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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 그리움을 딛고.

나를 다시 옥상에 세운 30년 전 여름밤

by 한솔


옥상이 있는 집을 갖고 싶었다. 어릴 적 살던 진주 칠암동 3층집에 대한 기억 때문이다. 나는 동네가 훤히 내려다보이던 옥상에서 뛰놀며 자랐다.


내가 8살 무렵 우리가 분가한 이후로 그곳은 더 이상 우리 집이 아닌 ’진주 할머니 집‘이 되었다. 할머니는 첫 손주인 나를 키우며 사랑을 듬뿍 주셨지만, 우리 엄마를 못살게 굴었다. 아빠는 참고 살자는 엄마와 어린 나를 데리고 가까운 빈집을 찾아 나왔다. 물리적으로는 3분도 걸리지 않는 거리였으나, 마음으로 가는 길은 아득히 멀게 느껴졌다.


우리는 1층에 세를 들어 살았는데,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부터 주인집 가족의 구역이라 옥상으로 올라갈 수가 없었다. 할머니 집에 가도 나 혼자만 있는 옥상은 그저 회색빛의 시멘트 바닥일 뿐이었다. 그때부터 내게 옥상은 늘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갈증이었다.


몇 살 때인지도 모르겠다. 진주 할머니 집이 우리 집이던 시절, 그러니까 30년이 더 된 기억이다. 옥상에는 나무로 만든 평상이 있었다. 누우면 끼익 끼익 소리가 나는 낡은 평상이었는데 여름밤이 되면 아빠, 엄마와 거기에 자주 누워 별을 보곤 했다.


그때는 여름이면 은하수가 선명하게 잘 보였다. 평상에 누워 있으면 밤하늘이 내게 쏟아지는 것 같았다. 아빠가 별자리 이야기를 해주면 엄마는 수박을 썰어왔다. 함께 수박을 먹고 씨를 후후 불며 별에 이름을 붙였다. 조그맣던 나의 세상은 단순했고, 아빠 엄마와 함께 웃던 까만 여름밤은 내 가슴에 우주를 만들었다. 어린 마음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지만, 돌아보면 눈부시게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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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동네로 오기 전, 남편과 집을 보러 다닐 때 옥상이 있던 이 집이 우리 둘의 마음에 들어왔다. 슬라브 옥상은 관리가 어려울 것이 뻔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외할아버지를 떠올리게 하는 큰 밤나무가 뒤에 있고, 할머니집 여름밤의 그리움을 덜 옥상이 있는 이곳이 우리 집이 되었다.


그렇게 원하던 옥상이지만 일 년이 넘도록 어떤 용도로 사용할지 정하지 못했다. 그러다 며칠 전 노을이 멋져서 의자를 가져와 앉아서 해가 다 질 때까지 석양을 감상했다. 남편과 실시간으로 변하는 하늘빛을 바라보며 "좋다.", "행복하다."를 몇 번이나 말했는지 모른다. 그날 옥상에서 무엇을 할지 처음으로 정했다. 차를 마시며 노을을 감상할 수 있도록 서쪽 편에 작은 테이블과 의자를 두기로 했다.


30년 전 여름밤의 추억은 깊게 행복했던 만큼 그리웠고, 아빠가 돌아가신 후로는 눈물까지 더해졌다. 그래도 그 마음이 나를 다시 옥상에 세운 거겠지. 하루하루 잔잔하게 평화를 즐기다 보면, 언젠가 그리움도 눈물도 노을처럼 아름다운 빛으로 물들 것이다.




인스타그램 @ssolt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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