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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태 Apr 14. 2021

꽃을 구입하는 남자의 마음이란?

| 꽃을 사는 이유를 깨달아버렸다



꽃을 샀다.

퇴근길 집 근처 꽃집에 들러 요즘 유행하는 꽃을 몇 송이 샀다. 회사 후배들과 저녁 식사 중에 한 녀석이 기념일이라 꽃다발을 사서 집에 가야 한다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내가 알고 있던 집 근처의 꽃집을 알려주고서 헤어졌는데 집으로 걷다가 불현듯 나도 꽃을 사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특별한 날도 아닌데 말이다.


 


항상 특별한  꽃을 샀다.

입학식, 졸업식, 생일, 결혼기념일 같은 날 말이다. 생각해보니 아내와 결혼 전 내 삶에는 입학식과 졸업식을 제외하고는 꽃을 산 기억은 없다. 한때 엄마가 꽃꽂이를 배우면서 집에 꽃이 많았던 적이 있었고, 아빠가 난초를 키우면서 여러 종류의 난이 꽃을 틔운적은 있었다. 하지만 기념일도 아닌데 누군가 꽃다발을 사서 집에 온 적은 없었다.


 

아내는 꽃을 좋아한다.

연애가 꽤 길었는데 연애하면서 꽃을 선물했던 기억은 없다. 결혼을 하고 처음 맞이한 결혼기념일에 아내에게 장미 꽃다발을 선물했던 기억이 아마도 내가 선물한 첫 꽃다발인 것 같다. 꽤 비쌌던 기억과 한송이 한송이를 너무 정성스럽게 포장해주셔서 아내가 포장을 풀었을 때 포장용 종이가 겹겹이 쌓여있던 장면이 기억난다. 아내는 “고마워”라는 말과 함께 화병에 꽃을 꽂으며 웃었다. 그때 이후로 아내의 생일과 결혼기념일에는 꽃을 샀다.


3년 전 이사를 하면서 집이 커지다 보니 집 곳곳에 그냥 놔두기 애매한 공간들이 생겼다. 아내는 상가 꽃가게에 들러 계절에 맞는 꽃과 화분들로 이 공간을 채웠다. 화병도 많이 늘었고 꽃도 많아졌다. 새 꽃들이 현관과 전실, 식탁, 아일랜드 주방에 올려지면 집에 생기가 돌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시들어가는 것을 보고 있자니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가격 대비 괜찮다고 생각했다.


 

작년 아내의 생일에 조금 비싼 꽃다발을 선물했다.

집 앞 백화점에 있는 꽃가게에서 꽃다발을 주문했는데, 동네 꽃집보다 세배 정도 비쌌다. 플로워 리스트와 전화로 이것저것 이야기를 하고서 꽃다발을 찾으러 갔는데 완성된 꽃다발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꽃다발을 들고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콧노래를 불렀다. 문득 아내의 웃음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아내는  이렇게 비싼 것을 샀냐고 말했지만 “고마워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말에는 애정이 듬뿍 묻어있었다. 아내에게 썼던  중에 가장   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는 꽃다발 사진을 찍어 친구들에게 자랑하는 듯했다. 덩달아 나도 SNS 자랑했다.


 


다시 퇴근길.


꽃집에 들러 만 원어치 꽃을 샀다. 가게 주인아주머니께서 “특별한 날인가 보네요?”라고 물었다. 나는 “아뇨. 그냥 아내에게  몇 송이 주고 싶어서 왔어요.”라고 말했다. 아주머니는 이런 경우 처음이라며 너무 좋아하시면서 꽃들을 포장해주셨다. 그리고 “아내분이 너무 행복하시겠어요.”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작은 꽃다발을 받아 들고 집으로 걸어오는 길에 지나치던 많은 사람들이 흘깃흘깃 나를 쳐다봤다. 손에 꽃다발을 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손에  꽃다발을 바라보면서 ‘  만원에 이렇게 기쁠 수 있구나!’ 생각했다.


결혼 7년 차에 아내와 둘이 열흘간 파리 여행을 갔었다. 둘 다 파리는 처음이 아니라서 관광보다는 길거리를 걸으며 시간을 보냈다. 이른 아침 호텔을 빠져나와 지하철을 타러가던 길에 역 앞 가판대 옆에 한가득 꽃을 판매하고 있었다. 그때 아내가 “꽃 한 다발 살까?”라고 말했다. “가방과 카메라도 무거운데 꽃다발도 들어야 해?”라며 톡 쏘았던 순간이 오버랩됐다. 그때 꽃을 샀다면 훨씬 더 행복한 여행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객 중에 꽃다발을 들고 있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고, 파리에서 꽃다발을 든 아내 사진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자주 꽃을 사려고 노력한다.


작은 투자로 이만큼 순수하게 행복한 기분을 만들기는 꽃이 제일이다. 그래서 주머니에 돈이 있으면 꽃을 산다. 꽃은 웃음이고 행복이고 즐거움이다.



- 브런치 작가 김경태 -



#꽃다발 #꽃을든남자 #꽃 #퇴근길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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