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구로동에 볼일이 있어서 오랜만에 들렀더니 못 가본 사이 인형 뽑기 방이 세 군데나 새로 생겼다. 인형 뽑기 방은 한동안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다가 또 한꺼번에 사라지는 거 같더니 요즘엔 다시 또 여기저기에 생겨나는 분위기다. 한번 피었다 사그라든 적이 있었던 사업이라 그런지 전과 달리 기계들도 반짝반짝 예뻐졌고, 현금만 받던 기계에는 카드 단말기가 붙었으며, 인형들도 전보다 훨씬 귀엽고 다양해졌다.
인형을 뽑는 것에 이렇다 할 재능도 없고 돈도 아깝다 보니 이런 쪽으로는 돈을 쓸 일이 거의 없었는데, 요즘 새로 생겨나는 인형 뽑기 방 앞에서는 이야기가 조금 달라졌다. 무엇보다 이제 유튜브 등에서 '인형 뽑기 팁' 같은 것들도 많이 올라오다 보니 그걸 보면 조금 도움이 되기도 한다. 결국 요즘엔 아이들과 함께 외출했다가 인형 뽑기 방을 만나게 되면 그대로 지나치지 못하고 들어가서는 만원, 이만 원은 우습게도 써버리고 만다.
그렇게 돈을 써서 인형이라도 하나 뽑으면 괜찮을 텐데, 하나도 뽑지 못한 날에는 차라리 이 돈으로 인형을 샀어도 몇 개나 샀겠다는 생각에 후회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아, 이제 그만해야지, 역시 이런 데에 돈을 쓰는 게 아니야, 하면서도 또 며칠이 지나 인형 뽑기 방 앞을 지나치면 이번에는 뽑을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지고 있는 현금을 탈탈 쓰고는 카드까지 긁게 된다. 뒤늦게 인형 뽑기에 중독이 된 셈이다.
그래도 예전보다는 확실히 인형을 뽑을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지긴 했다. 대리만족 삼아 보던 유튜브 인형 뽑기 팁을 실전에 활용하면서 집에는 어느새 작고 커다란 인형들이 소파며 아이들 침대 위에서 뒹굴 거리게 되었다. 아이들과 함께 움직일 때만 들어가던 인형 뽑기 방도 이제는 혼자 있을 때도 호기심에 들어가서 뽑아보고는 한다. 그렇게 며칠 전에는 구로동에 새로 생긴 인형 뽑기 방에 혼자 들어가 귀여운 미피 인형을 뽑기도 했다.
간혹 실패하고 또 성공하는 인형 뽑기를 경험하면서 이게 문득 글쓰기와도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튜브에서 본 인형 뽑기 팁 중 하나는 가장 멀리 있는 인형을 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무슨 말인고하니 가까이에 있는 인형을 들수록 인형을 들어 올리는 집게의 힘이 약한 반면, 멀리 있는 인형을 들 때에는 집게의 힘이 강해진다는 이야기. 그렇게 멀리 있는 인형들을 하나둘 출구 쪽으로 옮겨 탑을 쌓아서 꺼내야 한다는 이야기였는데, 그리 강심장을 지니지 못한 나는 늘 출구 가까이에 있는 인형을 들어 올리려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이게 참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조금만, 조금만 더 하면. 한 번만 더 하면 인형을 뽑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 아니 혹은 착각에 다시 돈을 넣고 카드를 긁게 된다. 아예 아니 될 성싶으면 진작에 포기하고 돌아섰을 텐데, 조금만 더하면 될 것 같은 상황이 사람을 돌아버리게 만든달까.
그러니까 이런 상황들이 글쓰기와도 몹시 닮았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글쓰기, 특히 책을 쓰는 일이 그렇다. 가령 출간을 위해 출판사에 투고를 하는 일만 보더라도 이게 아예 안 될 일 같으면 애당초 포기하고 돌아섰을 텐데, 출판사의 반응을 보고 있노라면 조금만 더 해보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한 번만 더 해보면 책을 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된다.
마치 금방이라도 뽑힐 것만 같은 인형 뽑기 기계에 돈을 넣어대는 것처럼 어쩌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글쓰기에 시간과 정력을 쏟게 된다. 글쓰기는 정말 인형 뽑기와 닮아서 그 결과로 무엇이 나올지는 알 수 없다. 커다랗고 귀여운 인형처럼 그럴싸한 결과물이 나올 수도 있고,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은 채 그저 '꽝'을 맛볼 수도 있다.
이렇듯 앞으로 무엇이 펼쳐질지 좀처럼 알 수 없는 글쓰기의 세계라지만 그래도 뭐 별 수 있나. 인형 뽑기처럼 당장에 돈이 들어가는 일도 아닌데, 조금 더 매달려 보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