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징어게임
* 일부 스포가 있습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게임>은 전 세계 콘텐츠 시장을 흔들었다. 시즌1은 넷플릭스 글로벌 시청 순위 1위, 한국 드라마 최초의 에미상 수상, 배우 이정재의 남우주연상 수상 등 각종 기록을 썼다. 초록 체육복, 달고나, 무궁화꽃 게임은 밈이 되었고, 감독 황동혁은 ‘한국형 블랙미러’를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리고 시즌3가 공개되며 이 거대한 게임도 끝을 맺었다.
오징어게임은 K-콘텐츠의 위상을 한 단계 끌어올린 작품이다. 시즌1이 목숨을 건 아이들 놀이로 전 세계 시청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면 시즌2와 3은 조금 더 깊은 구조의 문제를 건드리려 한다. 456억 원의 상금을 받은 성기훈은 처음엔 염색을 하고 해외로 떠나려다 갑자기 마음을 바꾼다. 한국에 남아 이 끔찍한 게임의 실체를 파헤치고 인간을 장기말처럼 죽이는 자들을 파괴하겠다고 선언한다. 이혼한 부인과 가난한 엄마에게 돋을 뜯어내 경마장에서 말밥 주던 남자가 갑자기 어벤져스가 된 셈이다.
돈이 생기면 세계관도 커지는 걸까. 갑작스러운 영웅 놀이는 다소 황당했지만…뭐 그럴 수도 있겠지 하고 따라가 보기로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전체적으로 실망이었다. 하지만 황동혁 감독이 단순한 유혈극이 아니라 인간과 사회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는 점은 느껴졌다. 그중 몇 가지는 꽤 눈에 걸려 오래 남는다.
우선, 구조적 불평등의 문제다. 오징어게임은 철저하게 주최자와 참가자로 나뉜다. 누군가는 게임을 만들고, 누군가는 그 안에서 죽는다. 어두운 장막과 가면 뒤에 숨어 있는 부자들은 인간의 삶과 죽음을 구경거리로 소비한다. 그들에게 참가자들의 생존은 오락이고 그 오락은 상상 이상의 부를 가진 자들에게 일종의 취미 생활이다. 아이들 놀이로 죽고 죽이는 모습은 그들에게 현실판 리얼리티 쇼이자 사냥이다. 마치 욕망과 죽음이라는 주제를 두고 연구하는 인간성을 상실한 마루타 생물학자같은 모습이다.
그들의 자본 출처는 나오지 않지만 현실에서도 우리에겐 규모조차 가늠할 수 없는 자산가들의 존재가 점점 더 당연해지고 있다. 그 반대편에선 여전히 끼니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불평등은 민주주의를 좀먹고 사회를 불안정하게 만든다. 극우주의가 팽배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최근 민주주의 꽃이라고 불리던 미국은 개방과 혁신의 아이콘에서 폐쇄와 이기주의 집단으로 변했다. 그 바탕에도 심각한 불평등 문제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이런 맥락에서 오징어게임은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부자에겐 현실이 게임이고, 빈자에겐 그게 지옥이다.”
두 번째, 좋은 명분으로도 구조는 안 바뀐다. 성기훈은 게임의 승자가 되고도 돈을 제대로 쓰지 못한다. 이 돈이 수많은 이들의 피로 물든 결과라는 사실을 잊지 못한다. 결국 그는 이 돈으로 조직을 꾸리고 게임을 없애겠다는 선언을 한다. 그러나 실패한다. 이유는 명확하다. 많은 게임 참가자들이 그의 명분에 공감하지 않기 때문이다. 게임 참가자들은 잃을 게 없는 이들이다. 성기훈의 “인간답게 살자”는 말은 현실감이 없다. 말은 멋지지만 하루를 버티는 데 급급한 이들에게는 공허할 뿐이다.
일부는 그의 말에 동조해 무기를 들었고 실제로 반격에 성공하는 듯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그가 맞선 시스템은 훨씬 더 단단했고 반격은 허무하게 무너졌다. 정의로운 명분은 있었지만 실질적인 지지와 공감이 없었다. 그리고 또 다른 중요한 차이가 있다. 성기훈은 이미 그들에게는 가진 자였다. 그렇기에 그의 외침은 절박한 이들에게 와닿지 않았다. 오히려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되었다.
이처럼 오징어게임은 단순한 서바이벌 드라마가 아니라 불편한 진실을 담고 있다. 불평등과 인간성의 상실, 시스템이라는 괴물 앞에서 개인이 얼마나 무력한지를 보여준다. 정의라는 명분도 현실 앞에서는 이기지 못한다. 시즌2와 3은 분명 아쉬움이 남는다. 긴장감도, 서사의 완성도도 시즌1만 못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시리즈는 상징이 되었다. 픽션이 현실을 대신 말해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우리가 애써 외면해온 질문을 다시 마주하게 만든다는 것. 그게 이 드라마가 남긴 가장 큰 유산일지도 모른다.
덧붙이자면, 두 번의 게임 우승 상금은 모두 아이들에게 돌아간다. 마치 금수저가 탄생하는 모습을 목격하는 것 같다. 과연 그 아이들은 부모가 목숨바쳐 일궈낸 유산을 어떻게 쓰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