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리 에세이
일이 꼬이고, 상황이 복잡해질수록
나는 본능처럼 나를 먼저 의심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그럴 것이다.
“내가 뭔가 잘못한 건 아닐까.”
“내가 부족했던 거겠지.”
“더 잘했어야 했는데.”
그렇게 우리는 자책이라는 감정에 익숙해진다.
그 감정을 자책이라고 부르지도 못한 채,
그 속에서 묵묵히 일을 이어간다.
나는 내 안의 ‘엄격한 나’에게
참 많은 권한을 주고 살아왔다.
그는 늘 조용했지만, 강했다.
매번 실수를 놓치지 않았고,
늘 다음엔 더 잘해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
그렇게 몇 번은 버텼고,
그렇게 몇 번은 무너졌다.
생각해보면 재미있다.
우리는 많은 사람들에게는 친절하면서도
정작 나 자신에게는 가장 차가울 때가 많다.
“내가 더 잘해야지”라는
다짐은 멋져 보이지만
그 안에는 종종 ‘나는 지금 부족하다’는
판단이 숨어 있다.
그 판단은 곧 자책이 되고,
그 자책은 조금씩, 그러나 확실히
내 중심을 흔들기에 충분하다.
나는 지금도 매주 목요일,
라이브 방송을 하고 있다.
나처럼 마음이 자주 흔들리는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싶어서 시작했다.
어떤 날은 시청자가 거의 없다.
그럴 때면 온갖 생각이 몰려온다.
"내가 부족한가?"
"이건 그냥 그만둘까?"
그럴 때,
나는 내가 늘 반복해 말하는
한 가지를 다시 꺼낸다.
“지금 이 순간의 사실은,
나는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외의 것들은
내 생각일 뿐이다.
그걸 알게 되면
어느샌가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하고,
댓글이 달리고,
대화가 이어진다.
내가 나를 붙잡고 있는 만큼
내가 흘러나오기 시작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행복해지고 싶어서 사업을 시작했다고.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조심스럽게 묻는다.
“정말, 행복이 사업의
목표가 되어도 될까요?”
행복은 외부 조건에서 출발한다.
좋은 성과, 좋은 사람, 좋은 환경.
그 모든 것들은 나를 기쁘게 하지만,
때로는 그 모든 것들이
나를 가장 먼저 무너뜨리기도 한다.
삶은 종종 그런 방식으로 말한다.
내가 원했던 것들이
가장 나를 괴롭힐 수도 있다는 걸.
일이 잘되면 기쁘고,
잘 안되면 나를 탓한다.
그런 일희일비 속에서
우리는 중심을 잃는다.
그래서 나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는 연습’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잊지 말자.
무언가를 받아들이는 태도는,
감정의 결과가 아니라
사실 위에서 만들어진다.
‘생각하라’는 말은 때로 위험하다.
혼란 속에서 생각은
너무 많은 방향으로 흐른다.
그러나 ‘사실을 보라’는 말은
나를 다시 중심에 앉힌다.
지금 내가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걸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삶의 리듬은 다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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