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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R Report Jan 18. 2019

빅토리아 시크릿의 성공과 실패

“예쁜 파자마 하나 사다줘.”
올해 마지막 달을 출장으로 시작하며 아내에게 필요한 것 없는지 물었더니 하는 말이었다.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한 첫 날 SF MOMA(현대미술관)에 들렀다가 백화점으로 갔다. 여성 파자마는 당연히 여성 속옷 섹션에 있다. 연말이지만 그 섹션은 유난히 썰렁했고, 그나마 있는 손님들 중에 남자는 딱 나 한 사람이었다. 여성 속옷 매장에 들어가는 것이 싫지는 않지만 편하지도 않다. 뭐랄까… 어린 시절 은행에 가서 어른들 몰래 <선데이 서울>을 읽는 기분과 묘하게 오버랩 되는 장면이다. 그 다음날엔 빅토리아 시크릿을 찾아갔다. 이 곳의 분위기는 백화점 여성 속옷 매장보다는 더 활기가 넘친다. 파트너가 속옷을 고르는 동안 매장 입구에서 핸드폰을 보는 남성이 있는가 하면, 즐겁게 대화하면서 같이 속옷을 고르는 커플도 있다. 여성 속옷 매장이지만 백화점보다는 빅토리아 시크릿에서 쇼핑하는 것이 더 편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빅토리아 시크릿은 현재 불편한 곳이 되어가고 있다. 먼저 빅토리아 시크릿의 출발을 살펴보자.


빅토리아 시크릿은 여성 속옷 매장에서 불편함을 느꼈던 한 남성에 의해 시작되었다. 로이 레이몬드(Roy Raymond, 1947-1993)는 백화점에서 아내 속옷을 사는 경험이 그다지 유쾌하지 않았다. 속옷 품이 만족스럽지 않았고 남성 혼자 여성 속옷 매장에서 불청객처럼 보이는 것도 불편했다. 결국 그는 1977년 은행에서 4만불(약 4천 4백만원), 친척에게 4만불을 빌려 스탠포드 쇼핑센터(샌프란시스코 근처에 위치)에 첫 여성 속옷 매장을 열었다. 첫 해에 50만불(약 5억 5천만원)을 버는 성공을 거두고 매장을 넓혀갔고, 카탈로그 주문을 받기 시작했다. 창업 5년째 되던 해 레이몬드는 빅토리아 시크릿을 1백만불(약 11억)을 받고 팔았다. 1990년대에 들어와 빅토리아 시크릿은 미국내 여성 속옷 사업으로는 최대 유통 업체로 성장했다. 로이 레이몬드는 1984년 마이 차일드 데스티니(My Child’s Destiny)라는 고급 어린이 용품 매장으로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지만 2년 뒤인 1986년 파산했다. 1993년 그는 우울증에 시달리다 안타깝게도 47세의 나이에 샌프란시스코 금문교에서 자살로 삶을 마감했다.


오랜 기간 승승장구하던 빅토리아 시크릿은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2018년 주가는 41퍼센트가 떨어졌다. 2017년 Wells Fargo가 진행한 소비자 조사에 따르면, 68퍼센트의 응답자가 과거보다 빅토리아 시크릿을 덜 좋아하며, 60퍼센트는 이 브랜드를 ‘강압적이며(forced)’ ‘거짓된(faked)’ 것으로 느낀다고 답했다. 빅토리아 시크릿의 란제리 부문 CEO인 얀 싱어(Jan Singer)는 지난 11월 사임했고, 핑크(PINK) 브랜드의 CEO 드니스 랜드맨(Denise Landman)도 이번 12월을 마지막으로 사퇴한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이는 빅토리아 시크릿의 출발점과도 연결지을 수 있다. 빅토리아 시크릿은 ‘섹시’라는 개념을 남성의 시각에서 접근해왔다. 창업자도 남성이었고, 현재 이사회 구성원 12명 중 여성은 단 3명 뿐이다. 올해 마케팅 담당 임원이 <보그>와의 인터뷰 중 왜 트랜스 젠더 모델을 쓰지 않는지, 그리고 왜 쇼에 다양한 체형의 여성 모델을 쓰지 않는지 질문을 받고는 “빅토리아 시크릿의 쇼는 판타지(fantasy)를 위한 것이기 때문에 관심없다”고 답변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시장 점유율면에서는 빅토리아 시크릿에 비할 바 못되지만, 새로운 흐름이 생겨나고 있다.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ThirdLove라는 브랜드다. 구글에서 마케팅 매니저를 하던 하이디 작(Heidi Zak)은 12개의 브라를 갖고 있었지만 자신의 몸에 제대로 맞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점에 착안, 자신이 직접 브라를 만들기로 결심하고 2013년에 사업을 시작했다. 기존의 브라는 거의 ‘고문 기구’였다고 느낀 그는 브라의 크기를 74가지로 다양화했다. ThirdLove의 웹사이트에 가면 모델의 다양성(나이, 사이즈, 피부색 등)에서 빅토리아 시크릿과는 다른 것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여성 속옷을 남성의 시각이 아닌 여성의 시각에서 해석한 접근법이 여성들의 호감을 얻고 있다.


이런 현상을 보면서 90년대 한 미국 잡지에서 보았던 기사가 떠올랐다. 중국에 여성 속옷 광고(물론, 비현실적으로 마른 모델을 사용한)가 등장하면서 중국 여성이 자신의 몸매에 대해 느끼는 만족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여성을 위한 제품’이 그동안 ‘남성을 위한 시각’에서 만들어져왔고, 이제 그런 브랜드가 점차 위기를 맞는 시대에 왔다. 오늘은 샌프란시스코를 떠나 1977년 빅토리아 시크릿의 첫 매장이 문을 연 스탠포드 대학 근처로 왔다. 내가 방문했던 매장(Powell Street)은 창업자가 4번째로 열었던 매장을 1990년에 옮겨온 것으로 알려졌다. 성공적인 창업과 매각, 창업자의 자살, 브랜드의 성장 등 우여곡절을 겪으며 1위의 자리에 오른 한 브랜드가 커다란 도전을 맞고 있다. 남성의 시각으로 접근해 성공한 브랜드는 이제 바로 그 시각 때문에 위기에 놓여있다.


참고:
“Victoria’s Secret? In 2018, Fewer Women Want to Hear It” (by By Tariro Mzezewa, New York Times, 2018. 11. 16)


thirdlove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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