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4년 5월
그날 밤 러브호텔 앞에서 서리하는 달아나듯 마리와 헤어졌다. 뛰다시피 걷는 등 뒤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발정 난 고양이 울음처럼 앙칼지면서도 끈적끈적 달라붙는 소리였다.
다음날 만난 마리는 어젯밤과는 다른 여자 같았다. 냉정하고 건조한 목소리로 서리하에게 업무를 지시했다.
“이 내용 한글로 번역해서 가져와요. 급한 건이니 오늘 중으로 해야 해요.”
내용을 흩어보니 위안부가 자발적으로 돈을 벌려 매춘 활동을 한 직업여성이라는 글이었다. 화를 눌러 참으며 쓰레기 같은 일본 글을 한글로 번역해 가져갔다.
“잠깐 자리에 앉아요.” 서류를 놓고 돌아서는 서리하에게 마리가 지시했다.
서리하가 앉자 마리가 맞은편 소파에 앉아 번역해 간 내용을 읽었다. 다리 한쪽을 들어 꼬고 앉았는데 짧은 치마 속으로 속옷이 보였다.
“어때요, 내용이?”
“내용이요? 생각 안 해봤습니다.”
“이 주장이 옳다고 생각하느냐 묻는 거예요.” 집요하게 물었다.
“모르겠습니다.”
“그런 태도는 곤란한데요. 우리는 정신까지 동조하는 사람을 원해요.”
“노력하겠습니다.”
“좋아요. 질문을 바꿔보죠. 여자가 돈 벌기 위해 매춘을 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세요?”
지금도 그런 장소들이 있으니 할 수 있겠다 싶었지만 서리하는 침묵 했다.
“왜 대답이 없으세요?”
“그런 데 관심을 가진 적이 없어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마리상이 여성이라 추측을 말하기도 편치 않습니다. 제가 잘못 알고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대답을 들은 마리가 웃었다. 지난밤 들은 그 웃음소리였다.
“그쪽에 문외한이라는 말은 믿겠어요. 어제 보니 충분히 그럴 사람이니까. 그렇다면 내가 힌트를 주지요. 여자는 돈 벌기 위해 무엇이든 팔 수 있어요.”
“모든 여자가 그렇지는 않습니다.” 서리하가 반박했다.
“모든? 여기 모든 여자가 어디 있어요? 한 여자와 한 남자만 있지요.”
‘그러면 당신도 돈 벌기 위해 몸을 팔 수 있느냐?’는 질문은 차마 하지 못했다.
서리하의 생각을 눈치챘는지 마리가 말했다. “나도 늙은 사람에게 몸을 팔며 살아요.”
“그런 이야기를 왜 제게 하십니까?”
“정말 궁금해서요. 여자가 돈 때문에 몸을 팔 수 있는지, 아닌지? 그런 여자도 사랑을 할 수 있는지, 아닌지?”
“죄송합니다. 저는 모르겠습니다. 제가 답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빨리 자리를 피하고 싶었다. 단둘이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게 너무 불편했다. 하지만 그때는 몰랐다. 마리의 질문에 아픔이 숨어있다는 것을.
“몸 외에 다른 것도 팔고 있어요.”
“다른 것이라면?”
“글쎄요. 마음, 정신.”
“그런 걸 파는 사람은 많습니다. 팔지 않는 사람이 오히려 드물지요.”
“알았어요. 나가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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