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의 짐은 캐리어 하나로 충분했다
버리는 건 내가 가장 못하는 일이다. 미련이 많아서 해외여행을 가면 맥도날드에서 받은 현지 케첩까지 가져오곤 했으니까. 60일 동안 하나씩 버리면 무엇이 달라질까? 이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 보려 한다. 버린 것에 대해 에세이를 쓴다는 아이디어는 문보영 작가의 <불안해서 오늘도 버렸습니다>를 참고했다.
서울에 처음 왔던 스무살 무렵, 나의 짐은 캐리어 하나에 다 담길 정도로 적었다. 캐리어 중에서도 작은 축에 속하는, 지마켓에서 산 핫핑크 색상의 캐리어였다. 대학 입학을 기념해서 옷을 좀 샀는데도 캐리어 하나에 짐이 다 들어 갔다.
겉에서 보면 평범한 가방인데 열어 보면 커다란 초원도 있고 호수도 있는 뉴트 - 영화 <신비한 동물 사전>의 주인공 - 의 여행 가방이 떠오른다. 핑크색 캐리어 안에서 스무 살의 서울살이가 쏟아졌다.
시간이 지나고 캐리어 하나면 충분했던 짐이 방 하나를 채울 무렵, 오년 만에 처음으로 이사를 했다. 대학가 원룸에서 높은 언덕에 있는 다가구 주택으로. 바퀴벌레가 꽤 자주 출몰하는 낡은 주택으로 화장실이 몹시 추웠지만 방이 한 칸에서 두 칸이 됐다. 이삿짐은 승용차로 두 번을 왕복해야 할 정도로 불어나 있었다.
다음 이사 때는 용달 트럭이 필요해졌고, 그 다음 이사 때는 용달 트럭과 친구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한때 나의 모든 짐이 담겼던 핑크색 캐리어는 서너 번의 이사를 함께 했고 늘 박스 하나 정도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부산과 제주도, 일본으로 여행도 다녀 왔다. 그래선지 너무 많이 낡아 버린 캐리어를 10년 만에 버리기로 결정했다. 이제는 여행을 갈 때도 짐이 많이 늘어서 더 커다란 캐리어를 장만한 지도 수년이 지났다.
다음 번에 집을 옮길 때는 캐리어에 꾹꾹 짐을 눌러 담지 않고 반포장 이사라도 맡길 수 있을까. 언젠가 지금 사는 집도 캐리어 하나 정도로 추억할 수 있을 만큼 괜찮고 넓은 집에 사는 날도 오려나. 아직은 좀 요원해 보이니 당분간은 서울 시내를 조금 더 굴러야겠지. 나의 첫 캐리어처럼. 스무살을 맞아 산 캐리어를 서른살에 버리는 기분이 이상해서 조금 슬펐다.
캐리어 버리는 방법
캐리어는 플라스틱이 아니라 대형 폐기물로 신고해야 한다. 지자체 이름 + 대형 폐기물을 검색하면 수거 신청 사이트가 나온다. 모바일로 꽤 간편하게 수거 신청이 가능하다. 버리고 싶은 물건을 선택하고 버릴 장소를 입력, 대금을 결제하면 끝. 집에 있는 청소기와 다리미 등 고장난 집기도 수거해 주기에 이참에 같이 대문 앞에 내놓았고 며칠 뒤에 깔끔하게 수거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