적당한 수량을 정해
3. 최대한 저렴하게 사 오거나 생산하고
4. 최대한 높은 마진을 붙여
5. 정해진 기간내에 다 팔 수 있는
상품을 기획할 수 사람입니다.
나는 특별한 사람이라서 남들과는 다른 취향을 가지고 있다고요? 아쉽지만 본인의 취향보다는 대중이 원하는 게 무엇이고, 그들이 어떤 상품을 살지 파악하는 안목이 더 중요합니다.
그리고 너무 많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수량을 예측할 수 있어야겠죠. 너무 모자라면 재생산을 해야 하거나, 추가 수익을 포기해야 하고, 너무 많으면 재고가 생깁니다. 고객이 구입을 주저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높은 가격을 책정할 수 있는 능력도 필요하고요. 상시판매상품이 아니라면 언제 출시해야 할지도 정해야 합니다. 반팔티를 6월 2주 차에 출시할지, 5월 마지막주에 출시할지가 최종 판매량에 영향을 주는데, 날씨는 매년 변동하는 것이라 예측이 더 힘듭니다. 출시한 제품이 계획보다 빨리 팔리지 않으면 창고비가 발생합니다. 시즌이 지나도 물건이 안 팔리면, 생산비나 구매비용을 불필요하게 많이 지출하게 된 것은 물론이고 재고처리비까지 발생합니다. 지난번에 기획했던 상품의 판매가 부진했다면, 왜 부진했던 것이고 어떻게 개선해야 할지도 당연히 고민해야겠지요.
MD 1명이 상품 하나만 맡는 것도 아니에요. 여러 개의 상품을 동시다발적으로 기획해야 하니, 공장의 캐파를 감안해서 내가 요구하는 수량이 적절한 건지, A라는 상품과 B가 서로 비슷한 컨셉이라 시장에서 경쟁을 하진 않을지, 옆 팀이 기획한 상품의 생산으로 인해 우리 팀이 기획한 상품의 생산차질을 겪진 않을지, 여러 상품의 출시일이 한 번에 몰리면 매장에 부하가 오거나, 다른 상품의 판매가 소홀해지진 않을지와 같은 것도 세심히 조정해야 합니다.
따라서 뛰어난 MD란 회사에 최대한 많은 이윤을 가져다줄 수 있는 상품을 많이 그리고 잘 기획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상품기획에는 안목만큼 적정 수량과 가격을 책정할 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무리 안목이 좋아도 수량이나 가격, 출시일 등을 잘못 설정하면 그 상품은 회사에 손해를 가져다줍니다.
그렇기에 MD는 솔직히 봉제기법이나 의류의 부위별 명칭, 원단의 종류 같은 거 잘 몰라도 되고, 기초적인 것만 나중에 배워도 됩니다. 의류, 가구, 소품, 화장품, 생활용품, 굿즈 등 어떤 제품이라도 최대한 많은 이윤을 가져다주는 상품을 잘 기획하는 사람이 좋은 MD이며, 실제로도 비교적 많은 MD들이 업종을 넘나들며 이직을 합니다.
MD는 상품을 기획하고, 마케팅은 고객이 특정한 행동을 하도록 유도하는 게 주 업무입니다. 그래서 MD는 셈을 잘해야 하고, 마케터는 고객의 행동을 잘 분석해야 합니다. 숫자를 잘 다루거나 데이터 분석을 잘하고 추가적으로 패션에 관심이 많다면 더없이 좋은 인재이지만, 반대로 패션을 좋아하지만 계산에 서툴거나 데이터 분석에 소질이 없다면 회사에서 그런 사람을 MD나 마케터로 채용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니 회사입장에선 “저는 패션이 좋아서, 패션회사에서 MD를 하고 싶습니다”는 지원자의 말에 “그래서 어쩌라고?”라고 반응할 수밖에 없겠죠. “저는 계산이 빠르고 일정관리도 잘하는데,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고 DIY도 취미로 하고 있으니, 가구와 소품을 판매하는 이 회사의 MD로 일하고 싶습니다.”라고 접근해야 합니다.
이런 이유로 MD나 마케팅직군에는 상경계열, 사회과학계열이 많고, 오히려 흔히 전공자로 간주되는 패션이나 섬유전공이 유리한 직군이 결코 아닙니다. 따라서 이런 직군을 희망하는데 “저는 비전공자인데요”라며 고민하고 있다면, 내가 왜 이런 직군에서 일하고 싶은지 다시 되돌아보세요. 이 일을 진짜 하고 싶은 게 아니고, 이 업계가 가진 이미지를 얻고 싶었던 건 아니었나요?
그 외에도 벤더회사라면 해외영업이 주요 직군일 것이고, 리테일회사에선 영업관리, MD, 마케팅직군이 주요 직군으로 우대받을 것이고, IT가 접목된 테크커머스라면 개발자들도 우대받을 것입니다. 이들 모두가 패션산업이라는 큰 테두리에서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패션회사에도 인사팀이나 재무팀이 필요할 테고요. 이런 직군은 굳이 패션을 전공하지 않아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관련직무를 수행할 능력과 지식이 있다면, 패션에 대한 관심정도로 충분합니다.
(아래 내용은 대체로 비전공자들을 위한 것이니, 전공자분들은 크게 신경 쓰지 마세요.)
의상디자인은 비전공자가 쉽게 발을 들일 수 없는 분야입니다.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면 의상을 전공하는 게 가장 쉬운 방법입니다. 잘 모르고 곁눈질로 보고 배우며 시작하는 경우도 있겠죠. 하지만 업계에서 버티고 살아남으려면 결국 전공자 수준으로 배워야 합니다. 아무리 학문과 실무 간 차이가 있어도, 실무를 하며 기초를 쌓는다는 건 정말 어렵고 비효율적인 과정입니다.
위 글을 읽고, 대학을 다시 가야 하나에 대해 고민하기 전, 왜 디자이너가 되고 싶은지 고민해 보세요.
- 아주 오래전 이야기이지만, <허준>이라는 드라마가 종영하고 한동안 한의학과 입결이 치/의학과와 맞먹었던 적이 있습니다.
- 비슷한 예로 <호텔리어>라는 드라마가 끝나니 호텔경영학과나 관광경영학과의 입결이 치솟았던 적도 있고요.
- <내 이름은 김삼순>이 끝나자 파티시에가 꿈이라는 사람들이 늘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예상하듯 미디어 속 이미지가 멋져 보였기 때문이에요. 현재 한의학과, 호텔경영학과의 경쟁률은 어떻게 되었나요?
그 시절 사람들이 더 멍청해서 그런 결정을 한 걸까요? 아니오. 지금도 사람들은 이미지에 쉽게 휘둘립니다.
자기 자신이 패션에 대한 환상을 가진 사람이 아닌가 되돌아보세요. 나는 그런 부류의 사람이 아니라 생각하나요? 그렇다면 위에 2번을 다시 읽고 오세요.
그래도 꼭 의상디자인을 배워서 디자이너가 되고 싶은가요? 그럼 스스로에게 왜 디자이너가 되고 싶은지 질문해 보세요. 무엇을 배워 어떤 복종의 디자이너가 되고 싶은지가 아니고, 왜 그걸 배워서 왜 그 복종의 디자이너가 되고 싶은지 고민하셔야 합니다.
위에 적은 1~6번 글의 대부분은 무엇을 원한다.는 글에 왜 그걸 원하는가?라고 반문하는 과정을 통해 나왔습니다. 왜?라는 질문의 답을 알아야, 무엇을 할지 명확해집니다. 성인이라면 순서를 반대로 뒤집어, 하고 싶은 걸 먼저 정한 후 거기에 이유를 갖다 붙이지 마세요. 여러분의 시간과 비용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패션산업은 본질적으로 환상을 파는 산업 ⁴⁾입니다. 이런 업계에서 일하고 싶다면, 여러분은 환상에 이용당하면 안 됩니다. 환상을 이용해야 합니다. 왜 하고 싶은지도 모르고, 그냥 일단 하고 싶다면 가스라이팅을 당한 게 아닌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주변에 흘러넘치는 환상과 이미지에 이용당하지 않고, 이용하는 사람이 되려면 왜를 먼저 고민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다음으로는 전공자들 중 실제 의상 디자이너로 취업하는 비율이 얼마나 되는지도 알아보세요.
전공자로서 배울게 많음에도 MD나 마케팅과는 달리 의상디자이너는 다른 업종의 디자이너와 상호이직이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 어떤 의류회사에서도 디자이너는 소수직군이고, 비율은 아무리 많아도 전 직원의 20%를 넘지 않습니다. 결과적으로 디자이너 수요는 한정되어 있고, 그 안에서 경쟁이 치열합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디자이너로 채용된 후에도 여러분의 예술혼과 삶의 철학을 듬뿍 담은 나만의 디자인을 구현할 기회는 거의 없습니다. 회사는 여러분의 개성을 추구하고 자아를 실현하라고 돈을 주고 여러분에게 공간을 빌려주는 곳이 아닙니다. 회사는 여러분을 고용해 이윤을 창출해야 하는 곳이고, 회사가 원하는 걸 여러분의 노동으로 구현하고, 그 노동과 결과에 대한 보상으로 여러분에게 임금을 주는 곳입니다.
아무리 당사자 눈에 예뻐 보여도, 브랜드의 방향성, 주요 고객층의 성향, 현재 트렌드에 맞지 않는 디자인을 하고 있다면, 회사가 볼 때 정성스럽게 쓰레기를 만들고 있는 걸로 비칩니다. 그러므로 디자이너는 자기 눈에 예쁜 제품을 구상하는 게 아니고, MD의 눈에 들어올 만한 제품을 구상해야 합니다.
회사에서 자기의 개성을 뽐내고 싶다면, 여러분이 직접 회사를 설립하고 여러분의 돈으로 하면 가능합니다.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지 않느냐, 자기 이름을 걸고 패션쇼를 하거나, 유명한 디렉터들도 있지 않느냐 할 겁니다. 그들 대부분 어떤 학교를 나왔는지 보세요. 연간 3자리 수가 넘는 사람들이 유명 해외패션스쿨로 유학을 떠납니다. 그중에서 자기 이름을 걸고 패션쇼를 하고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요? 왜 굳이 디자인과 옷을 통해 세상을 바꿔야 하나요? 정치권이나 법조계에 진출해서 세상을 바꾸면 안 되나요? 전국의 국회의원, 시의원, 자치단체장과 같은 선출직 공무원은 4년간 5,000명 가까이 선출되고, 로스쿨에서 배출되는 변호사는 연간 2,000명 정도 됩니다. 몇 년에 한 두 명 정도 유명세를 얻는 디자이너보다 훨씬 현실성이 있어 보입니다.
그런 정규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성공하는 사람이 있지 않냐고요? 네, 세상에는 당연히 예외라는 게 있습니다.
유퀴즈에서 회화를 전공한 미대 출신이 스튜어디스를 하다가 관두고 홍콩의 투자은행에 취직해서 일하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로스쿨을 졸업한 후 경찰간부로 특채된 사람(???)을 본 적이 있습니다. 이처럼 만화 속 설정으로 넣어도 욕먹을 만한 인물은 분명히 현실에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예외는 모두에게 적용할 예시로 적당하지 않습니다.
95%의 사람은 평범합니다. ⁵⁾ 여러분 스스로 상위 2.5%라 자부하는 건 자유지만, 저는 평범한 95%를 위해 일반적인 내용을 알려드리는 것입니다. 패션산업은 특별한 사람들을 위해 존재하고 유지되는 게 아니고, 95%의 평범한 대중들이 돈을 가져다주기 때문에 유지되는 산업이라는 것도 잊지 마시고요.
⁴⁾ 패션업계를 포함하여 현대 자본주의 시장의 모든 소매업계는 환상을 함께 팝니다. ('이 걸 사면 삶이 더 윤택해질 거야', '이걸 사용하면 너는 더 멋쟁이가 될 거야'...) 패션업계는 단순히 고객이 되고 싶다는 마음뿐만 아니라, 아예 업계종사자가 되고 싶다는 환상까지 심어주고 있으니, 다른 소매업계 대비 대단히 성공적으로 환상을 팔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⁵⁾ 정규분포에서 표준편차 2 범위를 벗어난 상위 2.3%와 하위 2.3%를 제외한 나머지 약 95%를 평범한 사람이라 정의했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사랑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상대방의 인품이 나보다 더 훌륭하고 능력이 뛰어날수록, 그 사람이 나를 사랑할 가능성은 더 낮아집니다. 나의 사랑이 소중한 만큼, 그 사람의 사랑도 소중하니까요.
지방의 중소기업에서 지금의 우리는 유명하지도 않고 많은 보상을 해 줄 수도 없지만, 우리는 열정적인 조직이고, 10년 후 반드시 대기업이 될 것이라 주장해도 선뜻 그 회사에 취직할 마음이 생기기 어렵듯, 기업에서도 지금은 보여줄 수 있는 게 패션에 대한 열정 하나뿐인 지원자가 10년 후에 훌륭한 인재가 될 것임을 예상하고 채용하지 않습니다.
패션업계에는 비전공자들이 많습니다. 배운 적은 없지만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그중에서는 이를 실제로 증명하는 사람들도 있지요. 아무튼 이러한 점은 패션산업의 진입장벽이 낮고, 그만큼 경쟁이 치열하다는 걸 뜻합니다. 이 치열한 경쟁 속에서는 미래의 나를 생각해서 채용해 달라고 호소하지 말고, 현재의 나를 보고 채용해 달라고 설득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기업의 현재를 보고 좋은 기업에서 일하고 싶듯, 회사 역시 지원자의 현재를 보고 좋은 인재와 함께 일하고 싶어 합니다. 여러분 스스로 자기 자신을 소중히 여기듯, 여러분을 채용할 조직 역시 조직의 일부가 될 사람들을 신중하게 선택하고 있다는 점을 잊지 마세요. 상대방의 연애를 소중히 여기지 않고, 나의 연애만 소중하다 여기는 실수는 하지 말자고요.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거나, 진로에 대한 고민이 있어서 약간 갈팡질팡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아르바이트나 인턴을 해보는 건 대체로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일단 실제 업무환경을 간접적으로 체험해 볼 수 있어 진로를 고민할 때 약간의 도움이 될 겁니다. 또한 시스템이 유연한 (= 기업 규모가 비교적 작은) 회사에서는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정직원이 되는 경우도 비교적 많습니다.
다만 채용과정이 규정화되고 시스템이 잘 갖춰진 (=기업 규모가 비교적 큰) 회사라면, 그 회사에서 아르바이트 경험이 정직원 채용 시 혜택이 될 수 있음을 명시적으로 알려주지 않았다면 불필요한 기대는 일단 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그저 면접 시 참고할 만한 부분이 될 수 있다는 정도로만 생각하세요. 예외적인 케이스가 없는 건 아니지만, 그 낮은 가능성이 나에게 적용될 것이라 바란다는 건 대체로 좋은 선택이 아닙니다.
최종적으로 사무직을 원하지만, 당장 할 수 있는 게 매장 아르바이트뿐이라면, 매장에서의 경험을 그나마 어필할 수 있는 직군은 VMD나 영업관리 정도일 것이고, 나머지 직군의 경우 매장과 업무연관성이 떨어집니다. 이런 경우는 그냥 이러한 경험을 해보기도 했다는 정도를 아주 작게 어필하는 정도에 불과할 수 있으니, 아르바이트 결정 시 참고하세요.
이와 별개로 만약 본인이 매장과 잘 맞는 성향이라면 굳이 사무직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업무가 더 우위에 있는 것도 아니고 매장직이나 기능직이 본인 커리어와 더 잘 맞는다면, 그 업무를 통해 높은 실적과 성과를 쌓아 사무직보다 더 좋은 대우를 받을 수도 있는 세상입니다.
**끝으로 목차에는 없지만 두 가지 개인의견을 덧붙여봅니다.
[첫번째 생각]
세상에는 두 가지 기준(중요도와 시급성), 네 가지 종류의 일이 있습니다. 시급하고 중요한 일을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는 건 누구나 알기에, 구멍가게의 사장도 시급하고 중요한 일을 가장 먼저 처리합니다.
두 번째로 무슨 일을 할 것인가에서 훌륭한 회사와 그저 그런 회사가 나뉜다고 생각합니다. 훌륭한 회사는 중요하지만 시급하지 않은 일에 더 많은 리소스를 투입하고, 그저 그런 회사는 중요하지 않지만 시급한 일에 더 많은 리소스를 투입합니다. 훌륭한 회사에서는 오늘 할 일을 오후 3시에 마치면, 1년에 걸쳐 진행하는 과제를 진행하지만, 그저 그런 회사에서는 오늘은 평소와 달리 일이 일찍 끝났다고 생각합니다.
선택권은 항상 스스로가 생각하는 것보다 적을 수밖에 없지만, 선택이 가능한 경우 가급적 전자와 같은 회사에서 일할 수 있길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선 여러분들이 바로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패션뿐만이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지금은 미흡하지만 앞으로 잘할 수 있다는 말만 하는 사람보다, 남보다 먼저 미리 준비하고 있던 사람이 대체로 더 잘합니다. 중요한 일이 시급한 일이 되고 나서야 하는 사람과 중요한 일이 시급한 일이 되기 전에 하는 사람간의 차이는 무척 큽니다.
[두번째 생각]
패션업계에서 취업과 관련된 걱정과 고민의 많은 부분은 “업계인들이 멋있어 보이고 전문가처럼 느껴지지만, 나도 왠지 잘할 수 있을 거 같다”는 점에서 시작한 것이 아닌가 추측합니다. 기회만 있다면 잘할 수 있을 거 같지만, 막상 부딪혀 보니 취업은 힘들고 쉽지가 않거든요.제 추측이 맞는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이 부분에 대해 한 번쯤 고민해 보셨으면 좋겠네요.
제 경험상 '이건 나도 할 수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은 나만의 생각이 아니라 이미 다른 사람들도 다 해 보는 것이었고, 실제로도 나보다 그 일을 더 잘 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배운 적은 없지만 왠지 나도 잘 할 수 있을 거 같은 일은 결코 전문적인 일이 아닙니다. 이미지가 아무리 전문적으로 보여진다 해도 말이에요.
제가 직접 경험해보지 않은 직무의 경우, 아무래도 전문성이 떨어질 수 있어서, 몇 가지 예시를 제외하면 특정 직무와 상관없이 가급적 공통된 내용에 대해 적었습니다. (MD나 마케터로 일해 본 적은 없으나, 그들과 가까이에서 일하고, 해당 직군의 성과지표를 설계해 봤던 사람이었기에 크게 틀리진 않을 겁니다.)
어떤 내용은 너무 자주 언급해 지겨울 수도 있을 텐데, 그럼에도 그것이 일반적인 상황에서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기 때문에 강조한 것이라 생각해 주세요. (제가 지난 10여 년간 해왔던 일을 최대한 간략히 줄여 설명하면 그건 결국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 높은 효율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아마 기대와 다른 글이었을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럼에도 여러분의 열정이나 노력을 폄하하려는 목적으로 쓴 글은 아닙니다.
저를 비롯한 95%의 평범한 사람들은, 일을 해보기도 전에 포기하는 게 아니고 자기만의 목표를 세우고 그걸 얻기 위해 노력합니다. 이런 노력의 과정사이에서 한 번쯤 먼저 사회를 경험했던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자기를 객관적으로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갖길 바라며, 전략적으로 선택할 것과 포기할 것을 구분하여 가능하다면 새해엔 모두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길 바랍니다.
한 가지 더 이야길 해보면 세상은 여러분의 열정을 치하하거나, 노력에 대해 보상하지 않습니다. 세상은 여러분의 성과와 결과에 대해 보상합니다. 당연히 성과를 얻으려면 노력해야 하지만, 어떤 이는 다른 방향으로 열심히 노력해 놓고, 세상이 나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가슴속에 품은 열정이나 노력한 흔적만으로는 인정받을 수 없습니다. 결과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노력보다는 방향이 더 중요합니다. 서울에서 400km를 가면 부산이 나온다고 아무 방향으로나 400km를 달리면 부산에 못 갑니다. 느리더라도 올바른 방향으로 가야 부산에 가까워집니다. 북한으로 가서 세상을 탓하지 마세요. (간혹 예상치 못하게 북한에 가서 그곳에 적응하고 성공하는 경우도 있지만, 저는 그러한 경우를 예외라 부릅니다.)
물론 정확한 방향으로 가도 예기치 못한 악천후, 장애물, 사건사고를 만나는 게 인생입니다만, 비슷한 방향으로 가야 돌아가는 거리도 줄어듭니다. 꼰대의 이야기 같겠지만, 직장생활과 달리 학창 시절에는 대부분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면 그에 걸맞은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단순히 노력만으론 좋은 결과나 보상을 얻을 순 없고, 여러분의 시간과 비용은 한정되어 있으니, 쓸데없는 노력은 피해야 합니다. 무엇을 고민하기 전, 왜를 먼저 고민한다면, 최대한 효율적으로 노력하는 방법을 찾을 때 유용할 것입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열심히 하지 말고 쉽게 해 보세요.
이 모든 내용이 지독한 꼰대의 잡소리라 생각할 수도 있고, 만약 동기부여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글이라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깔끔히 무시하셔도 무방합니다.
(이 글은 [네이버카페 '패션취업완전정복']에 올렸던 글을 약간 수정한 것으로, 전체적인 내용은 기존 카페 게시글과 동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