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학자의 질적 연구 기록, 한국 사회의 빈곤을 읽어내다
양극화,빈부격차에는 늘 관심을 쏟았고 소득불평등 문제와 이를 개선하기 위한 정책에 주목했지만 이상하게 "빈곤"은 마주하려 했던 적이 없는 것 같다. 내가 최근에 읽었던 책 중 이렇게까지 숙연해지는 경험을 주었던 책이 있었을까.
198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오는 이야기. 과거라고 하지만 여전히 현재와 맞닿아 있는 이야기.
어떤 사회학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수치로, 모형으로, 이론으로 정립하고 이를 세상에 내놓는다. 어떤 학자는 이 책의 저자처럼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기술한다. 삶의 현장을 묘사한다. 이러한 사회학자의 연구가 세상을 변화시키는가? 이 질문에 대답하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이것이 어떤 한 파장을 일으키는 것은 분명하다. 이 사회를 구성하는 한 개인이자 독자인 나에게도 이미 충격을 주었지 않은가. 그리고 직접 들여다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세계를 세상에 ‘알렸다’. 현실을 재현하는 것과 재현을 통해 현실을 구성하는 것 사이를 오가며 많은 혼란을 느꼈다고 작가 스스로는 이야기하지만 나는 문화기술지적 방법이 가져오는 효과를 극대로 발현시켰다고, 그래서 성공적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보여주기’의 힘이란 이런거구나. 전공 과제를 할 때에도, 평소에 어떤 연구를 고안해보려 할 때에도 관성적으로 양적 연구와 실증주의에 의존하게 되는 면이 없지 않아 있다. 그런데 이건, 혁명이다! 사회학도로서 질적연구 사례를 한 권의 책으로 만났고, 주제도 관심 있는 분야라 흥미롭게 읽지 않을 수 없었다.
책의 주요 명제 중 하나인 ‘가난은 대물림된다.’ 는 것. 가난은 어떤 원리로 대물림될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은 ‘빈곤문화’에 있다. 문란한 성 생활, 역사의식의 결여,약물, 낮은 동기 부여, 잦은 폭력, 미래에 대한 계획 부족 등으로 대표되는 빈곤문화는 빈곤을 재생산하고 있었다. 가난한 사람이 가난한 이유는 그 사람이 빈곤 문화 한가운데 있기 때문은 아니지만, 가난한 부모 밑에서 난 자녀가 가난한 이유는 빈곤문화를 공유했기 때문에 여기서 탈출하기 어려웠다는 분석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은 게으르고 무능하고 열심히 살지 않아서 게으르다는 편견은 가난을 개인의 탓으로 돌리는 자본주의 사회의 또 다른 모순일지도 모른다. 전쟁, IMF, 금융위기, 세계화. 금융자본주의, 도시공간의 자본주의적 개편 등의 구조적 문제가 가난을 만든다. 빈곤은 구조적 문제다. 책에 나오는 할머니네 집 사례가 대표적이다.
빈곤문화가 이들 가족을 빈곤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의 빈곤함이 그리고 빈곤의 재생산 구조가 이들 삶의 조건이 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가난의 조건에 대한 보이지 않는 구조를 이들 가족이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체현하고 있었다
초등학교 중학교 때 일진놀이하던 친구들. 개인의 일탈이고 도덕적 타락이고 바르지 못한 성품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옳지 못한 삶을 살고 있는 것 같다고 무시하거나 비판했다.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이들은 빈곤문화를 통해 빈곤이 재생산되는 가정의 전형을 답습하고 있던 것이 아닐까? 내가 기억하는, 담배 피고 패거리로 몰려다니고 화장품을 잔뜩 사들이고 오토바이도 타던 일부 또래들은 부모님 중 한 분이 안계신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사당동에도 ‘가출한 엄마’ 이야기가 정말 많이 나오거든... 이 사례들과 유사한 거라고 생각하니까 나를 반성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 친구들이 쉽게 쾌락에 빠지고 친구에 물들고 돈을 찾아 어린 나이에도 위험한 알바를 했던 것 같아 ... 가난한 집에서, 폭력과 이혼 등 불우한 가정 환경과 함께 자라 공부에는 별 뜻이 없고 그럴만한 교육 지원도 못받아서 중학교에서도 성적이 안좋으면 실업계고등학교를 가고, 이것이 사회적으로 낮은 지위에 있고 적은 임금을 받는 직업들로 이어지고...일찍 아이를 가지고.......
저자는 빈곤이나 철거재개발 등이 숨겨져야하는 것/악의적 행위라고 생각되던 시절이 있었다고 말해준다. 기득권층은 불평등한 세상을 유지해야만 자신의 부와 권력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치부를 알리는 것이 당연히 못마땅했지 않을까. 오늘날 미디어에는 교통과 통신이 발달한 한국, 고층빌딩이 들어선 한국이 비춰지지만 여전히 가난한 사람들은 존재하고 열악한 환경에서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삶을 이어나가고 있는 걸? 은폐되는 무언가를 직시해야 한다. 사회에 존재하는 각종 모순과 부조리를 불평등을 알리는 것이 그래서 중요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사회는 겉으로 보기에는 너무 잘 살고 있지만, 실제로는 아직도 어디에선가 노점상들이 강제 철거당하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기업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있다. 그런 세상이, 나만 잘 먹고 잘 살면 되는 곳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직업의 귀천이 존재하고, 도태되지 않으려면 노력해서 누군가를 이겨야 하고 그렇게 해서 체제를 유지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을 마주하면서도, 이 체제 속에서 함께 잘 살기 위한 노력은 어떻게든 일어나야 한다는 생각이 동시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