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국보> 후기
공연은 관객들과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거의 유일한 예술 장르이기에 무대에 서는 예술가뿐만 아니라, 무대 뒤에서 일하는 스태프까지도 초 긴장 모드다. 또한 수정이나 보완이 불가능한 매체이기에 완벽에, 완벽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 많은 예술 장르 중에서 공연예술이라는 장르에 매료된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러니 무대예술의 막전 막후를 다룬 이 작품을 놓칠 수 없었다. 어제 관람한 영화는 가부키 세계를 그린 일본 영화 <국보>이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니 영화를 보지 않은 분들은 뒤로 가기를 눌러주셔도 좋습니다.
한 치 오차 없는 아름다운 경지를 꿈꾸는 것은
내가 딛고 있는 세상이 그만큼 아름답지 않아서일까?
한 치 오차 없는 아름다운 경지를 꿈꾸는 것은 내가 딛고 있는 세상이 그만큼 아름답지 않아서일까? 예술계에 입문해 16년 넘게 일하고 있는 현재까지 내가 스스로에게 하고 있는 질문이다. 키쿠오가 가부키 공연을 보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에서 나의 모습이 겹쳐졌다. 모든 고민과 걱정이 사라지고 온전히 무대와 내가 하나로 이어진 느낌. 이 순간의 경험을 붙잡고 지금까지 달려온 것일지 모른다.
국보(國寶)는 '나라의 보배'를 뜻한다. 주변만 둘러보아도 뛰어난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국보는 그중에서도 가장 최고의 경지에 이른 사람이 받을 수 있는 칭호일 것이다. 영화는 키쿠오가 어떻게 국보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는지의 과정을 시간대별로 조명한다.
하얀 눈은 무엇으로도 오염되지 않은 순수의 결정체를 상징한다. 그러나 키쿠오에게 남은 눈의 기억은 그렇지 않다. 키쿠오의 아버지는 눈 내리는 날 경쟁 조직원에게 피살되며 쌓인 눈 위에 피를 쏟으며 쓰러진다.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야쿠자의 아들이라는 꼬리표를 얻은 키쿠오의 삶은 불완전함으로 가득 차 있다. 그가 오시로이라는 백분 화장품으로 얼굴을 분장할 때, 그의 오점은 새하얀 분장 안에 숨겨진다. 야쿠자의 아들이라는 사실도, 문신도, 가부키 가문의 자손이 아니라는 사실도. 분장을 하고 무대에 선 그는 오로지 자신만의 실력으로 승부하고 자 한다. 그것이 어린 소년이 세상에 복수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혈연과 세습을 중시하는 가부키 세계이지만, 키쿠오는 실력으로 인정받는다. 부상당한 한지로는 아들인 슌스케 대신 키쿠오를 대역으로 선택해 무대에 세운다.
영화를 볼 때는 한지로가 키쿠오에 비해 실력이 부족한 슌스케에게 자극을 주기 위함이었다고 생각했으나 영화를 보고 나서 다시 생각해 보니 키쿠오, 한지로, 슌스케는 모두 예술에 미친 사람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공연을 앞두고 벌벌 떨며 슌스케의 피를 마시고 싶다고 말하는 키쿠오나 자식 대신 키쿠오를 무대에 세우는 한지로나 키쿠오 공연을 보다가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린 슌스케까지. 장난스럽게 키쿠오에게 자신의 자리를 가로챈 것이 아니냐고 말을 한 슌스케가 키쿠오의 공연을 보며 가문을 떠났던 것도 키쿠오의 실력을 인정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혈육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뛰어넘을 수 없는 실력의 장벽과 맞닥트렸기 때문에.
키쿠오와 슌스케가 평생 애증 관계일 수밖에 없었던 것은 도달하고 싶었던 세계가 같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서로 갖지 못한 것을 두고 질투한다.
키쿠오는 무대에 설 기회를 잃고 이곳저곳을 떠돌며 온천이나 연회장의 작은 공연을 할 때조차 완벽을 추구한다. 슌스케는 아버지의 당뇨병 이력을 물려받아 나중에는 다리까지 절단하고도 마지막까지 투혼을 불태운다. 키쿠오는 국보라는 칭호를 얻은 상태에서 인터뷰를 할 때조차 계속해서 무언가를 찾아왔다고 말한다. 최고로 인정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속에 남은 숙제가 있었던 것이다.
결국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돈이나 명예보다는 모든 것을 초월한 신적인 경지. 무대 위에 하나의 예인이 아니라 스스로가 예술 그 자체가 되어버리는 경지를 꿈꿨던 것 같다. 마지막 장면이 아름다운 것도 키쿠오가 스스로 찾던 그 경지에 도달했음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험한 꼴을 당하고 분장을 다 지우지도 못한 채 옥상에서 공허한 눈빛으로 세상을 바라보던 키쿠오의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오로지 무대 위에서만 완벽해질 수 있는 서글픈 운명.
영화는 그렇게 예술가의 삶이 한없이 공허하고 위태로움을 말한다. 당대 제일의 온나가타이자 인간 국보라 칭호를 받는 만기쿠의 노년도 그렇다. 아무것도 없는 빈 방에 홀로 누운 그의 모습은 어딘가 키쿠오의 노년을 상상하게 한다.
삶이 불완전할수록
완전해지는 예술의 아이러니
예술이 키쿠오를 선택할 때 현실과 그의 고리는 끊어진다. 평생의 스승에게 발탁될 때 그의 아버지는 피살당하고, 예명을 세습 받는 자리에서 그의 스승은 피를 토하며 죽는다. 복귀해 돌아온 무대에서 다시 주목받을 때 평생의 친구이자 경쟁자였던 슌스케도 병으로 세상을 떠난다.
키쿠오가 '국보'라는 타이틀을 얻기 위해 영광의 계단을 하나씩 오를 때마다 그는 세상으로부터 고립된다. 가부키만 더 잘 하게 된다면 아무것도 필요 없다는 악마와의 거래는 현실이 되었다. 예술 세계가 완전해질수록 현실은 더욱 불완전해지는 아이러니.
성장한 딸이 찾아와 당신의 성공을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희생되었는지를 말할 때조차 키쿠오에게 죄책감은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 혈육으로서는 인정할 수 없어도 예인으로서 인정한다는 딸의 말에 키쿠오의 표정에는 조금의 안도감이 흐르는 것 같았다.
거의 3시간이 다 되는 러닝타임에도 영화가 길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배우들의 엄청난 연기와 완벽한 연출에 몰입해 봤다.
어떤 오점도 없는 하얀 눈송이가 흩날리는 세상처럼 키쿠오가 꿈꾼 완벽한 세계는 오직 무대 위에서 구현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 무대와 하나가 되어야 했다. 한 치의 오점이 없는 모습으로. 그리고 마지막에 그는 그 꿈을 이룬다. 객석의 찬란한 박수나 명예보다도 자신이 찾고 싶었던 아름다운 세계에 도달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