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트리올 관광객 놀이에 맛들이다!
어제는 수영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점심을 먹자마자 나들이에 나섰다.
초가을의 서늘하면서도 상큼한 날씨 탓(?)에 도저히 집에 들어박혀 있을 수가 없어서였다.
우린 늘 그렇듯 지하철역 근처에 차를 주차하고 지하철로 Laurier역으로 향했다.
몬트리올 생활 23년째지만 이 지하철역은 처음이었다.
예전에 우리가 살던 9호선 버티고개역만큼은 아니어도 제법 깊은 역사라 과거의 추억을 소환하는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지하철역을 빠져나와 남편과 나는 정처 없이(사실 나만 그랬고 남편은 다 계획이 있었다!) 걷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눈에 띈 멋진 외관의 교회, 그 뒤로는 다양한 샵들과 클래식한 공원이 오후의 햇살과 어우러져 내 눈과 마음을 홀딱 빼앗아버렸다.
난 기꺼이 내 모든 걸 내어주마! 란 심사로 무상무념의 행진을 이어갔다.
Laurier역 전이 우리가 최근 자주 찾던 Mont-Royal이고, 그 주변은 마일 엔드 지역이라 패셔너블하면서도 젊은이들이 자주 찾는 핫플이 즐비한 곳이다.
해서 길을 걷다 보면 괜스레 기웃거리게 되는 샵들이 꽤 된다.
그렇게 참새 방앗간 들르듯 눈팅과 실제 방문을 이어가면서 우리는 산책을 즐겼다.
물론 중간에 아이스크림도 사 먹었다.
남편이 가자는 대로 따라가다 보니 예전 시댁 동네인 Outremont 지역에 도착했고, 시어머니께서 즐겨 찾으시던 Laurier 거리에 들어서게 됐다.
그곳에는 그 동네 부자들이 애용하는 고품질의 샵들이 꽤 모여 있어 역시 보는 즐거움을 실컷 누릴 수 있다.
그중 한 곳인 마트에 들러서는 밤잼(Chestnut Spread)을 구입하기도 했다.
남편이 총각 때 지내던 아파트가 저 멀리 보였고, 6년 전 돌아가신 시어머님 장례식장도 보이는 그곳에서 우린 우회전해 <유대인 집성촌>으로 진입했다.
그곳은 유대인들 중에서도 독특한 복장과 헤어스타일을 한 근본주의 유대인들, 즉 하레디(Haredi)가 대부분인 듯보였다.
스쿨버스를 타고 하교하는 남자아이들 역시 어른 남자들처럼 옆머리가 꼬여있고 모자를 쓰고 있었다.
여자들 또한 거의 검은 복장을 하고 역시 검은 모자를 쓰는데, 집집마다 아이들이 많은 게 하나의 특성이기도 하다. 보통 10대 후반에 결혼해 평균적으로 아이를 6~7명 출산하는 걸로 보고되고 있다.
흥미롭게 그들을 관찰하면서 우리는 그곳에 위치한 공원으로 걸음을 옮겼다.
우리 동네에 비해 물이 맑고 수초가 보이지 않는, 아주 얕은 호수 같지 않은 호수가 있었는데 그곳 앞 벤치에 앉아 남편과 나는 얼마간의 물멍을 즐겼다.
주변을 뛰어다니는 중학생들의 체육시간도 흘끔거리면서 무념의 시간을 보내다 일어나 오늘의 마지막 여정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동네 이름을 딴 Outremont 지하철역이 바로 그것이었는데, 사실 Laurier역 근처에서 저녁을 먹으려 했던 계획과는 다르게 이미 멀리 와버려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전날엔 등산을, 그날은 수영과 제법 긴 산책을, 남편이 입으론 힘들다 투덜거렸지만 내심은 스스로에게 엄지 척을 해주고 있다는 걸 난 안다.
절대 오버가 아니라 거의 25년을 함께 살다 보니 웬만한 건 다 알 수 있다.
그게 바로 세월의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