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 된 아이의 늦은 귀가로 전화로 야단을 좀 쳤다. 서로 언성이 좀 높아졌고 더 이상의 이야기는 무리인 것 같아 전화를 끊었다. 서운함이 몰려왔다. 아이는 자신도 이제 성인이라고 너무 간섭하지 말라는 투로 이야기를 하였다. 눈물이 나왔다. 학교에는 잘 적응하고 있고 수업도 생각보다 재미있다고. 걱정하지 말라는 아이의 말이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뭔지 모를 보이지 않는 선이 느껴졌다.
허전한 마음, 속상한 마음을 달랠 길이 없어 퇴근길에 낙산사를 찾았다. 아침부터 억수로 쏟아지던 비는 다행히 오후 5시 정도 되니 잦아들었다. 낙산사 인근 나만 아는 아지트(방파제 옆 횟집들이 있는 곳)에 주차를 하고 낙산사로 올라갔다.
금요일 저녁이었지만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았다. 해수관음상에 올라 한 바퀴 돌고 내려와서 홍련암에 들렀다. 홍련암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차분하게 절을 하고 싶었는데 다행이었다. 암자 활짝 열린 문 사이로 절을 하고 계신 분이 계셨다. 밖에서 조금 기다리며 그분이 절하는 모습을 차분히 바라보았다. 그분이 마지막 합장을 하고 나오시는 것을 보고 나도 마음을 정돈하고 들어가 방석을 깔고 절을 했다. 절이라고 해봤자 어설프다. 낙산사를 여러 해 다니지만 절 하는 것은 아직 서툴다. 그래도 마음을 다해 절을 하고 기도를 했다. 물론 기도는 가족모두의 안녕이다. 무사, 무탈, 건강, 평안, 안녕!
절을 다하고 불전함에 시주를 했다. 수차례 사찰에 와서 절을 하고 싶었는데 현금을 안 가지고 온 적이 여러 번 있어 요즘은 지갑에 현금을 가지고 다닌다. 어디선가 절에서 공짜절은 하는 게 아니라는 말을 듣고 말이다.
홍련암 바닥에는 색종이보다 좀 작은 조그만 유리창이 있다. 바닥에 유리창이라니. 상상이 안 갈 것 같지만 말이다. 그 조그만 유리창에는 바다가 들어있다. 비가 세차게 내린 날이라 파도가 무척 거세었고 하얗게 포말을 일으키며 출렁이는 파도가 세상풍파 같이 느껴졌다. 그래도 기도를 하고 나니 맘이 좀 진정이 되었다.
홍련암을 나와서 한참을 바다를 바라보았다. 바닷가에 사는 것이 어떨 때는 축복이라 느낀다. 바다에 사찰에 고된 마음, 서운한 마음, 속상한 마음, 아직도 미성숙한 마음 다 내려놓고 간다. 홍련암을 돌아 나오는데 템플스테이하는 분들이 한 무리가 지나쳐갔다. 뒤를 돌아보니 모두 외국인이었다. 파란 눈, 노란 머리의 외국인이 낙산사 템플스테이 조끼를 입고 있는 모습이 생경스러웠다.
다시 사찰 경내를 거슬러 올라와 의상대에서 오르니 러시아 인으로 보이는 분들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정자에 앉아 서로를 찍어 주는 모습이 다정하게 보였다. 바다를 배경으로 다양한 포즈를 요구하는 이, 그 요구에 응하는 이, 모두 서로 행복한 표정이었다.
올해 다시 양양으로 발령이 나면서 제일 좋았던 것이 바로 이렇게 퇴근길에 낙산사에 들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산책 삼아 낙산사 한 바퀴 돌고 집에 가면 마음이 고요해진다. 낙산사의 탁 트인 절경도 한몫하지 않았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