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새의 선물
진희는 공부를 잘했다. 책을 좋아했고, 연극에서 주연을 도맡았다. 작은 시골에서 눈에 띄는 범생이었다. 그리고 그녀에게는 특별한 재능이 하나 더 있었는데, 유체이탈하듯 자신을 바라보는 능력이었다.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나’가 ‘나’를 판단한다. 소설은 그렇게 써져 있다. 그렇게 어린 국민학생 진희는 주변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건 사고를 목격하고 기록해낸다.
진희는 할머니, 이모, 삼촌과 함께 살았다. 할머니는 셋방을 운영했고, 몇몇 가족이 거기에 들어와 같이 살았다.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모습은 어느 동네에서나 있을 법한 이야기였지만, 역시나 이 단순하고 평범하면서도 독특한 일상 속에서 진희는 아주 고유하고 감각적인 메시지를 뽑아낸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삶도 그런 것이다. 어이없고 하찮은 우연이 삶을 이끌어간다.
그 이야기를 읽어내는 독자는 어린아이의 독특한 세계관에서 비롯되는 유머 감각에 무릎을 탁 치게 된다. 물론 은희경이라는 대작가의 작품이니 당연한 일이지만, 그녀의 재치는 단순히 재미로 소비되기에는 너무나 중요한 농담이라서 마냥 웃음을 유발하지는 않는다. 대신에, 심각하지만 가벼운 오류들로 우리의 삶은 어찌저찌 흘러가게 되어 있다는 생각을 품게 한다. 그리고 나는 어릴 적의 불우했던 시절과 지금의 고난, 그리고 기대만 높은 허무맹랑한 미래에 대해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된다.
가끔 진희는 대학생 오빠… 아니, 삼촌과 짝사랑에 빠지기도 하고, 철없는 이모의 행동거지에 문제를 삼거나, 필히 상처만 남을 불멸의 짝사랑에 관여하기도 한다. 그리고 자신을 좋아하는 ‘장군’이라 불리는 동년배 친구를 약 올리기도 한다. 자신에 비해 보잘 것 없어 보이는 그였지만,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엄마의 지나친 관심을 받을 때는 조금은 질투하는 듯 보이기도 했다.
그래도 진희는 외로운 시간을 스스로 고유한 정체성으로 엮어내며, 독자를 감복시킨다.
소설을 읽는 내내 필력에 눈을 뗄 수 없었다. 역시나 100쇄까지 찍은 책답다. 그녀의 첫 장편소설이라고 한다. 날이 갈수록 익어간다는 것은, 어쩌면 창작의 세계에서는 필요 이상의 아름다움일 수도 있겠다. 거칠고 서툴지만 설명하기 힘든 젊은 날의 우주는, 어른들의 세계를 집어삼키고도 남는다.
이제 나도 늙어가는 처지에, 이런 창작의 향연을 느끼기엔 늦은 것 같기도 하다. 다만, 그저 맛있고 몸에 좋은 음식만 찾지 않고, 이런 책과 예술을 애써 찾아다니는 열정이라도 남겨두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