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무게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루머의 루머의 루머> 시즌 1

by 지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루머의 루머의 루머(13 REASONS WHY)>는 셀레나 고메즈가 제작에 참여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후로 줄곧 궁금했던 작품이다. 우울할 땐 시청을 지양하라는 말이 많아 돌고 돌아 이제야 봤지만. 미국의 십 대들이 겪는 학교 폭력, 마약, 강간, 자살 등의 문제를 거침없이 다루고 있어 13편의 에피소드를 보는 내내 큰 충격에 빠져 있었던 건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그렇기에 이 작품이 해당 이슈들에 대해 진솔하게 이야기 나눌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불편하다는 이유로 묵인해 왔던 것들 혹은 미처 알지 못했던 것들까지도.



해나의 루머는 여성이기에 당하는 일상적인 혐오 행위로부터 시작된다. 우리 사회는 여성에게 참 가혹하다. 걸레, 헤픈 여자라는 딱지를 붙여 남성들의 희롱과 폭력을 쉽게 정당화한다. 네가 그런 옷을 입어서, 네가 싫다고 제대로 의사 표현을 안 해서라며 원인을 피해자의 탓으로 돌린다. 그런데 <루머의 루머의 루머>는 그 문제를 지적하는 선에서 끝나지 않는다.


에피소드 중 남학생들이 여학생들을 대상으로 '최고의/최악의 OOO' 리스트를 만들어 공유하는 사건이 있다. 해나는 최고의 엉덩이로 꼽혔고, 클레이는 이게 우쭐할 일이라고 생각했는지 해나에게 칭찬처럼 써먹으려 했다. 이 외에도 클레이가 해나의 목소리를 통해 그녀의 일상을 들여다보기 전까지는 알아차리지 못했던 사람들의 수군거림, 시선, 희롱들도 많았다. 사실 전자의 경우까지는 '클레이가 여자 못 만나 본 티를 내네. 왜 이렇게 답답하게 굴지?'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평범한 남성의 젠더 감수성은 딱 그 정도였던 것이다. 혹시라도 누군가 이 글을 보고 결국 전부 남자들의 잘못이라 말하고 싶은 거냐는 소리는 하지 않길 바란다. 여성이기에 겪어야 했고, 남성이기에 이해하기 어려웠던 부분에 대한 공감 능력을 키우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며 관련 교육이 의무적으로 시행되었으면 좋겠다는 의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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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해나를 자살로 몰고 간 이유가 남학생들이 만들어 낸 루머만은 아니다. 남녀 상관없이 루머에 일조했다. 이와 관련해 생각이 많아지는 해나의 대사가 있다.


I think I've made myself very clear but no one's coming forward to stop me. Some of you care. None of you cared enough. Neither did I. And I'm sorry.


이 대사는 해나가 최종적으로 자살을 결심하는 순간에 등장한다. '자살의 징조를 명확하게 보였지만, 자살을 막을 정도로 나를 신경 쓴 이는 없었다.' 정도로 이해했는데, 넷플릭스의 한국어 번역을 본 후 다른 관점으로도 접근하게 됐다. 'Some of you care. None of you cared enough.'를 '관심을 가진 사람도 있었지만, 마음을 기울인 사람은 없었어.'로 의역한 것이었다. 결국 이것이 우리가 루머를 대하는 태도가 아닐까? 자극적인 루머에 흥미를 갖고 접근할 뿐, 정작 그 루머의 당사자는 어떨지 신경조차 쓰지 않은 채 가십거리로 소비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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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의 절반 이상이 다른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일 때도 많고, 심지어 '사회생활 스트레스가 얼마나 심한데 이 정도 뒷담화쯤이야.'라는 위험한 생각이 드는 순간도 있다. '내가 겪은 일인데' 혹은 '믿을 만한 사람이 해 준 이야기인데'라며 쉽게 내뱉은 말속에서 나도 누군가를 해치고 있었는지 몰라 두려워졌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기 때문에 누구나 자신에 대한 평판을 의식하며 살 수밖에 없고, 그로 인해 관계에 대한 스트레스와 불안감을 놓지 못한 다는 걸 알면서도.. 타인을 향한 불필요한 관심을 덜어내고, 말조심을 늘 유념해야겠다.


덧) 작품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싶다면, <루머의 루머의 루머: 그리고 진실>까지 반드시 시청할 것. 청소년들은 그 시기의 고통과 힘든 일이 평생 지속될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고 한다. 그래서 더더욱 그 속에서 빠져나오기 어려운 것일 테고. 나 역시 그랬던 때가 있다. 하지만 분명히 시간은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