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 도쿄는 가는 게 아니라는데
8월 초 우리는 도쿄로 떠났다. 성인이 된 아이 둘과 나는 겨우 일정을 조율해서 3박 4일 도쿄에 머물기로 했다. 작년에 도쿄를 다녀왔던 큰 아이가 가이드를 해주기로 해서 부담없이 짐만 챙기면 되었다.
하지만 아뿔싸 여행 이틀 전 캄차카반도 지진이 일어났고 일본에 쓰나미 경보가 떠서 여행을 취소해야 하나 고민을 했다. 코로나 시절 일본 여행을 계획하고 출국 전날 실시한 코로나 검사에셔 큰아이가 양성이 나왔었다. 어쩔수없이 일본여행을 취소하고 인천 차이나타운을 여행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일본은 나와 운때가 안맞나 싶었다. 유언이라도 쓰고 떠나지 뭐, 마음은 혼란스러웠지만 애써 쿨한 척하며 여행을 예정대로 진행하기로 했다.
다행히 쓰나미는 피해 없이 지나갔고 태풍에 비 소식이 있었지만 도쿄는 여행 내내 우리에게 맑은 날씨를 선사해 주었다. 대신 강렬한 폭염으로 양산과 손선풍기는 필수템이었지만 말이다.
무더운 날씨에 관광지 여행은 패스하였고 여유롭게 맛난 음식을 먹으며 느긋하게 즐기기로 했다. 도쿄에서의 3박 4일 기록을 남겨본다. (실은 먹은 기록밖에 없지만.)
1일차
나리타 공항에 도착해 숙소에 짐을 맡기고 늦은 점심을 먹으러 갔다. 원래 가기로 한 식당은 문을 닫아서 숙소 근처 시장에 들렀다.
나이 지긋한 일본인 부부가 대기하고 있던 초밥집이라 왠지 믿음이 가서 들어갔다. 모듬 초밥과 회덮밥 비슷한 것을 주문했다. 초밥도 맛있었지만 유부가 들어간 장국이 맘에 들었다. 더 달라고 하고 싶었지만 현지인만 있는 식당에서 왠지 한국인 티내는 것 같아 참고 작은 아이가 남긴 것을 더 먹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당당하지 못했던 것이 아쉽다. 다음엔 일본어 공부해가서 도전해 보아야겠다.
초밥집 바로 앞에 있던 말차 카페에서 말차 라떼를 주문했다. 여름이면 흰다정의 말차블랑이 생각나 자주 들르는데 올해는 일본에서 말차 라떼를 마셨다. 그냥 행복했다.
큰아이의 인스타 일본인 친구가 지금 긴자에서 차 없는 거리 행사 중이라고 해서 긴자로 이동했다. 차츰 저녁이 내리는 긴자 거리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기모노를 입은 사람들도 많았다. 무슨 행사여서 기모노를 입은 지는 모르지만 기모노입은 모습이 생각보다 이뻤다
푸드트럭 중 가장 인기가 있는 빙수차에서 복숭아 빙수를 사먹었다. 빙수를 먹으며 놀란 것은 사람이 그렇게 많아도 쓰레기 하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우리나라 같으면 푸드트럭에서 사 먹은 쓰레기와 버려진 테이크아웃 컵들이 넘쳐날 것 같았는데 말이다. 일본 도착해서 숙소를 찾아가면서 놀란 것도 깨끗한 거리 모습이었다. 단정하고 말끔한 거리와 평범하지만 아기자기한 골목길 걷는 것도 지금 생각해 보니 힐링이 되었다.
긴자 거리를 구경하고 저녁으로 야끼니꾸를 먹으러 갔다. 한점씩 구워 밥에 싸 먹는 고기들이 맛났다. 특히 처음 먹어본 우설의 식감이 지금도 생각난다. 작은 화로에 느긋하게 고기를 구워 먹는 것도 재미있었다. 큰아이와 맥주잔을 기울이니 기분이 묘했다. 더운 여름, 더운 곳에 일하는 아이는 도쿄가 아무리 더워도 휴가라 일안해서 좋다고 했다. 나름 직장인으로 잘 살고 있는 큰아이가 대견했다. 이렇게 엄마 끌고 일본까지 데리고 와주고 고맙기도 했다.
숙소 들어오기 전 편의점에 들러 간식을 사가지고 왔다. 컵누들 내취향이었다. 도쿄 도착한 날이 작은아이 생일이어서 간단하게 조각케익으로 초 대신 포크를 꽂고 생일축하를 해주었다. 조각케익에 올라간 포도인지 샤인머스켓인지 아무튼 신선하고 역시 맛났다!
2일차
여행 2일차 첫 일정으로 시부야 이치란으로 향했다. 매장 입구에서 라멘을 결재를 하고 매장으로 들어갔다. 한국인을 위한 주문 용지도 있었다. 기본으로 주문을 하고 기다렸다.
라멘이 나오고 감동란같은 반숙란과 김, 그리고 추가로 주문한 다시마와 고기를 넣어 함께 먹었다. 특히 김이 너무 맛있었다. 김의 재발견이었다. 오전 이른시간이라 손님이 별로 없어 매장이 고요해서 후루룩 먹지 않고 정말 조용히 먹고 있는데 옆에 중국인 손님들은 후루룩 후루룩 맛나게 드셨다.
참, 특이했던 것! 화장실 화장지였다.
굿 아이디어! 손님이 얼마나 많으면 화장지를 8개까지 걸어놓을 수 있을까. 신기해서 사진을 찍어 딸아이에게 보여주니 아이도 사진을 찍어왔다고 한다. 라멘을 먹고 11시쯤 매장을 나가니 계단 아래까지 손님들이 줄을 섰다. 전 세계인들이 이치란 라멘을 먹으러 왔다.
라멘을 먹고 시부야 거리를 거닐며 사람 구경도 하고 쇼핑도 하였다. 팝마트에는 그늘도 없는 땡뻩에 양산쓰고 기다리는 사람들 줄이 끝도 없었다. 우리도 기다려볼까 농담을 건냈지만 무더위에 줄서서 기다릴 자신이 없었다. 대신 근처 디올 건물의 플렌테리아 카페가 인상적이어서 올라가봤다.
도쿄의 골목골목도 아기자기하고 이뻤다. 배롱나무가 너무 예뻐서 주인 허락도 없이 찍어봤다. 나중에 보니 노란 속옷이 걸린 것이 더 인상적이다. 그리고 일본의 무궁화 왜이리 이쁜지! 우리나라와 품종이 좀 다른 것 같았다.
쇼핑하면서 차마실수 있다고 해서 들른 곳, 카페가 블루보틀이었다. 하지만 앉을 곳은 많이 없었다. 동그랗게 만든 기둥에 앉는 자리가 있었는데 나이드신 분들만 앉아계셨지만 아이들 체력 따라가라면 나는 쉬어야 했다. 더위에 지쳐있었는데 레몬에이드로 상큼하게 재충전했다.
여행하면 길거리 음식도 빼먹을 수 없는데 타코야끼와 슬러쉬. 가게 건너편 화단 비스므리 하게 생긴 곳에 앉아서 먹었다. 잠깐의 휴식이 달았다.
저녁으로 텐동을 먹으러 갔다. 역시 맛집인지 30분 정도 대기하고 들어갔다. 2층으로 안내 받아 올라갔는데 자리는 좀 협소했다. 우리와 같이 줄을 서 있던 1인 손님들이 먼저 입장했는데 다른 손님들과 합석해서 앉아있었다. 대신 합석한 손님들과 어색하지 않게 가림막이 있었다. 사람이 꽉 차있었지만 모두들 조용했다. 이야기를 해도 조용조용 속삭이는 분위기였다.
드디어 텐동이 나왔다. 비주얼은 합격이다. 맛도 합격. 하지만 양이 너무 많았다. 누가 일본인들 소식한다고 했을까. 장어를 먼저 먹었어야 했는데 장어를 마지막에 먹는 바람에 반정도 남긴 것이 아깝다.
생수대신 나온 따뜻한 콩차가 구수했다. 맥주를 마시고 싶었지만 콩차에 반해 콩차만 연신 마셨다. 검정콩은 볶은 콩맛이 났다. 집에서 콩차 만들어 먹어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아직이다.
3일차
3일차에는 도쿄타워를 보러 갔다. 멀리 보이는 빠알간 도쿄타워가 근사했다. 도심 속에 누가 타워를 만들 생각을 했을까?
큰 아이가 가는 길에 소바를 먹자고 했다. 나는 야채 튀김과 밥, 냉소바를 시켰다. 가격은 생각보다 저렴했다. 주로 근처에서 공사하는 남자분들이 많이 오셨다. 현지인 맛집인 느낌이랄까. 집에서도 여름이면 냉소바를 해먹기도 한다. 메밀면 삶고 소스를 만들면 끝이다. 소바소스에 물 섞고 무를 갈아 넣고 와사비 넣어주면 되니 만들기 간단해서 여름이면 최고의 메뉴이다. 역시 일본 소바도 맛났다.
도쿄타워가 보이는 공원에 사진찍으러 갔다. 커플끼리 온 중국인 관광객도 보였고 친구인 듯한 한국인 젊은 여성들도 보였다. 각기 좀 떨어져서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중국인 커플이 우리 앞으로 와서 사진을 찍어서 좀 황당했다. 몇장 찍고 가겠지 해서 기다렸는데 백장은 찍은 듯했다. 아놔! 짜증이 났지만 우리도 옆에서 찍기 시작하니 비켜주었다. 더워도 서로 지킬 건 지키자구요.
사진으로 다시 보니 도쿄타워 색감 미쳤다. 도쿄타워 인증샷을 찍고 다음으로 진짜 도쿄 타워에 갔다.
도쿄 타워 상가에 있는 베스킨라빈스, 일본에만 있는 슬러쉬라나. 슬러쉬에 아이스크림을 올려주는 거였는데 날씨가 더우니 아이스크림보다 슬러쉬 마시는 것이 더 좋았다. 컵이 이뻐서 슬러쉬 다 마시고 컵 챙겨왔는데 짐 챙기면서 다시 버리고 왔다. 아쉽!
저녁에는 시부야 야경보러 가기로 했는데 타워 표가 매진이었다. 저녁 먹기엔 시간이 좀 일러 스타벅스 구경하고 차나 마시고 가자고 했는데 지나가다가 보니 몬자야끼가 보였다. 큰아이가 유명한 곳이라고 먹고 가자고 해서 들어가게 되었다. 다행히 웨이팅없이 들어갔다.
명란몬자 먹자마자 한국에 있는지 검색해 볼 정도였다. 부드러우면서 자극적이지 않은데 계속 손이 가는 맛이었다. 조그만 주걱으로 긁어먹는 맛이 있다. 우리네 볶음밥처럼 말이다. 처음보면 뭐 이래, 비주얼은 그런데 맛은 보장한다. 남녀노소 누구든 좋아할 맛이다. 1인분만 주문해서 아쉬어 다음엔 2인분 주문하기로 했다. 그게 언제가 될 지 모르지만! 다음으로 나온 오코노미야끼는 평타 정도였고 그리고 마지막 야끼소바는 맛있었다.
몬자야끼에서 저녁을 먹고 돈키호테 구경을 갔다. 가는 길에 만난 유명한 스크램블 교차로. 전세계 젊은이들이 인증샷을 찍으려고 횡단보도 파란불이 켜지길 기다리는 곳이었다. 나도 저런 젊은 날이 있었지!
4일차
마지막날 아침은 편의점에서 간단하게 사와서 먹었다. 세븐의 장국은 7가지 야채가 실하게 들어가 있었다. 그리고 매일 먹었던 요플레. 과일조각이 큼직하게 들어있다. 상하이에서 먹었던 요플레가 생각났다. 상하이 요플레도 맛있었는데 말이다. 사진은 없지만 연어삼각김밥 너무 맛있었다. 전날 아이가 야식으로 사왔던 삼각김밥이 입맛에 맞아 또 사왔다. 아이들은 다른 것을 사오지 그랬지만 뭐 알아야 사오지. 연어는 콩알만큼 들어갔지만 심플하면서도 담백한 맛이 좋았다. 흰밥조차도 맛있었다. 의외로 일본 음식이 담백하고 내 입맛에 잘 맞았다.
참, 숙소는 큰아이가 전에 묵었던 곳보다 크다고는 하는데 캐리어 놓을 공간이 없어 불편했다. 욕실의 욕조도 반만한 크기라 조심스레 샤워를 해야했다. 세면대도 작은 것이 귀엽기까지 했다. 하지만 3일정도 묶다보니 적응이 되어서 이렇게도 살 수 있구나 싶었다. 제주도 올레길 캠프 숙소도 이곳처럼 작았던 것 같은데 잊고 있었다. 일본사람들의 군더더기 없는 인테리어가 맘에 들었다. 깨끗한 거리, 더 깨끗한 화장실, 특히나 잘 정돈된 화단, 차없이 한산한 도로, 정해진 곳에만 주차되어 있던 차들, 간판이 뒤엉켜 있지 않은 모던한 건물. 왜 젊은이들이 일본을 좋아하는 지 알것 같았다.
인천공항에서 도착해 큰아이와 헤어지고 작은 아이와 고속버스를 기다리며 제육덮밥과 돌솥비빔밥으로 늦은 점심을 먹었다. 집으로 돌아와 캐리어를 정리하고 냉장고에 도쿄타워 엽서를 붙이며 일본여행을 마무리했다.
고작 만 3일동안 일본을 안다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숙소로 돌아가던 고요한 작은 골목들이 내겐 위안이었다. 좀 더 선선했더라면 더 많이 걸었을텐테 아쉬움이 남는다. 심심한 삼각김밥과 칼이 없어 먹지 못하고 숙소 냉장고에 넣어두고 온 200엔짜리 사과 한 알, 나 좀 보고가라고 이끌던 수수한 무궁화까지 벌써 그리워진다. 아이들과 소중한 시간을 함께 해서 더 좋은 기억으로 남은 도쿄, 이젠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