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장편소설 <청록의 시간>
이듬해 3월, 입학식이 끝나고 경희대 수원캠퍼스를 돌아다녀보는 재호는 신세계에 온 것 같았다. 신전을 모티브로 지어진 커다란 정문부터, 드라마에서나 보던 대학 건물들, 책과 가방을 들고 걷고 얘기하며 자유로워 보이는 대학생들, 붉고 큰 글씨로 무언가를 호소하는 대자보들.
재호가 과실로 들어서자, 다들 교복을 막 벗고 어른 티를 내려는 동기들이 어색하게 앉아 있었다. 그때 선배로 보이는 한 남자가 들어왔다.
“신입생들, 반갑다. 난 94학번 조한형이다. 군대 갔다가 복학한 지 얼마 안 되어서 말투가 좀 딱딱한 것을 이해해 주길 바란다. 역사와 전통이 있는 우리 경희대 우주과학과에 온 것을 환영한다. 조경철 박사님께서 만드시고 수많은 존경스러운 선배님들을 배출한 곳이다. 우리 과의 이름인 <우주>는 집 우宇, 집 주宙가 합해진 말이다. 집집이라는 뜻일까? 아니다. 우宇라는 글자는 집의 사방을 나타내는 말로, 공간이라는 뜻이고, 주宙는 집의 기둥을 말하는 것으로 시간이라는 뜻이다. 즉, 우주라는 단어는 시공간이라는 뜻이다. 기원전에 쓰인 중국 고전 <회남자>라는 책에 처음으로 나오는 말이야. 이미 동양에서는 아인슈타인 이전부터 시공간이라는 개념을 알고 있었고 쓰고 있던 것이다. 그게 우리 과의 이름이다. 자랑스럽지 않나? 우리는 다른 천문학과와 다르게 우주과학을 더 심도 있게 배운다. 그만큼 우리 과는…”
선배라는 사람의 일장 연설이 이어지자, 과실 뒤에 와 있던 다른 선배들이 우- 우- 하며 ‘너무 길다~’, ‘아저씨 지루해요~’ ‘김조한 닮았어요~’라고 소리 질렀다. 그러자 조한형 선배는 머쓱했는지 머리를 긁적이다가 얼굴이 빨개졌다.
“야, 아니 나 때는 더했다고! 모르겠다. 이따 수업 끝나면 다들 정문 앞에 모여! 오늘은 술 먹자! 내가 할 얘긴 끝!”
재호는 그저 신기했다. 이게 대학교라는 거구나. 고등학교 입학 때는 선도부가 쳐들어와서 군기 잡고 가방 검사하고 그러더니, 대학교는 선배들이 밥을 사주겠다며 친근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게시판에 붙어있는 각종 화려한 동아리 모집 공고들을 보며 재호는 대학교에 왔다는 것이 한층 더 실감났다. <탈무드>라는 밴드 동아리도 보였다. 재호는 고등학교 때 밴드부 보컬이었기 때문에 밴드부에 한 번 들어볼까 하다가, 어떤 다른 동아리 이름이 눈에 띄었다. <K.O.A.L.A.> 코알라. 우주과학과 학술 동아리인데, 천문대를 이용해 별을 관측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신입생이구나?”
재호가 놀라서 옆을 돌아보니, 갈색 립스틱을 진하게 바르고 머리 한쪽에 노란 브릿지 염색을 한 여성이 후드티를 입고 서 있었다. 선배 같았다. 그 선배는 재호를 위아래로 휙휙 쳐다보았다.
“와, 너 잘 생겼다! 키도 크고. 우리 과에 올 인물이 아닌데? 이름이 뭐니?”
“양재호입니다.”
“난 96학번 선배야. 이은하. 반갑다! 손 한번 잡아보자~!”
살갑게 들이대는 모습에 재호는 현주가 떠올랐다. 허리를 숙이며 악수하자 은하는 반갑게 손을 흔들어댔다.
“꺄~! 좋아, 좋아. 이번 신입생들 물이 아주 좋네! 동아리 고르고 있니?”
“네, 신기해서 보고 있었어요. 저… 근데 여기 <코알라>라는 동아리 어떤 곳인가요? 괜찮나요?”
은하는 손을 휘휘 저었다.
“야, 거기 학술동아리야. 공부하고 교수님과 대학원생 뒤치다꺼리하는 곳인데, 뭐 하러 과에서 공부하는 걸 동아리 가서 또 하냐. 됐어~ 나 밴드부 <탈무드>인데 그리로 와! 너라면 노래 못해도 다들 엄청 환영해 줄걸?!”
재호는 웃으며 대답했다.
“거기가 천문대에서 별을 본다고 하길래요. 제가 별 보는 걸 좋아하거든요.”
은하는 어깨를 으쓱했다. 조금 실망하는 눈치였다.
“그래, 그럼 저 길 따라서 한번 천문대로 가 봐. 산꼭대기에 마징가 대가리처럼 생긴 게 있어. 아마 다들 거기 있을 걸?”
“감사합니다, 선배님.”
재호가 인사하자 은하 선배는 총총거리며 다른 남자 신입생들이 모여 있는 데로 걸어갔다. 재호는 건물을 내려가 천문대로 가려고 하는데, 앞에 광장이 보이고 멀리 신전처럼 보이는 큰 건물이 눈에 띄었다. 중앙 도서관이었다. 재호는 아까 과실에서 선배가 한 말이 문득 생각났다. <회남자>. 처음 들어보는 책이었다. 재호는 문득 우주라는 단어가 처음 쓰인 책이 궁금해졌다. 그 단어를 만든 사람이 있고, 그게 기록되어 있다는 것도 신기했다. 천문대는 뒤로 하고, 재호는 먼저 도서관에 갔다. 도서관은 정말 로마의 신전을 옮겨 놓은 것처럼 웅장하고 화려했다.
‘이야…. 내 등록금도 이런 데에 벽돌로 쓰이겠지….’
재호는 감탄하며 안에 들어가 구경꾼처럼 돌아다녔다. 도서관은 안에서 보기에도 규모가 상당했다. 재호는 신기해서 이곳저곳 둘러보다가, 겨우 한쪽 구석에서 <회남자>를 발견했다. 책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어디 보자…. 제자백가의 사상을 모아놓은 책이라고….’
원문에 주석이 길게 달려 설명까지 있는 책이었지만 어쩐지 어려웠다. 뜬구름 잡는 얘기들이 가득이었다. 그래서 책 뒤쪽에 있는 해설을 보았다.
‘아하, <성동격서>가 이 책에서 쓰인 말이구나…. 손자병법 같은 데에 나온 말인 줄 알았는데. 성언격동聲言擊東, 기실격서其實擊西를 줄인 말이라고…. 오, <새옹지마>도? 흠…. <사사오입>? 이거 그 이승만의 ‘사사오입 개헌’의 그거? 반올림이라는 뜻으로 이때 처음 나오는 거구나. 그런 유명한 사자성어들이 처음 쓰인 책이 있다는 게 신기하네…. 그런데 왜 이런 책을 여태 몰랐지? 이 정도면 꽤 유명해야 할 것 같은데. 나만 몰랐나?’
재호는 책의 저자를 보았다. 유안. 역시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재호는 흥미롭게 몇 구절 더 보다가 덮었다. 산꼭대기에 있다는 ‘마징가 대가리’가 생각났다.
그해 우주과학과, 특히 동아리 <K.O.A.L.A.>는 난리가 났다. 동아리 지도교수인 장민환 교수가 기린자리 옆에서 국내 최초로 변광성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재호가 입학하기 전 몇 달에 걸친 자료를 바탕으로 학계에 논문을 제출했는데, 학계에서 식쌍성으로 인정받고 ‘경희성’으로 이름 붙여졌다. 신문은 물론이고 TV 뉴스에도 나오며, 국내 천문학계는 들썩였다. <K.O.A.L.A.>에 3기로 들어온 재호는 들어오자마자 온갖 흥미진진하고 흥분된 소식에 들뜨게 되었다. 그래서 자신도 언젠가는 별을 발견하고, 그 별에 특별한 나만의 이름을 붙여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바로 옆에서 교수님과 선배들이 해내는 모습을 보니, 그것도 꿈이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아무리 재호가 우주과학과나 천문 동아리에 있다고 해도, 학교 천체망원경으로 매일 밤 별을 볼 수는 없었다. 학교에서는 생각과 달리, 별을 직접 보는 일보다 이론 수업이나 데이터와 자료를 정리하고 계산하는 일 더 많았기 때문이다. 재호는 개인 망원경이 하나쯤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컴퓨터를 사려고 모았던 돈으로 개인용 천체망원경을 샀다. 아버지가 해외 무역을 한다는 조한형 선배를 통해서, 미국에서 수입한 ETX 망원경을 100만 원 가까이 주고 샀다. 크기는 작은데 성능은 좋아 들고 다니며 별을 볼 수 있는 제품이었다.
희영은 재호가 모아둔 돈으로 망원경을 샀다는 걸 알자, 재호의 등짝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그래도 재호는 즐거웠다. 이런 작은 망원경으로 새로운 별을 발견할 리가 없지만, 원하는 만큼 별을 보는 것이 재호가 늘 바라던 것이니까.
마침 여름방학이라 본가로 가 있던 조한형 선배는, 망원경을 소포로 부쳐주었다. 망원경이 배송 온 날, 재호는 박스를 풀어 바로 조립하고 이것저것 만져보았다. 그리고 저녁이 되자 바로 집 옥상에 올라가 보았다. 하지만 아무래도 가로등과 주택가의 빛이 많아 보이지 않았다. 재호는 망원경을 들고 그대로 남한산성으로 올라갔다. 거기 성곽 주변에는 빛이 전혀 없는 곳들이 많아, 야경뿐 아니라 별 사진을 찍는 아마추어 사진가들도 많았기 때문이다. 재호는 사람이 별로 없는 북문으로 향했다. 아니나 다를까, 아저씨들 서너 명만 카메라를 세워놓고 앉아서 별을 찍고 있었다.
재호는 망원경을 설치하고 달을 보았다. 천문대에서 보던 것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달의 크레이터까지 선명하게 보여서 기분이 좋아졌다. 다음은 목성. 망원경의 모터를 돌려 목성을 찾아냈다. 목성의 대적반을 선명하게 보다, 시리우스를 찾아서 보고 마지막으로 교수님이 발견한 경희성을 보려고 했다. 그러자 북문의 지붕과 문루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망원경에서 눈을 떼고 자리를 다시 잡으려는데, 문루 성벽에 누군가 흰옷을 입고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검은 머리칼이 길게 휘날리고 있었다. 주변을 돌아보니, 어느새 사진 찍던 아저씨들도 사라진 뒤였다. 재호는 조금 무서워졌다. 혹시 귀신인가? 그럴리는 없다. 게다가 저 머리칼 날리는 뒷모습만 봐도 예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재호는 망원경을 들고, 성문 옆 흙으로 된 비탈을 따라 낑낑거리며 올라갔다. 그리고 재호는 그곳에서 한 여자를 보았다.
흰 반팔 티셔츠를 입고 바지는 세미 힙합 스타일의 펑퍼짐한 청바지였으며 황토색 워커를 신고 있었다. 그 여자의 반쪽은 달빛이, 다른 반쪽은 가로등이 비쳐 묘한 느낌을 자아냈다. 여름밤이었지만 그 여자의 주변 공기가 서늘한 듯 시린 분위기가 있었다. 그 여자는 눈을 내리깔고 카메라를 만지고 있다가, 앞에 보이는 야경을 찍고 있었다. 그러다 재호가 올라오는 것을 알아채고, 재호를 돌아봤다. 재호는 숨이 멎을 것 같았다. 그 여자의 눈은 갈색이었지만 멀리서도 보일 정도로 묘하게 빛나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빛나는 것같이 선명한 그 눈을 보자 조금 섬뜩했다. 그 여자는 웃으며 고개를 까딱했다. 그리고 재호가 들고 있는 망원경을 가리켰다.
“별 보러 왔어요?”
마치 아나운서처럼 또박또박한 그 여자의 말투에 재호는 순간 두근거렸다. 자신에게 편지나 선물을 주며 고백한 친구나 후배들은 많았지만, 재호 자신이 직접 누군가에게 두근거림을 느낀 것은 처음이었다.
“네…! 원래 별 보는 걸 좋아했지만…. 이… 이번에 대학교 들어갔는데 교수님께서 새로운 별을 발견하셨거든요. 그래서 그냥…. 새로운 별을 발견한다는 건 안될 걸… 알면서도 하나 샀어요. 그… 충동적으로요. 하하핫….”
재호는 여자 앞에서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는데 말을 더듬기까지 했다. 그러자 그 여자는 웃으며 말했다.
“아~ 신입생이네요. 전 저 밑에 경기교육도서관에서 일해요. 새로운 별이라는 거, 경희성이죠? 뉴스에서 봤어요. 대단하더라구요~”
“아니, 말씀 놓으세요. 그럼 제가 동생이니까. 편하게… 네… 하하.”
어색한 웃음에 여자는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음~? 그래 그럴게 그럼. 이름이 뭐야?”
“재호입니다. 양재호.”
“양재호? 아…. 재호. 그렇구나. 그래. 난 김진주. 원래 처음 본 사람한텐 안 그러는데 넌 잘 생겼으니까 누나라고 부르는 거 허락해 줄게. 하하하!”
“하핫…. 네 그런 얘기 자주 듣습니다, 하핫…”
진주는 무릎을 치며 깔깔거렸다.
“푸하핫! 너 진짜 웃긴다! 그런 얘길 자기 입으로 해? 뻔뻔하긴!”
재호는 진주의 옆에 슬쩍 앉으며 말했다.
“사실… 그런 얘기도 자주 들어요. 하하핫. 그런데 여기서 뭐 하고 계세요? 여기서는 야경도 잘 안 보이는데.”
“응, 이제 며칠 뒤면 여행을 가야 해. 일 때문에 중요한 사람을 만나러 가야 하거든. 하지만 아직 여행에 익숙지 않아서…. 그래서 지금은 잠깐 쉬는 중이야. 여행 가기 전에 숨을 좀 돌리고 있는 거랄까. 그런데 생각지도 못하게 잘생긴 애를 만났네! 저기 서문 쪽은 사람도 많고 그래서, 이쪽에서 별도 보고 멀리 하남 야경을 찍고 있는 거야. 그런데 이 일회용 카메라로 잘 나올까 모르겠다. 현상해 봐야 알겠지….”
“… 별 보는 걸 좋아하세요?”
“그럼! 좋아하지. 별을 보고 있으면 그 자체로 이 우주가 어떻게 생겼는지 제대로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거든.”
진주는 하늘을 보며 아련한 듯 이야기를 이어갔다.
“우리는 모두 지금 도착한 빛을 보는 거지만, 각각 빛이 출발한 시간이 다르잖아. 어떤 것은 10년 전, 100년 전, 1000년 전…. 심지어 수억 년 전의 빛도 지금 바로 이 순간에 한 번에 보고 있다는 거…. 예전에 어느 책에서 본 얘기인데, 우리는 우주를 비스듬히 보고 있다는 말이 있었어. 우리가 우주를 바라볼 때 시간의 타임라인을 직선으로 자른 게 아니라, 비스듬하게 자른 단면을 보는 거라고. 그래서 그런지 별은 언제 봐도 신비롭게 느껴져. 별을 본다는 것 자체가 각각 다른 과거를 한꺼번에 보고 있는 거잖아. 타임머신이 따로 있나? 별 보는 게 타임머신이지. 아! 저 빨갛게 빛나는 별. 저건 별이 엄청 멀어서 생기는 적색 편이 아닐까?”
“네? 저거요? 정말 그럴 지도….”
재호는 진주의 이야기를 멍하니 듣다가, 대충 얼버무리며 답했다. 그러자 진주는 재호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야, 너 별 배우는 대학생 맞아? 맨눈으로 보이는 별들은 다 우리 은하 안에 있는 별인데 적색편이가 맨눈으로 보일 리가 있냐! 으이구 정신 차려~ 저거 비행기잖아. 저기 미군부대에서 떴나 보네. 옆으로 움직이잖아!”
사실 재호는 진주의 말이 다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냥 진주가 말을 하는 모습과 웃는 모습, 조곤조곤 설명하는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었다. 예쁘다는 말이 모자랐다. 아름답다? 아니다. 경이롭다? 조금 비슷하다. 그런데 느껴지는 이 기시감은 뭘까. 처음 본 사람 같지가 않았다. 예전에 어디서 만났던가? 아니다. 그렇다면 저 모습을 잊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한국인 같지 않게 이목구비가 또렷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서양인 같지도 않았다.
“… 누난 혼혈이에요? 신기하게 생기셨네요.”
진주는 재호를 빤히 보았다. 그리고 대답했다.
“뭐…. 혼혈은 아니야. 너는 신기하다고 하지만…. 남과 다르다는 건, 살다 보면 어디서도 좋은 건 아니야.”
“아…. 저기 미안해요. 단어를 잘못 선택한 거 같아요. 좋은 뜻으로 말한 건데….”
진주는 어깨로 재호를 툭 치며 미소 지었다.
“괜~찮~아~. 신기하다는 얘기 한두 번 듣는 것도 아니고. 칭찬 고마워.”
진주는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시간이 너무 늦었네. 이제 들어가야겠다~. 그거 최신 망원경이지? 한번 보고 싶었는데 아쉽네.”
재호는 당황해서 황급히 말했다.
“저…. 누나! 전화하면 안 될까요?”
진주는 일어나서 바지의 흙을 툭툭 털면서 재호를 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집에 부모님이 계셔서 전화는 곤란해. 삐삐도 없고. 하지만….”
진주는 몸을 일으켜 재호를 쳐다봤다.
“여행 가기 전까진 매일 저녁 이곳에 나올 테니까, 괜찮으면 내일도 그거 들고 나올래? 보는 법 가르쳐줘.”
“네, 네…! 좋아요. 그럴게요.”
“그래. 그럼 나 먼저 간다, 안녕~!”
진주는 황급히 다다닥 달려 문루에서 내려가, 금세 산길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재호는 가슴 아래에서 무언가 풍선처럼 커지는 느낌이 들었다. 터질 듯 부풀어 오르는 무언가를 주체하지 못해 폴짝폴짝 뛰었다. 그리고 망원경을 챙겨들고 하늘을 봤다. 달이 웃고 있는 듯했다. 내일이 이렇게 기다려지기는 처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