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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 들르고 싶은 독립서점

by 산호

주말, 한가하게 소파에 옆으로 누워 인스타를 열심히 탐닉하던 중 근처에 독립서점이 생겼다는 것을 알았다. 심심하던 참에 집에서 차로 10분 거리라 아이와 둘이 독립서점을 찾아가 보기로 했다.


차에 시동을 걸고 출발하자 이내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점점 굵어지는 빗방울!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했다. 올여름 장마도 그냥 지나치고 비가 거의 오지 않은 상황이라 거세게 쏟아지는 비가 반갑기까지 했다.


서점에 거의 다 도착해서 네비는 골목으로 들어가라고 알려주었다. 하지만 왠지 좁은 골목길로 들어가면 주차가 힘들 것 같아 근처에 주차하고 걸어가기로 했다. 운전 경력은 10년이 넘지만 주차는 항상 힘들다.


서점으로 들어가는 길목에는 그 동네에서 최소 20년은 넘어 보이는 동네가게들이 있었다. 이발소도 있었고 동네슈퍼도 있었고 세탁소도 있었다. 그 가게들 앞에는 다양한 화초가 정갈하게 자라고 있었다. 손수 가꾼 듯한 꽃들이 너무 사랑스러웠다. 가지런히 배열된 화분들이 마치 합창단을 연상시키기도 했다.


아마도 주인분들이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들이 아닐까. 내리사랑 받던 자식들이 장성해서 다 떠나고 대신 화초에 물을 주며 사랑을 주며 키우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도 들었다. 화분들 사이 울 엄마가 베란다에 키우던 기린초랑 알로에도 보였다. 서점까지 잠깐 걸어가는 골목길에도 책들이 펼쳐진 느낌이다. 인생책이 말이다.




노인은 바다를 항상 '라 마르'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바다가 사랑스러울 때 스페인어로 그렇게 불렀다.
- <노인과 바다> 중 헤밍웨이 -



걸어서 이내 당도한 라 마르 아트앤북스. 동그라미 안에 책이란 문구를 보니 여기가 서점이구나 싶었다. 파란색 차양막과 가게 이름이 인상적이었다. 우리 어린 시절 집을 연상시키는 갈색 새시문도 눈에 들어왔다.


왜 서점이름이 "라 마르" 일까 궁금했는데 궁금증을 해결해 주 듯 유리창에 노인과 바다의 한 구절이 쓰여있었다. "노인은 바다를 항상 '라마르'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바다가 사랑스러울 때 스페인어로 그렇게 불렀다." 노인과 바다, 그리고 헤밍웨이를 사랑하는 분이시구나 생각이 들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바닥타일도 역시 푸른색이었다. 접은 우산을 어디에 둘지 망설이니 생각보다 젊은 사장님이 친절하게도 우산통을 가져다주셨다. 우산을 통에 넣고 찬찬히 서점을 흥미롭게 둘러보았다.


보통 서점에 가면 주인장이 엄선해 놓은 책들을 관심 있게 보는 편이다. 이곳 라 마르 아트앤북스는 "여름" 테마 책들을 큐레이션해 놓았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름>, <그 여름의 끝>, <두고 온 여름>, <첫여름, 완주>,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


이곳은 책방의 작은 공간들을 책 외에도 비즈 팔찌나 뜨개 소품으로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었다. 카운터 왼편으로 마련된 매대에는 손수 만든 비즈 팔찌가 보였다. 아이는 팔찌에 관심을 가는지 팔찌를 이것저것 껴보았다. 카운터 오른편을 보니 코바늘로 만든 뜨개 가방들도 보였다. 앙증맞은 카드지갑도. 긴 머리의 젊은 주인장은 역시 카운터에서 뜨개질 중이었다.


나는 오른편에 놓인 키 큰 책장들 사이에서 책을 골랐다. 관심 가는 책들은 많았지만 우선 사놓은 책들을 소화해야 해서 심사숙고 고른 책은 바로 <모파상의 단편집>이다. 그냥 끌림을 받은 것 같다. 아마도 단편이라 짬짬이 한편씩 읽기 쉬워서일 수도.


소나기가 와서 운치 있게 뜨거운 커피 한잔 마시고 싶었지만 이곳은 책과 소품만 판매 중이었다. 아쉽지만 그래도 이런 서점이 가까이 있다는 것에 안심을 하며 내가 고른 책 한 권과 아이가 고른 팔찌 한 개를 계산을 하고 나왔다. 좀 더 머무르고 싶었지만 팔찌를 다 고른 아이가 채근해서 말이다.


젊은 사장님만의 감성으로 꾸민 독립서점, 라 마르 아트앤북스는 물치해수욕장에서 가까운 편이다. 물치에서 정암해수욕장까지 해변으로 연결된 나무데크 산책길이 아름다운 곳이다. 차라리 정암해수욕장에 차를 주차하고 해변 테크 길을 따라 물치해수욕장까지 산책 후 들려도 좋을 서점이다.


요즘은 동네가게라고 할 만한 곳이 많이 없어졌다. 아파트 상가에 있던 슈퍼도 2년 전 세븐일레븐 편의점으로 바뀌었고 아이들과의 추억이 어린 분식집도 연로하신 부모님 모시러 시골로 내려가시면서 문을 닫았다. 이런 서점이 걸어서 갈 수 있을 만큼 가까이 있으면 매일 마실 삼아 들를듯한데. 그래도 금요일 퇴근길 자주 들르지 않을까 한다. 애정하는 독립서점이 오래 있어주길 바라며, 나 또한 자주 들르길 바라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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