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늦은 점심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큰 아이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 지금 속리산이야. 친구랑 등산 왔는데 정상이 30분 정도 남았어.
-엉?
얼른 시계를 보니 오후 3시다. 겨울산은 해가 일찍 져서 정상을 찍고 내려오면 7시는 될 것 같은데.
-정상은 다음에 가고 지금은 내려가는 게 좋을 것 같아. 산에서 해 금방 져.
-어, 그래. 알았어. 그럼 내려가야겠다.
-휴대폰 배터리 있어?
-응, 보조배터리 빵빵한 거 가지고 왔어.
아이와 전화를 끊고는 오후 내 계속 걱정이 되었다. 제대로 된 등산화도 없는데, 운동화 신고 올라갔을 텐데. 해져서 길 잃으면 어쩌지...... 22살 다 큰 어른이를 걱정하고 있는 나 자신을 본다. 자식 걱정은 죽을 때 까지라는데.
한참 뒤 6시 30분쯤 다시 걸려온 전화.
아이는 결국 정상을 찍고 내려왔다고 한다. 정상 부근에 눈이 와서 미끄러워서 오르느라 힘들었다고. 그래서 내려올 때 친구랑 미끄럼 타면서 내려와서 빨리 내려왔다고 한다. 어이가 없었다. 헛웃음만 나왔다. 이어서 가족톡방에 도착한 속리산 정상 인증샷.
사진 속 속리산 설경이 멋졌다. 자식, 나도 아직 못 가본 산인데. 내심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나 같으면 겨울 등산복에, 속에 입을 얇은 내복에, 아이젠을 챙기고, 등산 스틱을 챙기고, 따뜻한 물에, 핫팩에.... 등등 끝도 없는 겨울산행 준비물 챙기다 볼일 다 볼 텐데. 아이는 등산 가방도 아닌 고등학교 때 책가방에(요즘 아이들 책가방은 등산가방이지만,,,) 평소 입는 옷을 입고 올라갔을 것이다.
이제 친구랑 삼겹살 먹으러 간다는 아이. 아마도 신발도 젖고 바지 끝자락도 젖었을 것이다. 그러나 상관없을 것이다. 천왕봉도 쉽사리 오르는 젊음을 장착했기에.
젊음이 좋구나.
아름다운 청춘, 안전하게 잘 즐기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