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겨울이 오지 않는 곳이 있다. 회색 별이다.
"매일 그렇게 보면 뭐가 다르니?"
K가 탐탁지 않은 목소리로 물었다. 내가 망원경으로 별을 구경하는 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K. 사실 이 별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렇다. 아침에 일어나서, 그리고 자기 전에 망원경을 들고 바닥에 앉아있는 나를 별종 취급한다. 흉물스러운 건 찝찝하니까. 멸종된 별을 구경하는 건 별종.
별종. 별종 D.
그들의 뜻을 이해하는 동시에 이해할 수 없었다. 당장 내 옆에서 구시렁대는 K의 머리만 해도 회색 별에서 유행하던 머리 아닌가. 모두가 회색 별을 끔찍하다 말하면서도 회색 별에 살던 사람들을 야금야금 따라했다. 일주일 전 누군가는 바구니에 공을 넣는 놀이를 했고, 누구는 배추에 고춧가루를 묻혀 먹었다. 그리고 오늘은 K가 유리그릇에 팥에 버무린 얼음을 내왔다. 나에게 먹을 거냐고 물었지만 거절했다. 검은색 얼음이라니 맛이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K는 검은색으로 변한 얼음을 잘도 퍼먹었다. 나는 고개를 절레 저으며 망원경을 조금 더 가까이 가져왔다. 바다도 재를 머금은 것처럼 회색. 땅도 회색. 한때는 새하얀 얼음으로 가득한 곳이 있었다는 게 믿기지 않는 회색 별.
회색 별을 탐험할 원정대가 꾸려졌다. 공고가 붙자 냉큼 지원한 J는 예상이 빗나가지 않는 결과를 맞이했다.J는 나보다 먼저 별종 소리를 들었는데, 내가 망원경을 보기 시작한 것도 J의 영향이 적지 않다. 매일 회색 별을 바라보는 J의 모습이 괜히 멋져 보여 옆에서 기웃거리다 별종2가 되었다.
언젠가 J에게 매일 보면 달라 보이는 게 있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J는 회색 별 원정대에 선정된 후에야 답을 들려주었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고 하잖아. 저 별은."
모두 J가 망원경으로 보고 있던 것이 미래도 없고, 희망도 없는 잿더미라고 말했다.
"나는 미래를 보고 있다고 생각했어. 난 미래로 가는 거야."
원정대는 내일이면 회색 별로 떠날 것이다. 마음이 조급해졌으나 망원경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J가 못내 미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회색 별을 탐험할 수 있다는 기회를 준다고 했을 때 지원자가 몰렸지만 복귀할 수 없을 가능성을 경고하자 다들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빠졌다. 남은 건 J뿐이었다.
모두 별종이라 놀렸던 J는 홀로 우주선에 올랐다. 그의 얼굴에서 두려움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먹을래?"
K가 그릇을 들고 다가왔다. 이번엔 냉큼 손을 뻗었다.
"J는 무사히 도착했을까?"
까만 얼음을 씹자 미세한 단 맛이 입에 퍼졌다. 그제서야 나는 나의 감정을 직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