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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철 Jun 28. 2019

04. 가정이 행복해지는 가훈의 비밀

부부리포트 04. 가훈

2017년 3월, 결혼을 했다.

우리는 누구보다 길게 연애를 했지만 결혼은 달랐다. 결혼 전에는 약속된 시간과 장소에서 일상 속 특별한 '점'으로 서로를 만났고, 몸이 떨어져 있을 때는 전화 통화로 목소리를 들으며 시간을 공유하는 '선'처럼 서로에게 자리했다. 지금은 물건과 공간, 호흡을 함께하면서 삶 전체를 입체적으로 공유하고 있다.

이것은 서로의 몰랐던 모습을 발견하고, 새로운 익숙함을 만들어 나가는 부부의 이야기다.




우리 집에는 한글 자석이 있다. 한글 자모 단위의 고무자석들이 들어있어서 낱자로 글자를 조합하는 방식이다. 신혼집에 짐을 꾸리면서 바로 현관문 안쪽에 단어를 만들어 붙였다. 처음에는 서로에게 하는 풋풋한 사랑고백 같은 걸 붙였으나 고된 삶에 지치면서 자석은 점차 우리가 스스로를 선동하는 문구로 변모되기 시작했다.
'건강한 삶' 이라던가 '이기자' 같은 문구들. 때로는 '소소한 일상'에서 'ㅅ'만 살짝 돌려서 '고고한 일상'을 만들기도 하고 초성의 자음만 바꿔서 '도도한 하루' 같은 걸 만들었다. 뜬금없는 말 같지만 결국 세상에서 무너지지 말자는 말을 이렇게 저렇게
바꿔가며 표현한 것이었다.
맞벌이를 하며 서로 집에서 얼굴 보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내가 야근이 많아지는 주간이 되면 침대만 같이 쓰는 지경에 이르기도 했고, 메신저 속에만 존재하는 사이버 부부 같은 느낌도 들었다. 같이 사는데 얼굴 보고 얘기하는 시간은 연애시절보다 적었다.
이게 다 뭔가.
아무튼 우리는 국문과 출신답게 말의 힘을 믿고 있기에 계속해서 전략적으로 한글 자석으로 주술을 걸기로 했다.
그래서 탄생한 올해의 슬로건은 이렇다.
'돈과 건강, 시간 부자'
좀 길다. 그만큼 우리가 더 힘들고 지쳤기 때문일 거다. 아 문장이 어색한 이유는 자석이 부족해서 더 이상 긴 문장을 만들기 힘들기 때문이다.

문장 속 핵심은 역시 돈과 시간이다.
지난 여름휴가 때였나. 제한된 휴가기간 속에서 둘의 날짜를 맞추니 극성수기였다. 티켓값은 올라가기만 하는데 비용을 줄이는 방법은 4~5시간의 동남아를 가면서도 경유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내가 조심스럽게 경유 티겟 구매 의견을 내비치자 아내는 말했다.
"우리같이 길게 시간을 내기 어려운 사람들은 시간이 곧 돈이야. 돈 더 내고 빨리 가는 게 이득인 거야." 역시 아내는 멋있었고, 난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그 뒤로 우리 부부는 시간도 돈을 주고 샀다. 아마 많은 분들도 이런 선택을 하시리라 짐작하고 있다.
 
그럼 무엇을 위해 시간까지 돈으로 사느냐.
이 이야기를 하려면 자석 글자 너머에 존재하는 위대하고 신비로운 우리 집 가훈에 대해 설명해야 한다.
우리 집 가훈은 '한 명이라도 최고로 행복하자'이다.
아내가 일을 잠시 쉬고 집에서 지낸 시절이 있었다. 아내는 하루 종일 좋아하는 취미생활을 하며 보냈다. 진심으로 행복해 보여서 나도 기분이 좋았다. 같이 벌다 혼자 집에 있으니 아내의 마음 한구석에도 불편한 마음이 없진 않았을 터였다. 나도 아내처럼 멋있게 말하고 싶었다.
"우리 한 명이라도 최고로 행복하자. 둘 다 고생한다고 얼마나 더 잘 살아지겠어."
그리고는 그 자리에서 '한 명이라도 최고로 행복하자'를 우리 집 가훈으로 지정했다. 뜻깊은 순간이었다. 어설프게 둘 다 고생하느니 한 명이라도 최고로 행복할 수 있다면 그걸로 나머지 한 명도 정말 행복해질 것 같았다. 그런데 행복은 사실 추상적인 단어여서 도달하기가 쉽지 않았다. 지금 행복한가, 지금 행복하니, 라고 스스로 또는 상대방에게 묻고 답을 생각해야 했기 때문이다. "100만 원이 5만 원권 20장으로 지갑에 있는 사람" 같은 표현처럼 구체적인 기준이 필요했다.
그러다 또 힘들었던 어느 날,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어서 행복한 것이라는 뻔한 말을 농담처럼 던지다가 깨달았다. 그렇다. 웃는 것이다. 우리가 계속 웃고 있으면 되는 것이었다. 실제로 우리 부부의 실험 결과 힘들고 지칠 때도 웃으니까 기분이 좋아졌다.
하지만 아무 맥락 없이 그냥 웃어지지 않는 게 사람이다. 또 억지로 웃으면 변하는 건 입꼬리뿐, 불편한 마음은 그대로였다. 말린 연꽃이 뜨거운 물속에 들어가면 다시 활짝 펴지듯 얼굴 가득 환하게 웃어야 기분도 좋아지는데 그런 웃음이 한 번이라도 나오는 날도 드물다.

그렇게 행복의 문턱에서 우왕좌왕 방황하는 시절이었다. 내 선물을 산다고 백화점에 갔다가 수십만 원을 주고 지갑을 구입했다. 돈을 담기 위해 돈을 내고 물건을 사다니! 이런 바보 같은 짓을 저지르고 돌아오는데 절로 내 입이 귀에 가서 걸리는 것이 아닌가. 아, 백화점엔 없는 게 없다더니, 우리는 백화점에서 행복을 발견했다. 결국 행복은 우리가 지갑을 열 때 찾아오는 것이었다.

돈을 쓰려면 일을 해야 하고 일을 열심히 하면 시간이 없고 시간이 없으니 돈을 주고 시간까지 사야 하는데 그러면 더 돈을 많이 벌어야 하고 그러면 일을 더 열심히 해야 하는 그런 굴레에 빠진다는 함정이
있지만 우리는 우리에게 돈을 쓸 때 행복해진다는 비밀을 알아냈다.

시간도 돈으로 사야 하니, 바쁘신 분들을 위해 우리 집 가훈에서 찾아낸 행복의 비밀 프로세스를 기적의 논리로 정리하면 이렇다.

가정을 행복하게 만드는 가훈
<한 명이라도 최고로 행복하자>
1. 웃으면 행복하다.
2. 스스로를 위해 돈을 쓰면 웃음이 난다.
3. 고로 스스로를 위해 돈을 쓰면 행복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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