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중순 받은 건강검진의 결과가 도착했다. 검진 전 제일 걱정했던 것은 혈압이었다. 몇 년 전에 혈압을 재검받은 적이 있어서였다. 혈압은 다행히 정상, 하지만 반전결과가 기다렸다. 위내시경 결과 장상피화생 소견을 보였고 총 콜레스테롤 수치는 231, 저밀도콜레스테롤은 151이 나왔다. 그리고 허리둘레가 2년 전에 비해 5센티미터가 늘어나 있었다. 공복혈당은 97이었지만 당화혈색소 정상수치가 6.0 미만인데 당뇨 전단계에 해당하는 6.1 이 나왔다. 그야말로 충격. 내가 당뇨와 관계가 있을 거란 것은 상상도 못 했다.
총체적 난국이란 건 이런 걸까?
정말 이제는 운동을 시작할 때란 걸 느꼈다. 아니 늦었다. 그래도 걷기는 꾸준해 해 왔는데 걷는 걸로는 안되나 보다. 충격적인 검진 결과를 지인에게 알렸더니 이제 시작이라고, 이제는 몸관리 시작하라며 "슬로우 조깅"을 권하였다. 평소 무릎도 좋지 않은데 슬로우 조깅은 무릎 관절에도 부담이 적다고 하니 안 할 이유가 없었다.
지인은 근처 종합운동장에서 매일 저녁 슬로우 조깅 모임이 열리니 나와보라고 했다. 저녁을 간단히 먹고 근처 운동장으로 향했다. 대략 스무 명 정도가 모였고 모두 여성분들이었다. 나이대는 대략 4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했다. 동그란 대형으로 모여 리더로 보이는 분을 따라 먼저 간단히 스크레칭을 했다. 그리고 정각 8시, 단체로 슬로우 조깅을 시작했다. 2열로 나란히 서서 천천히 뛰기 시작했다. 학창 시절 체육시간에 두둘로 서서 체육선생님 호루라기 구령에 맞춰서 뛰던 기억이 나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우리가 달리는 옆으로는 주말에 열리는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는 분들의 연습이 한창이었다. 어떤 분들은 우리의 슬로우 조깅 대형을 보고 신기한 듯 쳐다보는 분들도 있었다. 혼자가 아니라 단체로 뛰니 남들 시선에 크게 구애받지 않아서 좋은 점이 있었다. 맨 앞에서 뛰는 리더의 속도에 맞추어 가다 보니 얼마가지 않아 리듬감을 알 수 있었다. 어떤 속도로 뛰어야 하는지 감이 왔다. 지인은 메트로놈 앱을 알려주며 메트로놈 박자에 맞추어 뛰면 빨라지지도 느려지지도 않아 일정하게 뛸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그래도 30분이 지나니 힘들어서 좀 걷다가 뛰다가 하며 50분을 채웠다. 처음이라 무리하지 않으려 조심히 뛰었다. 나보다 연세가 많으신 분들도 50분 완주하시는 걸 보고 나도 할수 있다는 희망을 얻었다.
그렇게 슬로우조깅 동호회에서 기초를 익히고 지금은 집 바로 옆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아침 출근 전 슬로우조깅을 하고 있다. 초등학교 운동장이 흙으로 되어 있어 나는 이곳에서 달리기는 것이 더 좋다. 가끔은 슬로우조깅을 끝내고 맨발 걷기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 주말 아침 7시, 평소보다 30분 정도 늦게 나갔다. 한참 달리고 있으려니 어르신 세 분이 학교 운동장 화단에 자리한 대추나무를 털고 계셨다. 어디서 장대같이 기다란 대나무를 가져와서 한분은 터시고, 두 분은 대추를 봉지에 담는 모습이 보였다. 슬로우 조깅을 끝내고 가려니 한 분이 부르셨다.
"대추 좀 한 주먹 가져가! 새댁."
"저 새댁 아니에요. "
모자를 썼더니 좀 젊어 보였는지 아무튼 기분은 좋았다.
잠바 주머니에 대추를 받았다.
"서로 나눠먹어야지."
"잘 먹을게요. 대추가 실하네요."
얼른 인사를 하고 운동장을 나왔다. 나오면서 잠바 주머니에 불룩한 대추 하나를 꺼내 입에 물었다. 정말 가을이구나 싶었다. 운동장 한켠의 모과나무도 대봉시 나무도 가을을 알리듯 열매가 주렁주렁한 걸 보았다. 왠지 모과나무의 모과가 좀 탐나지만 누군가를 위해 그 맘은 좀 아껴놓았다.
슬로우 조깅을 하면서 함께 운동장에서 만나는 분들이 더 친근하게 느껴진다. 아침마다 맨발 걷기 하시는 할머니, 지팡이 짚고 나와 걸으시는 할아버지, 40대로 보이는 남자분은 러닝에 정말 열심이다. 오늘 같이 대추를 덤으로 받아오는 행운을 누리니 슬로우조깅이 더 좋아진다. 앞으로 두 달 더 식단관리와 함께 슬로우 조깅을 꾸준히 한 뒤 피검사를 다시 해볼 생각이다. 부디 정상 범위로 돌아오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