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을 이겨낸 한 남자의 밤
현대적 리얼리즘 단편: 「옷자락」
첫 문장은 짧습니다.
저는 퇴직자입니다.
사표를 냈습니다.
그날은 비었습니다.
주머니도 비었습니다.
마음도 비었습니다.
집으로 걷습니다.
저녁이 깁니다.
골목은 서늘합니다.
휴대폰이 울립니다.
모르는 번호였습니다.
받지 않았습니다.
부끄러웠기 때문입니다.
지하철역을 지났습니다.
사람들이 쏟아졌습니다.
다들 바빴습니다.
저만 멈췄습니다.
현수막이 흔들립니다.
채용 박람회였습니다.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지금은 아닙니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발걸음이 무거웠습니다.
다리를 건넙니다.
하천이 어두웠습니다.
바람이 옷을 잡았습니다.
등 뒤가 당겼습니다.
누군가 부르는 듯합니다.
뒤돌아보진 않았습니다.
겁이 앞섰습니다.
과장님 목소리가 났습니다.
“실수였잖아.”
그 말이 따라옵니다.
양복깃이 흔들립니다.
저는 뛰기 시작했습니다.
신발끈이 풀렸습니다.
주머니가 쏟아졌습니다.
명함들이 흩어졌습니다.
흰 종이가 떠다닙니다.
물 위에 떠 있습니다.
아무도 줍지 않습니다.
저도 서 있었습니다.
불빛이 깜박였습니다.
강변 램프였습니다.
비가 흩뿌렸습니다.
어느 순간이었습니다.
옷자락이 잡혔습니다.
뒤에서 확 잡혔습니다.
저는 굳어졌습니다.
심장이 뛰었습니다.
입김이 새어나옵니다.
꿈에서도 그랬습니다.
회의실도 그랬습니다.
복도도 그랬습니다.
뒤에서 붙잡혔습니다.
저는 늘 달아났습니다.
숨을 몰아쉬었습니다.
옷을 떼려 했습니다.
손이 덜덜 떨렸습니다.
몸이 말을 안 했습니다.
어둠이 가까웠습니다.
나는 망했구나.
그 생각이 스쳤습니다.
내가 끝났구나.
그렇게 믿었습니다.
길가에 자판기가 있습니다.
불빛만 환했습니다.
빨간색이었습니다.
주황색 버튼이 보입니다.
동전을 꺼냈습니다.
손이 미끄러졌습니다.
동전이 굴러갔습니다.
절벽 같았습니다.
내려갈 수 없었습니다.
저는 멈췄습니다.
“두 가지래.”
그 말이 떠올랐습니다.
오래전 이야기였습니다.
시골의 얘기였습니다.
도깨비 얘기였습니다.
옷자락 얘기였습니다.
웃음이 났었습니다.
그때는 웃었습니다.
지금은 울었습니다.
두 가지라 했습니다.
정신을 차리거나.
아예 놓거나.
저는 서 있었습니다.
비는 세게 왔습니다.
구두가 젖었습니다.
발이 시렸습니다.
등이 떨렸습니다.
손이 굳었습니다.
우선 숨을 셌습니다.
하나 둘 셋 넷.
다시 다섯까지 갔습니다.
호흡이 느려졌습니다.
심장이 조금 낮았습니다.
발뒤꿈치를 붙였습니다.
무릎을 펴 보았습니다.
어깨를 펴 보았습니다.
뒤를 천천히 봅니다.
빛에 눈이 적응합니다.
잡은 건 나뭇가지였습니다.
낡은 철책이었습니다.
모서리에 걸렸습니다.
울퉁불퉁한 선반이었습니다.
제 코트가 걸렸습니다.
도깨비는 없었습니다.
그렇게 단순했습니다.
저는 웃음이 났습니다.
소리 없이 웃었습니다.
웃음이 울음 같았습니다.
코트를 천천히 뺐습니다.
섬유가 긁혔습니다.
실밥이 늘어났습니다.
검은 선이 생겼습니다.
새 옷은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입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비가 잦아듭니다.
하천이 고요했습니다.
현수막이 멈췄습니다.
휴대폰이 또 울립니다.
같은 번호였습니다.
저는 받았습니다.
작은 학원입니다.
국어 강사를 구합니다.
이력서를 봤습니다.
한 시간만 얘기하자고 합니다.
내일 아침이 어떠냐고 합니다.
저는 대답했습니다.
가보겠습니다.
목소리가 떨렸습니다.
전화를 끊었습니다.
손이 덜 떨립니다.
다리는 아직 떨립니다.
그래도 섭니다.
가로등이 따뜻합니다.
강물 냄새가 납니다.
빵집 냄새가 납니다.
우산이 없습니다.
머리칼이 젖었습니다.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집에 도착했습니다.
문을 열었습니다.
방은 어두웠습니다.
신발을 벗었습니다.
거울을 보았습니다.
눈이 충혈됐습니다.
입가가 굳었습니다.
살짝 웃어봤습니다.
이상한 표정입니다.
그래도 웃었습니다.
책상을 정리했습니다.
뒤엉킨 종이들이었습니다.
실패의 기록들이었습니다.
회의안입니다.
평가표입니다.
경고장입니다.
그 위에 펜을 올렸습니다.
펜을 그대로 놔뒀습니다.
천천히 불을 껐습니다.
다시 켰습니다.
빛은 같았습니다.
마음만 달라졌습니다.
샤워를 했습니다.
물 온도를 올렸습니다.
등이 따뜻해졌습니다.
온몸이 풀렸습니다.
얼굴이 뜨거웠습니다.
울음이 나왔습니다.
물소리에 섞였습니다.
소리내 울었습니다.
우는 동안 비었습니다.
끝까지 울었습니다.
그리고 그쳤습니다.
침대에 누웠습니다.
몸이 가벼웠습니다.
잠이 왔습니다.
한숨에 잠들었습니다.
밤은 길었습니다.
꿈은 짧았습니다.
아침이 왔습니다.
창이 밝았습니다.
빗줄기가 가늘었습니다.
새가 울었습니다.
일어나 앉았습니다.
거울을 다시 봤습니다.
얼굴이 낯섭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머그컵을 잡았습니다.
뜨거운 물을 탔습니다.
검은 커피입니다.
향이 올라옵니다.
손이 안정됩니다.
학원으로 갑니다.
버스를 탔습니다.
아이들이 앉아 있습니다.
교복이 젖었습니다.
웃음이 번졌습니다.
옆자리 소년이 말합니다.
국어는 어렵대요.
저는 고개를 끄덕입니다.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래도 재미있습니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소년이 웃었습니다.
학원은 낡았습니다.
간판이 바랬습니다.
계단이 가팔랐습니다.
숨이 찼습니다.
문을 열었습니다.
원장이 반겼습니다.
차를 내왔습니다.
따뜻했습니다.
이력서를 다시 봅니다.
경력은 엉망입니다.
원장이 묻습니다.
왜 나왔냐고 합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제가 무서웠습니다.
그래서 나왔습니다.
두려움이 컸습니다.
이제는 덜합니다.
어젯밤 덜어냈습니다.
원장이 고개를 끄덕입니다.
수업을 부탁했습니다.
오늘은 청강하랍니다.
다음 주에 맡아보자 합니다.
저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감사하다고 했습니다.
손을 잡았습니다.
손이 따뜻했습니다.
첫 교실을 봅니다.
칠판이 오래됐습니다.
분필 가루가 날립니다.
아이들이 시끌합니다.
저는 뒤에 앉습니다.
선생님의 목소리가 큽니다.
문장이 전개됩니다.
글의 사건을 배웁니다.
중대한 변화의 뜻입니다.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입니다.
저도 끄덕였습니다.
창가에 나뭇가지가 흔듭니다.
코트가 스칩니다.
순간 어제가 떠올랐습니다.
등이 움찔했습니다.
저는 살짝 웃었습니다.
가지를 살짝 밀었습니다.
옷이 빠졌습니다.
아무 일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작은 마찰입니다.
그게 전부였습니다.
점심시간이 되었습니다.
혼자 도시락을 먹습니다.
계란말이가 나옵니다.
엄마가 해주던 맛입니다.
갑자기 목이 메었습니다.
숟가락을 내려놓았습니다.
천천히 숨을 쉬었습니다.
괜찮아졌습니다.
오후에 과제를 냅니다.
짧은 글쓰기입니다.
자신의 이야깁니다.
아이들이 투덜거립니다.
그래도 씁니다.
따옴표가 빛납니다.
삐뚤지만 빛납니다.
저는 그 글을 봅니다.
어제의 제 마음입니다.
사람은 다 비슷합니다.
두려움도 비슷합니다.
옷자락도 비슷합니다.
해가 기웁니다.
아이들이 빠져나갑니다.
교실이 비었습니다.
분필 가루만 남았습니다.
창밖이 주황입니다.
바람이 살짝 붑니다.
코트 자락이 흔듭니다.
저는 움직이지 않습니다.
붙잡히지 않았습니다.
그냥 흔들릴 뿐입니다.
퇴근길이 되었습니다.
다시 하천을 건넙니다.
램프가 켜졌습니다.
물결이 잔잔합니다.
어제의 철책이 보입니다.
스크래치가 남아 있습니다.
손가락으로 만졌습니다.
거칠었습니다.
부드럽게 느껴졌습니다.
내 흔적이었습니다.
휴대폰이 울립니다.
어머니였습니다.
저는 받았습니다.
먹고 다니냐 하십니다.
먹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대답했습니다.
목소리가 떨렸습니다.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잘 버텼다 하십니다.
그 말에 눈이 뜨겁습니다.
저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전화기만 보고 끄덕였습니다.
하천 위에 섰습니다.
밤이 깊어집니다.
바람이 덜 찹니다.
저는 두 가지를 떠올립니다.
정신을 바짝 차리는 일.
그리고 완전히 놓는 일.
둘 다 필요한 일입니다.
순서는 바뀔 수 있습니다.
어제는 놓았습니다.
오늘은 챙겼습니다.
내일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집으로 향합니다.
발걸음이 가볍습니다.
코트 자락이 흔듭니다.
저는 그냥 둡니다.
잡히면 빼면 됩니다.
아니면 놔두면 됩니다.
어느 쪽도 제 것입니다.
어느 쪽도 길입니다.
문 앞에 섭니다.
키를 찾습니다.
주머니가 얇습니다.
그래도 있습니다.
손끝이 만집니다.
차갑고 딱딱합니다.
문이 열립니다.
불이 켜집니다.
방이 그대로입니다.
마음은 다릅니다.
책상 위에 앉았습니다.
낡은 공책을 폈습니다.
첫 줄을 썼습니다.
“오늘은 강의했다.”
그다음 줄을 썼습니다.
“바람에 안 놀랐다.”
펜이 부드럽게 갑니다.
손이 덜 떨립니다.
문장을 멈췄습니다.
창밖을 보았습니다.
어둠이 얇아졌습니다.
저는 숨을 들이켰습니다.
긴장을 내려놓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줄입니다.
“도깨비는 없었다.”
한 칸 비웠습니다.
“그래도 때로 무섭다.”
또 한 칸 비웠습니다.
“그래도 걸어간다.”
점은 찍지 않았습니다.
문장은 열어 두었습니다.
내일을 위해 남겼습니다.
그렇게 오늘을 닫았습니다.
도깨비,두려움,현대사회,퇴직,성찰,고난,깨달음,비오는밤,옷자락,한국소설,단편소설,리얼리즘,성장서사,자기극복,삶의의미,심리묘사,일상공포,인간내면,회복,자아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