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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골짜기 혜원 Mar 14. 2018

시어머니 택배상자와 친정 엄마

“팥 쌂은 것 수수부꾸미 속이다, 파란 쑥가루는 갯떡 해먹든지…”

며칠 전부터 예고된, 새봄맞이 시어머니표 택배상자가 왔다.


보내시기 전엔, “이번 주에 집에 있느냐” 전화하시고. 보내신 날엔, “택배 막 부쳤는데 내일 집에 있느냐”고 또 전화하시고. 전화 받고 나서 은근히 궁금했다. 살짝궁 기다려지기도 했다. 언제나 뜻밖에 먹을거리들, 특히나 산골에선 귀한 음식들을 한가득 보내셔서 늘 나를 놀라게도, 감동에 빠지게도 했던 시어머니표 구호식품이 담긴 택배상자가. 


상자가 미어터지게 담긴 시어머니표 택배상자.

“아휴, 무거워!”


점심 지나 드디어 도착한 택배. 커다란 상자가 잔뜩 무겁다. 상자가 미어터지게 꾸역꾸역 담으시느라고 온통 테이프가 덕지덕지 붙은 상자를 연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새송이버섯.  


‘아이코, 요 흔한 걸 뭐 하러 넣으셨을꼬. 우리 집 냉장고에도 있는데. 어머나? 꽝꽝 얼기까지? 아니, 버섯을 왜 굳이 얼려서 보내셨을까나….’ 


안쓰럽고도 답답한 마음에 잠시 한숨이 나온다. 곧이어 까만 봉지 하얀 봉지 하나하나 꺼내 보는데, 뭔가가 끝도 없이 나온다. 고등어, 동태, 명태 두루 담긴 생선봉지부터 보인다.(‘고등어 구이’라고 비닐봉지에 붙은 단정한 글씨가 낯익다. 바로 시누이 글씨체. 딸이 보낸 것까지 아들한테 넘기는 어머니 마음, 눈물겹긴 하다만 시누이한테는 미안해서 어쩌나.)


‘고등어 구이’라는 글씨가 낯익다. 아마도 시누이 글씨체. 딸이 보낸 것까지 아들한테 넘기는 어머니 마음, 시누이한테는 미안해서 어쩌나.

거기다 돼지고기 저며서 양념한 봉지. 백설기, 시루떡, 이름 모를 색색 떡 잔뜩 담긴 떡 봉지. 지난겨울 잔뜩 보냈던 떡국도 또 넣으셨네. 


이번엔 웬일로 유부 봉지까지 보인다. 한 번도 보내주신 적 없는데. 국수에 넣어서 먹으면 맛나겠네. 가만, 이건 뭘까? 동글동글한 게 꽝꽝 얼어 있는 거랑 플라스틱 그릇에 담긴 건 눈으로 봐선 도저히 정체를 모르겠네. 나중에 여쭤봐야지.   




다 꺼냈나 싶더니만 맨 밑에 커다란 봉지가 또 있다. 전화로 미리 말씀하신 수수부꾸미 가루다. 이번 택배는 바로 이걸 보내려고 부치셨다는데 곁 따라온 음식들이 이리도 많으니, 시어머니의 가없는 사랑이 봉지봉지마다 뚝뚝 묻어난다. 수수부꾸미랑 함께 쑥 넣고 빻은 쌀가루, 그리고 뭔지 모를 노란 가루가 나온다. 뒤이어 보이는 군데군데 물 묻은 작은 종이 쪼가리. 


팥 쌂은 것 수수부꾸미 속이다  
파란 쑥가루는 갯떡 해먹든지 
조금 질게 반죽해서 부처 먹어도 된다.   


아, 어머니…. 축축하게 젖은 종이편지 앞에 두고 눈자위가 촉촉하게 젖는다. 마음 가다듬고 바로 전화부터 드리기. 


맞춤법 틀린 것도, 어수룩한 글씨체도 돌아가신 친정 엄마랑 참 닮은, 시어머니표 손글씨.


“어머니, 막 택배 왔어요. 엄청 많이 보내셨네요. 쑥 넣은 쌀가루는 또 언제 만드셨어요? 여긴 쑥 아직 안 났는데, 전에 뜯은 쑥으로 하신 거죠? 수수부꾸미 가루도 전보다 엄청 많이 보내셨네요. 어머니가 전에 주신 걸로 만들어 먹었더니 아주 맛났어요. 이번에도 잘 먹을게요. 근데요 저, 모르겠는 게 있는데요. 동글동글한 거, 그거 뭐예요?”


“어, 그거 조개야. 큰조개. 국 끓여먹으면 된다.” 


“이거 조개 사서 하나하나 껍질 까신 거예요?” 


“그랬지~” 


“그리고 또 있어요. 플라스틱 흰 그릇에 담긴 거요. 이건 또 뭐예요? 꽝꽝 얼어서 뭔지 모르겠어요.”


“명태 말려서 조림한 거다.”


“명태 말린 것도 들어 있던데 조림까지 해서 보내셨어요?”


“너 고기 못 먹으니까, 그래도 생선은 먹으니까 해서 보냈지. 명태는 내가 말린 거다. 잘 챙겨먹어라.”


정체를 모르겠던 두 가지 먹을거리를 전화로 여쭈어 알아냈다. 버섯이 꽝꽝 얼어 있던 까닭도.


“네, 한동안 배 터지게 생겼어요. 참, 버섯 있잖아요, 그거 일부러 얼려 보내신 거죠?”


“아니다! 그거 얼린 거 아닌데! 얼었더냐?”


“네, 버섯이 꽝꽝 얼어서, 언 버섯으로 따로 맛있는 음식 만들 수 있나 보다 생각했어요.”


“에고, 다른 음식들이 언 것들이라 옆에서 같이 얼었나보다. 그래도 그거 버리지 말고 먹어라.”


“버리긴요, 찌개에 넣어 먹으면 돼요. 전 또 일부러 얼려 보낸 줄 알았지 뭐예요. 보내주신 것들 반찬으로 간식으로 잘 먹겠습니다!”


“그래, 고맙다, 고마워.”


“제가 고맙죠, 어머니….”


전화 끝에 고맙다는 말씀을 몇 번이나 건네시는 시어머니. 전화 끊고 나니 마음이 더 시리다. 목소리에 힘이 없으셔서 어디 아프신가 걱정도 밀려오고. 


유부랑 명태 둘 다 처음 보내시는 것. 시어머니표 택배상자는 이렇게 나날이 진화한다.

저녁에 어머니표 명태조림을 데워 먹었다. 맛있다. 쓸데없이 비위가 약한 나, 요렇게 말린 생선이 생물 생선보다 좋은데 어찌 아시고…. 


저녁 맛나게 먹고 다시 전화를 드린다. 아까 힘없이 들리던 시어머니 목소리가 자꾸 마음에 남아서.




“어머니, 명태조림 저녁에 데워 먹었어요.”


“맛있드냐.”


“네, 아주 맛있어요. 조림해서 보내주신 거 다 먹으면 같이 온 생 명태도 반찬으로 해서 잘 먹을게요.”


“그래, 고맙다, 고마워.”


아픈 데 없으니 걱정 말라시며, 또 고맙다고 말을 맺으시는 시어머니. 전화기 내려놓고 이 가없는 사랑 앞에 또 눈물이….


이번 시어머니 구호식품의 핵심, 수수부꾸미 가루와 팥소와 쑥 넣은 쌀가루. 그리고 눈물 나는 손편지.

문득, 셋째 딸 혼인하는 것도 못 보고 너무나 일찍이 저 하늘로 가버린 친정 엄마 생각이 난다. 살아계셨다면, 시어머니랑 거의 비슷한 연세인 울 엄마. 


결혼한 딸내미한테 뭐 하나 챙겨주지 못해서 하늘 어디선가 마음 아파하실지도 모르는데, 이렇게 시어머니 사랑 가득 담긴 택배상자를 시도 때도 없이 받는 내 모습을 보면서 무척이나 좋아하실 것만 같다. 


그리고….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시어머니께 꼭 이렇게 말씀하실 것만 같다. 고집 세고 눈물 많은 우리 셋째 딸. 자기 대신 챙겨주고 아껴줘서 고맙다고, 정말 많이 고맙다고….


끝도 없이 나오는 먹을거리들을 하나하나 꺼내며 가없는 시어머니 사랑에 눈자위도 마음도 푹 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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