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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창영 Apr 13. 2018

*꼼꼼이 아내와 대충이 남편


울산 MBC 방송국은 야트막한 동산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에서 내려다보면 가까이는 중구 시내와 멀리는 태화강과 남구 시가지까지 보인다. 봄에는 벚꽃이 화려하고 여름이면 소나무 그늘이 시원하다. 어릴 때부터 이곳은 개구쟁이들의 놀이터였다. 나무를 타기도 하고, 무덤 옆으로 펼쳐진 잔디에서 미끄럼을 타기도 했다. 이곳에는 활을 쏘는 곳도 있어 놀다가 심심하면 활 쏘는 것 구경도 했다. 그런데 어느 시점이 되자 MBC 방송국이 들어선 것이다.


지금 어린 시절의 추억이 잔뜩 담긴 이곳에서 글을 쓴다. MBC 방송국 입구에는 테이블이 있어 글을 쓸 수가 있다. 인터넷이 되는지 켜보니 와이파이까지 된다. 로또를 맞은 기분이다. 이제 글을 쓸 곳이 마땅한 곳이 생각나지 않으면 이곳으로 와야겠다. 새소리까지 들리니 자연 속에서 글을 쓰는 재미있는 경험을 한다. 새소리는 도시의 소음과는 다르다. 전혀 싫지가 않고 귀로 맡는 향기라는 생각을 한다.     


MBC 방송국 옆에는 운동기구가 설치되어 있고, 전문 강사의 지도 아래 체조를 하는데, 매일 아침 아내는 그곳에서 운동을 한다. 아내가 운동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30분 이상은 둘이 수다를 떤다. 그런데 오늘은 평소보다 내가 일찍 집을 나섰기에 운동하고 돌아오는 아내와 수다를 떨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못내 아쉬워 아내가 운동하는 MBC 동산으로 올라 온 것이다. 아내에게 전화를 하니 받지 않아 노트북을 켜두고 글을 쓰는데 전화가 왔다. 자기가 운동하고 있는 곳으로 올라오라고 한다.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가지 않겠다고 하자 기어코 내 고집을 꺾는다. 올라와서 함께 사진을 찍자고 한다. 전화를 끊고 나니 이마로 스치는 봄바람이 잔잔하게 시원하다. 


함께 운동을 한 두 분과 같이 동산을 내려와, MBC 방송국 입구에 있는 편의점에서 커피를 한 잔 나누었는데, 청소에 관련된 책 이야기를 하다가 화제가 자연스레 설거지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평소 아내와 나는 청소나 정리하는 것에 있어 스타일이 극과 극이다. 난 대충하는 반면 아내는 안 하면 아예 안 하든가, 하면 완벽하게 하는 스타일이다. 설거지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하면 10분도 걸리지 않을 설거지를 아내가 하면 최소한 한 시간은 걸린다. 그러다보니 아내의 오전 시간은 금새 지나가버리는 것이다.     


그런 아내를 도와주려고 내가 설거지를 하려고 하면 아내는 옆에 붙어서 잔소리를 했다. 세재는 이것으로 하고, 씻을 때 수세미는 이것으로 하고, 헹굴 때는 이것으로, 물기는 이 행주로 닦고 밥그릇은 여기에, 국그릇은 여기에 놓고 등등 끊임없이 이어졌다. 또한, 다 씻은 그릇을 들고


“여기에 기름기가 묻어있네. 이러면 내가 다시 씻어야 하잖아요.”


등등 끝이 없이 입을 댄대. 듣고 있으면 짜증이 막 생겨서


“그러면 잘 씻는 당신이 씻어요.”


하고 나가버리기 일쑤다. 그러다보니 설거지를 하고 싶은 마음이 싹 가셔버렸다. 어느 시점이 되니 아내도 내가 한 것을 또 하느니, 자신이 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던지 설거지를 하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청소도 마찬가지이다. 이렇다보니 둘 다 타협점이 생기지 않아 아내는 청소와 설거지를 하느라 시간을 다 보내고, 난 도와주지 않는 남편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최근에 평소에는 잘 하지 않던, 설거지를 해달라는 부탁을 한 것이다. 알고 보니 그 부탁은 같이 운동하러 나온 아주머니의 코치를 받아서 말한 것이었다. 며칠 전 그 아주머니는 아내에게 이런 말을 하였다고 한다.


“남자도 설거지 정도는 해야 한다. 좀 깨끗하게 하지 않으면 어떤가? 기름기가 그릇에 조금 묻어 있으면 어떤가? 하다보면 요령이 생겨 잘 하게 된다.”    


나도 그 말이 백번 지당하다는 생각을 한다.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스타일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 스타일이 자기와 맞지 않다고 짜증을 부린다거나 자신의 스타일로 바꿀 것을 요구하면 일이 제대로 되지 않게 된다. 꼼꼼이 아내와 대충이 남편의 조화는 세월이 흘러도 쉽지가 않다. 하지만 아내도 나도  부족하거나 지나친 부분을 이런 식으로 양보하며 조화를 이룬다면 참 좋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각자의 삶의 스타일이 부딪히는 일은 꼭 청소와 설거지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삶의 스타일이 서로 부딪힐 때마다, 상대의 스타일을 존중해주고 부족한 점은 보완하는 방향으로 조화가 된다면 삶이 무척 편해진다. 부부란 그런 것 같다. 내가 편해지면 그 혜택은 아내가 보게 되고, 아내가 편해지면 그 혜택은 내가 보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상대를 편하게 해주는 것이 곧 내가 편해지는 방법이다.

아내와 아주머니들과 헤어지고 집 근처에 있는 약숫골 도서관으로 와서 글을 쓰는데,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당신 오늘 너무 멋졌어요. 아주머니들이 남편 너무 좋다는 이야기를 하네요. 다 내가 복이 많답니다. 하하하.”


전화기 너머에서 행복해하는 아내의 웃음소리가 봄 햇살처럼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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