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피를 잡기가 어렵다 요즘은 쓰는 글마다 그 사람이 어렴풋하게 비쳐 많은 글씨들을 문질렀다 무엇을 적어야 하나 무엇을 비춰야 하나 갈피를 잡지 못한 손이 옅게 흔들렸다 겨울바람에 속절없는 나뭇가지 같았다 앙상한 소리들이 텅 빈 것만 같아 눈가를 지우듯 문지르는 날들도 이어졌다 분명 사랑이라 생각했으나 누구도 쉬이 고개를 끄덕이지 못했던 마음 그 어렴풋함으로 글을 썼으니 누구에게라도 지워지는 것이 문득 자연했다 갈피를 잃었고 나는 어디쯤까지 읽혔는지도 알 수 없었다 자욱 남지 않은 종이들이 슬프게 울었다 눈물을 머금은 종이들이 전등 빛에 번들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