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으, 가려워...”
동영은 오늘도 손가락에 피를 묻혔다. 언제부터였을까. 며칠 전 동영은 노트북으로 작업을 하다가 손목에 작은 반점이 생긴 것을 보았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반점은 시간이 지날수록 몸 곳곳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손목을 시작으로 팔을 덮은 반점은 곧 등과 가슴, 배까지 반경을 넓히더니 이내 동영의 목을 올라타 얼굴까지도 덮어버렸다. 온몸이 반점으로 불그스름하게 변한 동영은 거울을 보며 자기 모습이 흡사 괴물 같다고 여겼다.
반점의 끔찍함은 시각적인 것보다 가려움에 있었다. 동영은 반점이 커질수록 가려움증이 심해져 견딜 수가 없었다. 손이 닿는 곳은 날카롭게 긁어댔고, 그때마다 동영의 손톱이 파고든 살갗에서는 여지없이 피가 묻어 나왔다. 손이 닿지 않는 곳은 벽 따위에 몸을 비벼 가려움을 해소했다. 동영은 언젠가 혼자 사는 사람은 효자손이 필요할 테니 꼭 사두라던 친구의 말을 듣지 않은 게 후회됐다.
손목에 반점이 생기고 가려움증이 온몸으로 번진 그 시간 동안 동영이 넋 놓고 가만히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반점이 생기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동영은 집 근처 약국에서 약을 받아와 발라보기도 했다. 약은 동영의 가려움증을 잡아주지 못했다.
“이거 한번 발라보시고 안 나으면 꼭 병원에 가보세요.”
가려움증이 좀처럼 낫지 않자, 그제야 동영은 약을 건네며 병원에 가보라던 약사의 말을 떠올렸다. 평소 병원에 가는 일을 귀찮아하는 성격 탓에 몸이 아파도 어지간하면 참아내는 동영이었지만, 이번만큼은 사정이 달랐다.
동영은 몇 해 전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 국어 교습소를 차리고는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개인 교습소라는 게 으레 그렇듯 가르치는 아이들이 많은 달엔 그럭저럭 괜찮지만, 그렇지 않은 달엔 알바를 고민해야 할 정도로 벌이가 시원찮았다.
동영은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었지만, 그 수가 그리 많지 않아 늘 수입이 걱정이었다. 게다가 요 며칠에는 2년 넘게 가르쳤던 한 아이의 어머니로부터 더 이상 수업을 듣기 어렵겠다는 통보를 받아온 터였다.
동영은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아무래도 자신의 피부를 덮은 반점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며칠 전 수업 시간에도 동영은 무의식적으로 얼굴을 긁어댔고, 학습지의 지문을 가리킬 때 붉은 피가 묻은 손가락 끝을 보며 급히 손을 거두어들인 기억이 났다. 동영은 그때 바라보았던 학생의 눈빛에서 두려움과 경멸감을 읽었다. 그 학생은 수업을 끊겠다고 말한 어머니의 아이였다.
교습소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실력뿐만 아니라 외모까지 신경 써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 동영은 곧 병원을 찾았다. 병원에만 가면 시원하게 병명과 원인을 알아내 나아질 수 있을 거라 기대했지만, 기대는 곧 실망으로 돌아왔다. 동영은 일주일 동안 한 곳의 피부과와 성형외과, 두 곳의 내과에 들렀지만 모두 간단한 피부약을 처방해 주거나 정확한 병명은 알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병원에서 처방해 준 약은 약국에서 받아온 것과 마찬가지로 별 효과가 없었다. 결국 동영은 마지막으로 들렀던 내과에서 소견서를 받아 한 대학병원의 피부과 진료를 받아볼 수 있었다. 동영은 많은 환자가 그러하듯 인터넷에서 자신의 증세를 찾아 병명을 확신해 가는 사람 중 하나였다.
“혹시 건선이나 대상포진 같은 거 아닌가요?”
“아니에요. 건선, 대상포진 모두 아닙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제가 이전까지 보지 못했던 모양의 반점이에요. 혹시 최근에 외국에 다녀온 적이 있으신가요? 아마존 같은 열대우림 지역이라든지... 그런 곳에서 벌레에게 물린 적은 없으신가요?”
“저는 최근 몇 년간 비행기를 탄 적도 없습니다.”
“그러시군요. 일단 혈액검사와 함께 조직검사를 해봐야겠습니다. 다른 병이 원인일 수 있으니 CT 검사도 같이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지금으로서는 가려워도 참고 긁지 않는 게 가장 좋겠습니다.”
의사가 말한 이런저런 검사를 모두 마치고 일주일이 지나 병원에 다시 들렀을 때 동영은 답답함이 몰려왔다.
혈액검사 정상.
조직검사 이상 소견 없음.
CT 검사 이상 소견 없음.
결과지를 보여주며 의사가 말했다.
“의학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모든 게 정상이에요. 다만 심인성 가려움증이라는 게 있습니다. 스트레스가 심할 때 피부 발진이 일어날 수 있어요. 뇌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배출해야 하는데 그게 피부로 오는 거예요. 몸이 아니라 심리적인 요인이기 때문에 여기서는 치료가 좀 어렵습니다. 필요하시면 정신과 진료를 받아보시는 것도 추천해 드립니다.”
병원에서 나와 동영은 자신이 받는 스트레스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다.
처음 손목에 반점이 생겼던 바로 그날, 어떠한 일이 있었는지.
문예창작과를 졸업한 동영은 오랜 시간 소설가가 되는 게 꿈이었다. 평생 글을 쓰면서 살 수만 있다면 소원이 없겠다고 생각했다. 대학 생활을 하고 졸업 후 몇 년까지는 이런저런 문예 공모전에 글을 보내보았지만, 몇 차례 최종심 후보에 올랐을 뿐 동영의 이름이 수상자로 불린 적은 없었다. 소설가가 되지 못한 동영은 괴로웠다. 그렇게 동영은 몇 년 동안 꿈을 이루지 못한 사람으로 살았다.
회사 생활을 하고 싶지 않았던 동영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서울로 올라와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더 이상 글은 쓰지 않겠다는 생각의 상경이었지만, 꿈은 쉽사리 동영의 곁을 떠나지 못했다. 아이들에게 국어를 가르치면서 동영은 옛 소설들을 공부하게 되었고, 이내 다시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에 빠졌다. 자신이 동경해 마지않았던 소설가들의 반열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고 싶었다.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다시 충만해진 그때 동영은 한 이름난 문예지에서 단편 소설을 공모한다는 안내를 보았다.
동영이 노트북을 통해 문예지에 원고지 80매 분량의 소설을 보낸 날. 바로 그날부터 손목에 반점이 드러났음을 동영은 기억해 냈다.
전에 썼던 소설과 다른 것이라면, 소설의 얼개가 동영의 머리에서 나오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동영은 공모전이 있던 며칠 전 한 웹소설 커뮤니티에서 흥미로운 ‘복수극’의 시놉시스를 접했고, 거기에 등장하는 핵심 문장 몇 개를 가져다가 변형해 소설을 완성했다.
동영은 어쩌면 그것이 표절의 영역에 들어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동영은 온몸을 긁은 탓에 피딱지가 들러붙은 손으로 다시 노트북을 열었다. 그러고선 한참 소설 심사 기간에 들어간 문예지 측에 보낼 메일을 타이핑하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얼마 전 귀사에서 주최한 소설 공모전에 글을 보냈던 성동영이라고 합니다. 귀사에 제출했던 소설 응모를 취소하고자 합니다. 당선되지도 않은 글을 취소한다는 이야기가 우습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죄송합니다. 제가 그만 타인의 문장을 가져다가 글을 쓴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의식적이었는지, 혹은 무의식의 발동에 의한 것인지는 지금의 저조차도 알지 못합니다. 다만 제가 보낸 글이 혹여나 수상을 하게 된다면... 그때는 바로잡기에... 너무 늦어버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렇게 바보 같은 메일을 쓰게 되었습니다.
글을 쓰면서 사려 깊지 못했던 점 반성합니다. 훗날 귀사에서 새로운 공모전을 열게 된다면, 그때는 저 또한 새로이 글을 써서 응모해 보고자 합니다. 부끄러운 글을 보내드렸습니다. 죄송합니다...'
메일을 보낸 다음 날 눈을 떴을 때, 동영의 몸을 뒤덮고 있던 반점들은 모두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