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의 직장생활] 근로기준법에 어긋난다면 “이 계약 무효!”
"저는 광고대행사에서 일하고 있는 2년 차 직장인입니다. 업계 특성상 야근이나 주말 출근 등 초과근무가 엄청나게 잦아요. 그룹웨어에 저장된 근태기록을 확인해보니 지난 달에는 무려 70시간 넘게 더 일했더라고요. 그런데 회사는 수당을 전혀 주지 않습니다. 급여에 이미 다 포함돼 있대요. 제 노동력이 헐값에 치러진다고 생각하니 억울하고 답답합니다. 첫 직장인데다 중소기업이라 연봉이 적은데 근무 시간은 길다 보니, 시급으로 환산하면 최저임금에도 채 못 미치는 것 같아요.
심란해서 평소 의지하던 직장 선배에게 물어보니, 본인도 야근수당을 받지 못하는 게 분하다고 하더라고요. 근로계약서에 '포괄임금제'라고 명시돼있어서 달리 받아낼 방법이 없을 것 같다고 하네요. 얼른 경력 채워서 탈출하는 것 말곤 답이 없다는데,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일한 만큼은 받고 싶다! 수많은 직장인의 눈물 섞인 외침이지요. '공짜 야근'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포괄임금제. 대체 그 정체가 뭐길래 이토록 많은 직장인을 허탈하게 만드는 걸까요? 사연자님이 야근수당을 받을 방법은 정말 없는 것인지, <컴퍼니 타임스>가 알아봤습니다.
포괄임금제는 쉽게 말해 '임금에 연장·야간·휴일 근로 등 시간외근로 수당을 포함하는 근로 계약 방식'을 일컫습니다. 비슷한 개념으로 '고정OT(Over Time) 계약'도 기업들이 자주 활용하곤 하는데요. 이는 실제 근로 시간과 상관없이 기본임금 외 법정수당 액수를 정해놓고 지급하는 형태입니다. 예컨대 연장근로 10시간에 수당 10만원, 야간근로 10시간에 10만원 등으로 각각의 수당을 약정하여 지급하는 식이죠.
포괄임금제나 고정OT를 근로기준법상 제도라고 오해하는 분들이 많은데요.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원칙적으로 사용자(회사)는 노동자가 실제로 근로한 시간에 따라 법정수당을 지급해야 할 의무가 있거든요.(근로기준법 제56조)
다만, 대법원 판례(대법 2010.5.13, 2008다6052 등)에 따르면 몇 가지 요건이 성립될 때 포괄임금제를 인정합니다. ▲근로 형태와 업무 성격상 근로 시간 산정이 어렵거나 ▲임금을 포괄하여 지급했을 때 근로기준법상 근로 시간 규제를 위반하지 않으며 ▲당사자 간 충분한 합의가 이뤄졌고 ▲근로자에게 불이익하지 않은 경우가 그에 해당하지요.
사연자님은 본인의 근태기록이 정확히 남아있다고 하셨으니, 근로 시간 산정이 가능한 상황에서 포괄임금제 계약이 이뤄진 셈인데요. 그렇다면 특히 '근로기준법상 근로 시간 규제를 위반하지 않았는지'를 유심히 따져봐야 합니다.
근로기준법 제50조에서는 '근로 시간은 휴게시간을 제외하고 주 40시간, 일 8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어요. 이를 넘길 경우에 회사는 근로기준법 제56조 1~3항에서 밝힌 기준에 따라 수당을 산정하고 지급해야 하죠. 포괄임금 계약을 맺었다고 하더라도, 법이 정한 수당 산정 기준에 미달하는 급여를 지급하는 건 허용되지 않습니다.
수당을 제대로 쳐줬다면 총 100만원의 급여를 받았어야 했는데, 포괄임금제라 80만원밖에 못 받았다? "이 계약 무효야!"라고 외칠 수 있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살펴볼게요. 포괄임금제로 근로계약을 체결한 A씨의 급여는 총 100만원입니다. 이 중 70만원은 기본급이고, 30만원은 연장·야간·휴일 근로 등을 포함한 수당이라고 근로계약서에 적혀 있어요. 그런데 A씨가 초과 근무한 시간을 계산해보니, 실제로 받아야 할 연장근로수당이 60만원으로 산정됩니다. 이러한 경우, 회사는 A씨에게 30만원의 수당을 추가로 줘야 합니다.
만약, 근로계약서에 기본급과 수당을 구분하여 명시하지 않았다면 급여명세서에 적혀있는 기본급을 기준으로 따져보면 됩니다. 이마저도 여의찮다면 최저임금을 기본급으로 가정한 뒤 살펴보시고요. 고정OT 계약 형태의 경우, 회사는 약정된 시간에서 초과한 만큼의 수당을 근로자에게 추가 지급해야 합니다.
사연에서 '시급으로 환산하면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것 같다'고 하신 걸로 보아, 회사가 근로기준법을 위반했을 확률이 매우 높아 보여요. 하지만 이론적으로 수당을 받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재직 중에 수당 지급을 요구한다는 게 부담스러우실 텐데요.
지난 1월, 고용노동부는 <2023년도 근로감독 종합계획>을 발표하고 '공짜야근'을 야기하는 포괄임금제 및 고정OT 오남용 근절에 나서겠다고 밝혔어요. 그 일환으로 포괄임금 및 고정OT 오남용 사업장 기획 감독을 시행하기도 했고요.
'우리 회사야말로 문제 많은데, 감독하러 오지 않으면 어쩌지...' 걱정하지 마세요. 근로자가 직접 불법·부당행위에 대해 신고할 수 있도록, 최근 고용노동부 홈페이지 내에 온라인 노사 부조리 신고센터를 열었거든요. 해당 창구를 통해 신고 및 근로감독 청원을 넣으면 즉각적인 권리 구제 절차에 들어갑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신고사건으로 접수할 경우 가장 빠르게 처리되는데요. 신고자 면담과 사업체 감사를 진행하여 피해 사실을 확인하고, 근로자가 체불된 임금을 제대로 받을 수 있도록 시정명령 및 사후감독 등을 거칩니다.
회사와의 직접적인 다툼이 부담스럽다면 사업장 감독을 청원하는 방법도 있어요. 신고자의 개인정보와 신고내용은 공개되지 않는데요. 고용노동부에 개인정보를 제공하는 것조차 조심스러운 청원인들을 위해 익명 신고 창구를 따로 마련했습니다. 근태기록 등의 증거자료를 확보해 피해 사실을 입증할 수 있다면 언제든 신고 접수가 가능합니다.
다수의 노무 전문가들은 포괄임금제와 고정OT 오남용 사례가 법적 다툼으로 이어졌을 때, 회사가 유리한 판결을 받을 확률은 극히 낮다고 말합니다. 포괄임금제가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적용될 경우, 근로자의 손을 들어준 판례가 상당하거든요.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올해 포괄임금제, 고정OT 오남용에 대해 기획 감독을 실시하고 개선 권고를 내리는 등 적극적인 관리 및 불법 관행 개선에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는데요. 사연자님을 비롯해, 공짜야근으로 인해 고통받는 직장인들 모두가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보장받는 사회로 거듭나길 소망해봅니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지?" 고민 중이라면 알려주세요. 같이 고민해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