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 전 신청해 두었던 바닷가 앞 초특가 숙소가 당첨되었다. 1박에 3만 원, 즉 2박 3일에 6만 원이라니. 도쿄를 다녀온 여독이 가시지 않아 숙소를 취소할까 했지만 아이가 놓치기 아까운 기회라고 회유해서 마지못해 열흘 만에 다시 여행가방을 쌌다. 식사를 해 먹을 수 있는 숙소였지만 먹거리까지 챙기기엔 에너지가 바닥이라 제외하고, 옷가지들과 세면도구 그리고 수영복과 튜브를 챙겼다.
첫날은 체크인 후 가볍게 근처 산책을 하고 지냈고 다음날 오전에야 바다에 놀러 나갔다. 함께 간 아이는 컨디션이 좋지 않아 해변에 누워서 쉬었고 혼자 튜브를 가지고 바다에 나갔다. 생각보다 수면이 낮아서 혼자 놀기에 좋았다. 한낮 제일 더운 시간이지만 바다에서 정신없이 놀다 보니 슬슬 추워지기 시작했다. 내가 춥다고 하니 아이가 근처 편의점에서 컵라면과 뜨거운 커피를 사 왔다. 파라솔 아래서 바다를 바라보며 먹는 음식은 뭐든 다 맛있다.
다음날 아침도 평소처럼 6시가 넘으니 눈이 떠졌다. 자는 아이는 두고 혼자 아침에 해변을 따라 멀리 전망대까지 걸어갔다. 돌아올 때는 맨발로 모래사장을 걸어서 왔다. 숙소로 돌아오니 그래도 시간은 8시였다. 간단하게 사과와 요구르트로 아침을 때우고 미리 짐도 정리해 놓았다.
퇴실을 하려면 2시간쯤 남아서 혼자 수영을 하러 바다에 나갔다. 일요일 아침 바닷가는 조용했다. 11시 체크아웃이라 늦어도 10시에는 씻고 준비를 해야 하니 핸드폰을 가지고 갔다. 백사장에 우산으로 핸드폰에 해가 비치지 않도록 잘 가려두고 바다에 들어갔다.
오늘은 파도가 없어 심심했다. 온몸의 힘을 빼고 튜브에 몸을 맡기고 바다에 둥둥 떠서 하늘을 바라본다. 어제와 달리 긴장을 풀고 유유히 바다를 떠다니며 여름내 고생한 몸을 바다에 맡겼다. 수영도 못하고 물도 무서워하는 편인데 이번엔 달랐다. 바닷물이 편안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연신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않는 나를 발견했다.
고요한 바닷가에 한산한 시간이라 안전요원도 휴대폰을 보고 있다. 바다 위 서쪽으로 길게 늘어진 구름이 멋스럽다. 초록색 아기 물고기 떼가 내 옆을 지나갔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아기 물고기 떼를 따라가 봤다. 그러다 옆에서 놀고 있는 초등학생쯤으로 보이는 남자아이에게 물고기 떼가 지나간다고 알려주었다. 물고기가 없어지면 다시 내 영역의 바다로 돌아와 둥둥 떠있었다. 시간이 멈춘 것 같은 비현실적인 느낌이 들었다. 이제 막내가 대학생이 되어 육아를 막 끝낸 자의 여유라니! 유난히 파란 하늘이며 저 멀리 수평선이며 가끔씩 불어오는 바람이며 뜨거운 태양마저도 아름답게 느껴진다. 여름이 이렇게 좋을 수도 있구나 싶었다. 순간 어느 작가의 책이 생각났다. 어른의 행복은 (이토록) 조용하다.
바닷가에 살면서 바다에서 놀았던 기억은 별로 없다. 그렇게 20대에 이르러 지금 같은 여름철 친구들과 해수욕장을 갔었다. 친구들과 손을 잡고 파도가 오기를 기다렸다. 파도가 오면 함께 점프를 하며 신나게 파도를 맞았다. 그때의 깔깔 거리며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바다가 즐거운 곳이라는 것을 처음 알던 순간이었다. 그렇게 은빛 여름을 즐겼고 지금은 각자의 인생을 살고 있다. 곧 하나둘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았고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혼을 한 친구도 있고 멀리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면서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긴 친구도 있다. 그 친구들도 어디선가 바다를 보면 그때를 기억할까.
바람에 우산이 뒤집힌 걸 보고 백사장으로 걸어 나가 시간을 보니 벌써 9시 50분, 정리하고 돌아갈 시간이다. 선글라스를 고쳐 쓰며 바다를 한번 쓱 뒤돌아보고 숙소로 돌아왔다. 자는 아이를 깨우고 나머지 짐을 정리하며 간간히 튜브의 바람을 뺐다. 왠지 돌아오는 주말, 다시 바다에 갈 것 같은 예감이 들지만 말이다.
어른의 행복은 조용하다.
짜릿함보다는 안도감에, 특별함보다는 일상적임에 더 가깝다. 아무 탈 없이 일할 수 있어서, 아픈 곳 없이 가족과 통화할 수 있어서, 희망은 없어도 절망도 없이 내일을 또 살아갈 수 있어서 행복할 수 있는 게 지금의 내 삶이다. 누군가는 그토록 조용한 인생에서도 행복을 발견할 수 있냐고 묻겠지만, 물론.
<어른의 행복은 조용하다_태수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