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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는 중요하지 않다

by 산호

강물을 생각하려 한다. 구름을 생각하려 한다. 그런 본질적인 면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생각하고 있지 않다. 나는 소박하고 아담한 공백 속을 정겨운 침묵 속을 그저 계속 달려가고 있다. 그 누가 뭐라고 해도 그것은 여간 멋진 일이 아니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045>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라는 에세이를 오래전에 읽었다. 에세이라는 장르를 좋아하는데 그중 손에 꼽게 좋아하는 책이다. 하루키 작가의 달리기 열정은 책을 읽어 익히 알기에 따라 할 법했지만 나이 마흔이 넘으면서 무릎이 안 좋아졌다. 아무래도 앉아있을 때 다리를 꼬고 앉는 습관과 소파대신 바닥에 앉아 생활하는 것이 무리가 간 것 같다. 그래서 내가 달리기를 시작하리라곤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언젠가부터 유튜브 알고리즘이 나를 달리기 영상으로 인도했다. 달리기 전도사 션의 호주 마라톤 영상을 보았고 또 다른 일반인 러너들의 영상들이 추천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나도 용기를 내어 달리기를 시작했다. 사실 달리기라기보다 빠르게 걷기 수준이지만 말이다. 그 시작은 런데이가 함께했다.


첫날은 이어폰을 챙겨 집 앞 공원으로 향했다. 평소에는 걷기만 하던 곳이었는데 달리기를 하려고 서니 공원 트랙이 달리 보였다. 런데이 30분 달리기를 켜고 안내해 주는 대로 따라 뛰었다. 워밍업으로 5분 걸은 후 1분 달리고 1분 걷기를 5세트 하기, 그리고 마무리 걷기 5분을 해냈다. '달리기, 아니 이렇게 쉬운 거였어!' 혼자 속으로 탄성을 질렀다. 첫날 출발이 좋았다. 정말 이렇게 라면 매일 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공원에서 달리기를 2주 차를 마칠 즈음 날씨가 추워지기 시작해 헬스장 등록을 했다. 러닝머신에서 달리기는 왠지 야외 달리기보다는 싱거웠다. 하지만 러닝 후 스트레칭과 근력운동을 할 수 있어 좋은 점도 있다. 평일에는 퇴근 후 헬스장에서 달리고 주말에는 야외에서 달리고 있다. 그리고 오늘 7주 차 런데이를 마무리하였다. 워밍업으로 5분 걸은 후 10분 달리고 3분 걷기, 그리고 다시 15분 달린 후 마무리 걷기 5분.


사실 달리기 속도는 거의 빨리 걷는 수준에 불과하다. 엄밀히 말하면 달리기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50대초반의 나이에 아주 천천히라도 달릴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달리고 난 후 수건으로 흐르는 땀을 닦는 기분은 말로 형용할 수 없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7주 차까지 해낸 것이다! 스스로 대견함에 어깨가 으쓱 올라간 상태이다. 런데이 30분 달리기 8주 차 미션을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이 더 강해졌다. '나도 30분 달릴 수 있을 것이다, 아니 달릴수 있다.'


중요한 것은 욕심내지 않고 내 페이스 대로 무리하지 않고 천천히 따라가야한다. 100세 인생 절반 가까이 살다 보니 인생사 속도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탄탄대로를 달리다가도 한순간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하고, 우직하게 천천히 거북이처럼 가다가도 황금거북이가 되기도 하는 것이 인생이다. 가까운 봄날 벚꽃길을 달리는 기분을 상상해 본다. 내 속도대로 느리지만 꾸준히 달려보자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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