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나를 소모하지 않는 현명한 태도
더위가 쉽게 가지 않는 가을이다. 그럼에도 가을에는 천고마비의 계절이자 떨어지는 낙엽을 밟으며 우수에 젖기 좋은 시기인 것만은 확실하다. 가을을 떠올리는 방법은 저마다 다를 것이다. 나의 경우에는 넓은 들판을 황금빛 물결로 뒤덮는 벼가 생각난다. 봄에 심은 모가 뜨거운 뙤약볕과 태풍을 견뎌 탄생한 벼 말이다. 그 벼들이 바람에 나부끼며 사르륵 소리를 내는 것을 듣고 있으면 삶에 대한 겸손을 느끼게 된다. 벼는 익을 수록 고개를 숙인다고 하지 않던가. 나는 벼를 마치 어떤 해탈의 경지에 다다른 도인처럼 우투커니 바라보곤 했다.
독일 작가 마티아스 뉠케의 <나를 소모하지 않는 태도에 관하여>도 겸손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작가는 현대인이 자신을 소모하지 않고도 건강한 정신을 유지할 수 있는 중요한 태도로 ‘겸손’을 제안하며, 이를 통해 타인과의 비교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지킬 수 있다고 강조한다. 자신을 과도하게 드러내야만 인정받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겸손의 가치를 재조명한다.
작가는 자신의 가치는 타인의 평가가 아닌 스스로 설정한 기준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현대 사회에서 타인의 인정과 평가에 지나치게 의존하며 자신의 가치를 평가하는 경향을 지적하며, 이러한 태도는 필연적으로 상대적 박탈감을 불러일으키고, 이는 우울증, 불안감 등의 정신적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한다.
작가는 이러한 세태를 경고하며, 자신의 가치를 타인에게 의존하는 순간 우리는 끝없는 소모의 길에 들어선다고 말한다. 비교와 경쟁이 얼마나 사람을 지치게 하고 소모시키는지 설명한다. 그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다가 보면 내가 누군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도 망각하게 된다. 오로지 알량한 자존심만 남은 채 더욱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무리하다가 일을 그르치는 상황이 발생한다. 더욱이 소셜 미디어 등에서 우리의 관심을 끌기 위해 자극적인 요소가 넘치는 세상에서 자신이 더 초라해지지 않기 위해 과장하기 일쑤다. 우리는 스스로를 과하게 포장하고 있으며, 실제로 그렇게 믿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이 간극을 채우지 못하면 정체성의 혼란이 일어나 스스로를 더욱 힘들게 만드는 것이다.
작가는 이를 더 잘 설명하기 위해 더닝-크루거 효과를 등장시킨다. 더닝-크루거 효과는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이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심리적 현상이다. 한 분야의 전문가가 마치 세상 모든 것에 해박한 것처럼 나서는 현상을 꼬집는 데 많이 인용된다. 이는 타인의 평가나 외부의 기준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태도와 맞물리며, 자신을 진정으로 인식하는 데 방해가 된다. 자기 객관화가 부족하면 현명한 선택을 하지 못하게 된다.
작가는 더닝-크루거 효과를 극복하는 방법으로도 역시 ’겸손’을 제안한다. 진정한 겸손은 자신의 능력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그 한계를 인정하는 데서 시작된다고 말한다. 겸손은 단순히 자신을 낮추는 태도가 아니라 자신을 정확히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능력이다. 더 깊은 자기 인식을 가능하게 하고, 자신을 소모하지 않는 삶을 사는 핵심이라는 것이다.
또한 책에서는 독일의 ‘히든 챔피언’과 같은 사례를 통해, 겸손하게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걷는 사람들이 진정한 성공을 이룰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들은 자신의 성공을 과시하기보다는 자신만의 기준을 가지고 조용히 사회에 기여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작가는 이러한 삶의 방식을 통해 사람들이 자신을 소모하지 않고도 충분히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다고 강조한다. 뿐만 아니라 타인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고 겸손한 태도로 큰 성공을 이룬 익숙한 인물들의 사례를 제시하며 겸손의 미덕을 한껏 강조한다.
책 <나를 소모하지 않는 태도에 관하여>는 현대 사회의 경쟁과 비교 속에서 지친 사람들이 자신의 중심을 잡고, 더 이상 타인의 평가에 휘둘리지 않으며 자기 자신으로서 충분하다는 확신을 가지게 하는 중요한 가르침을 담고 있다.
“나는 내가 나약하고, 불확실하다고 느낀다. 나는 내가 강하다고 느끼지 않는다.나는 내가 하는 일을 훤히 조망하지 못하는 것 같다. 어쩌면 나는 이런 점 때문에 성공한 것인지도 모른다.” - 조디 포스터 (배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