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 세 돌을 지난 첫째 딸과 생후 8개월을 앞두고 있는 둘째 딸을 키우고 있는 나는 현재 만 36세.
남편이 나에게 ”또 수도꼭지 틀렸다“고 말하는 횟수가 한 달에 평균적으로 5번 내외 정도는 되지 않을까. 저 표현은 내가 울 때 남편이 사용하는 말이다. 그는 내가 우는 이유를 공감하지 못해서 운다고 표현하지 않고 수도꼭지가 틀렸다고 메마른 표현을 빌리는 것일 테다. 만난 지 얼마 안 됐을 때는 별 일 아닌 일에 눈물 훔치고 있는 나를 발견하며 놀라서 “우나?”라고 물었었는데…
내 아이를 낳고 나면서부터 그 수도꼭지는 마를 새가 없다. 남편 입장에선 ‘정말 이런 일에도 운다고?‘하는 표정이다. 나는 왜 이렇게 마음이 약한 걸까. 차라리 나도 쿨한 엄마이고 싶다. 내 기준대로 당차게 자녀들을 양육하고, 뒤끝에 죄책감이라고는 1g도 없이, 오늘 하루도 힘든 하루였다며 하루의 피곤함에 곤히 잠들 수 있는 엄마말이다.
내 하루의 마무리는 유튜브가 아니다. 자주 죄책감에 휩싸여 휴대폰으로 그날의 반성일기를 써 블로그에 비공개로 올리며 잠에 들곤 한다. 미안함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지 않을까 괜스레 딸의 볼에 뽀뽀도 하고. 뽀뽀로 감정을 해소할 수 있고 딸들이 그날 엄마로서 나의 실수를 잊고 행복할 수 있다면 몇 번도 할 수 있다.
그렇게 잠들기 전 소위 속이 시끄러워 폰으로 블로그에 비밀로 엄마 반성 일기를 쓰다가 제대로 스크린 속 새하얀 창을 마주하고 글을 쓰며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난 왜 이렇게 생겨 먹은 걸까. 내 마음은 왜 이렇게 딸의 뽀로로와 친구들 과자만큼이나 잘 부서지는지.
글로 쓰다 보면 복잡한 내 심경이 명확하게 수면 위로 떠오르고 그 심경에 달려있던 ‘나‘에 대한 단서도 딸려왔다. 오랜만에 어릴 적 나를 만나기도 하고, 내가 이렇게 발생하게 된 출처인 부모님의 옛 모습을 목격하기도 한다. 그렇게 글을 쓰며 나를 한 번 더 이해하게 되고 좀 더 마음 편히 내일을 맞이할 수 있었다.
앞으로의 글들은 그렇게 나 혼자 처절했던, 가까운 사람도 당황스러웠던 나의 눈물에 얽힌 육아 에세이가 될 것이다. 어쩌면 나도 스스로 쪽팔려 정제된 글을 쓸까 우려스럽지만 최대한 솔직하게 나를 마주 보고 싶다. 스스로를 위로해 주기 위해.
결국 딸들과 매일 행복한 하루하루를 만들어가고 싶기에 글을 쓴다. 죄책감이 아니라 또 다른 하루가 다가오는 설렘에 잠 못 들고 싶다. 매일 조금씩 덜 미안한 날이 되는 것. 내가 바라는 나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