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필사는 클레어 키건의 <이처럼 사소한 것들>이었다. 이 책은 2주 정도 평일 저녁시간을 할애해서 필사를 했다. 원래 책을 읽으면 좋은 구절은 블로그에 남겨 두는 편이었다. 그 분량이 많아도 절대 남의 글에서 복사해서 붙여 넣지 않고 하나하나 내 손으로 직접 키보드를 두들겼다. 30년 전 여상을 나온 덕에 한글타자와 영어타자 자격증도 있는 여자라 자판 치는 것은 항상 나에겐 즐거운 작업이 되어주었다. 주말 2-3 시간 필사의 시간은 무아지경의 시간이 되기도 한다. 그 덕에 소설을 필사하는 시간은 행복했다.
사실 필사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글쓰기 책에서 고전 필사를 권유해서 이기도 하다. 거기에 덧붙이자면 둘째 아이가 없는 시간과 공간을 메우기 위해 시작한 일이기도 하다. 중국으로 떠난 아이는 일주일을 울면서 전화가 왔다. 생각해 보니 스무 살이 되도록 집에서도 혼자 잠을 자본 적이 없는 아이였다. 엄마 아빠가 없는 날에는 할머니집에서 잤으니까 말이다. 기대하던 대학교 기숙사는 들어가지 못하고 되었고 외주로 자취방을 구하게 되었다. 타국에서 홀로 지내는 일주일이 제일 힘들었을 것이다. 무서워서 불도 끄지 못하고 잠을 잤고 생각보다 중국음식이 아직 입에 맞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매일 밤 울음 섞인 "엄마, 사랑해"라는 딸아이의 사랑고백을 듣게 되었다.
내 젊은 20대 자취방이 생각났다. 안채에는 주인인 할머니와 할머니의 딸인 언니가 기거하고 나는 건너편 작은 방 한 칸에 월세를 살았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호텔에서 3년 정도 일을 하다 서울로 무작정 상경한 터였다. 난 그때 둘째처럼 울지는 못했다. 속으로 울음을 참으며 지냈던 것 같다. 타지에서 강해져야 할 것 같았다. 나만이 나를 지킬 수 있었다고 믿었다. 울면서 전화해도 우리 부모님은 같이 울어주지도 달래주지도 않았을 것이다. 살기 팍팍했던 세상, 다시 집으로 돌아오라고 했을 것이기에. 어린 마음에 집으로 돌아가긴 싫었었다. 그렇게 3년 정도 타지 생활을 하다 다시 고향으로 내려갔지만 말이다.
클레이 키컨 작가의 책을 마치고 다음으로 고른 책은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였다. 필사 책을 고르는 기준은 필사가 아무리 좋아도 너무 긴 장편은 지레 지칠까 봐 작은 책으로 골랐다. 작은 책 중에서도 인생책이라고 꼽을 만한 <연금술사>. 연금술사 필사도 드디어 끝냈다. 거의 3주간의 여정이었다. A4용지 70쪽의 분량이었다.
연금술사는 전에도 2번 정도 읽었던 책이었다. 그런데도 필사를 하다 보니 예전에 이런 부분이 있었던가 싶은 부분들이 보였다. 사실 책을 읽다 보면 지루하거나 내용이 어려운 부분은 대충 보거나 건너뛰기도 한다. 속독으로 빠르게 읽다가 놓치는 부분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필사를 하다 보면 책을 천천히 읽게 되고 또 오타를 확인하느라 한번 더 읽게 돼서 같은 내용을 2-3번 읽게 되는 장점이 있다. 곱씹으면서 읽을 수 있다.
아이가 가고 일주일 정도는 정말 기도하는 마음으로 필사를 하였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고 아이도 차츰 적응이 되기 시작했다. 하루는 몽골 친구도 사귀었고 다음날에는 러시아 친구도 사귀게 되었고 한국인 선배들도 만났다고 한다. 한인타운에서 맛있는 한국 음식점도 알게 되었고 백두산 마트에서 김치랑 김자반도 사 왔다고. 그리고 학교 등하교용으로 띠엔동을 구입했단다. 한국에서 아르바이트비 받은 것을 비상금으로 가져갔는데 그 돈으로 샀다고 한다. 아침 지하철 대신 띠엔동을 타고 가는 길이 그렇게 좋을 수 없다고 한다. 슬슬 추워지지만 말이다. 띠엔동이 아이의 발도 되어주고 친구도 되어주는 듯하다. 나는 아이에게 잘하고 있다고 해주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어지던 필사는 감사의 마음으로 이어졌다. 잘 적응해서 다행이라고. 그렇게 다 살아지는 거라고. 엄마인 나는 너 없는 텅 빈 시간을 필사로 채우고 있다고. 보석 같은 글로 마음을 채우고 있다고 말이다. 아이의 스무 살이 쨍하고 빛나고 있다. 나의 오십 대는 은은하게 빛나고 있다. 20대 딸과 50대 엄마는 오늘도 인생의 사막을 잘 지나왔다. 내일도 그럴 것이다.
자네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는 자네의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준다네
- 연금술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