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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 03 저는 꿈이 없는데, 무슨 과에 원서를 쓰죠?

너보다 나이가 많은 내 꿈이 너의 불안을 덜어주기를

by 는개

S# 03 저는 꿈이 없는데, 무슨 과에 원서를 쓰죠?


______수업 시작 전, 교재를 펴며 분주한 나.

______교복 차림의 민트. 이미 책 펴고 앉아있다.

______무표정한 얼굴로 교복 타이를 벗은 민트

______책가방 한쪽에 집어넣는.

______갑자기 책 위에 뺨 대고 엎드린다.

______그런 민트를 쳐다보는 나.


민트_______ 쌤, 꿈이 없어서 너무 불행해요.

_________(의아) 왜?

민트_______ 무슨 과에 원서를 써야 할까요?

_________저는 꿈이 없는데...

_______ (이해한) 아, 원서... 어디 쓰고 싶은데?

민트________(힘없이) 그런 거 없다니까요?

___________대학만 가면 돼요.

_________(가볍게) 뭘 어떻게 해?

민트________꿈이 없어서요.

_______웃으며 바라보는 나,

_______그런 나와 눈이 마주친 민트, 답답하다.

_______속사포로 쏟아내는.


민트______중3 때까지는 공부만 하면 다 된다더니

_________고1 되곤 생기부 쓴다고 꿈이 뭐냐더니

_________고3 되니까 꿈 내놓으라고!

_________어디 갈지 정하지도 않았냐고

_________담임쌤이 정색하시더라고요.

________(오구오구) 꿈을 내놓으랬어? (웃음)

_________1학기 때부터 계속 생각해 봤는데...

_________(절망적인) 정말 모르겠어요. 진짜.

_________벌써 8월인데 저 어떡해요?

_________다음 달에 원서 어떻게 써요?!  






고등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면 흔히 듣게 되는 레퍼토리다. 처음에는 만나는 애들 중 절반즈음 이더니, 지금은 거의가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곁에서 보면, 정말 그럴 수밖에 없다.

초등학교 때부터 이거 해야 하고, 저거 해야 하고.

뭐는 하고 뭐는 하지 말고.


이거 했어 안 했어? 빨리 안 해? 게임 그만하랬지?! 인스타 그만하고 빨리 자! 하는.

하지 말라는 것과 하라는 것이 가득한 세상 속에서만 살다가 갑자기 너무 커다란 질문을 받는다.


넌 꿈이 뭐니?

넌 장래에 뭘 하고 싶니?


뭐가 되고 싶니?


기억도 나지 않는 유년시절부터 하면 안 되는 것과 하라는 것 사이에서만 살아온 ‘지금 세대의 아이들’에게 커서 뭐가 되고 싶냐는 질문은 공포나 다름없다. 그런 아이들의 공포를 정작 아이들 곁에 있는 어른들은 모른다. 그리고 그 모르는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잊을만하면 뭐가 되고 싶냐고 물어댔고, 아이들은 미궁 속에서 출구를 찾지 못하고 계속 헤매고만 있었다.


병아리 강사이던 시절, 지식만 가르치고 있을 때는 진지하게 아이가 뭘 하고 싶은지 함께 꿈을 찾아주기도 했다. 그러면서 점차 ‘장래’에 관한 얘기만 나오면 겪는 아이들의 패닉을 알게 되었다. 그나마 성격 자체가 호불호가 강한 타입의 아이들은 학교에서 하는 각종 ‘진로 탐색’을 통해 ‘어떤 분야’로 가고 싶다, 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그래봤자 열 명 중 한 명꼴로 간간히 만나는 정도였다.


꿈이 다 뭔가.

양념치킨이 좋은지, 프라이드치킨이 좋은 지조차 우물쭈물하며 대답하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하라니까 그냥 하는 애기들.

공부가 싫지만 해야 하니 어쩔 수 없이 하는 삐약이들.

싫으면 왜 싫은지, 좋으면 왜 좋은지 생각해 볼 시간조차 갖지 못하고 살아온 병아리들이다.


커서 뭘 하고 싶은지에 대한 진로 탐색까지 갈 것도 없다.

가장 기본적인 자신의 취향도 모르는,

그런 유치원생과 다를 바가 없는 게 요즘 아이들이다.


그런 아이들에게 ‘꿈’은

드라마 속 허구처럼, 환상으로 존재한다.


꿈이 있어서 빛나고,

꿈을 향해 달려가는 매일 속에 행복해하며 사는 사람들밖에 접하지 못해서 아이들은 꿈이 없어서 불행하다고 생각하고 슬퍼하고 절망스러워했다.






________(피식) 사다 줘?

민트_______(깜짝! 눈 땡글) 진짜요?! 어디서요?

________책 중에 있지 않냐? 꿈 파는 상점??

__________뭐, 뭐더라.... 뭐시깽이 <꿈 백화점>?

민트_______(빵 터짐) 크크크크...

________(마주 보고) 크크크크....

민트_______(우울) 꿈이 뭐예요? 먹는 거예요??

__________(고개 푸욱) 그게 뭔지 꿔볼 시간도 없었어요...


_______한참을 고개 숙이고 한숨 쉬던 민트

_______갑자기 급 생각나 눈 번뜩! 하는.


민트________쌤은 어릴 때부터 꿈이었댔죠? 작가?

__________응.

민트________(부럽) 좋겠다...

__________왜?

민트________저 같은 고민 안 할 것 아니에요?


_______민트, 부러움 가득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는.

_______그런 민트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나

_______어떤 의심도 없는, 순수하고 말간 얼굴이다.


________(가볍게) 그럼 가져가라 내 꿈. 사.

민트_______에?

________세일해 줄게. 20%

민트_______왜 팔아요?!

__________없어서 고민하는 것보다 낫잖아요?

________(픽, 웃는) 부럽긴.

__________꿈이 있는 게 좋다고 누가 그래?

민트_______아, 왜요오오~

________(얼굴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나 뭐야?

민트_______(어리둥절) 뭐가 뭐예요?

_________나 뭐냐고

민트_______쌤이죠?

_________그래, 쌤이지.

민트_______근데요? 그게 왜요?

_________(빙글빙글 웃으며) 나 쌤이야.

민트_______(진심 모르겠다)???????????

_________작가 아니라고.

민트_______아?!

_________작가 아니고 쌤이잖아 크크크

민트_______(놀란) 헐!







꿈이 있다고 행복한 게 아닌데.

있는 게 무조건 다 좋은 것도 아닌데.


나는 그런 민트의 얼굴을 보며 나는

꿈이 있어서 불행했던 날들을 떠올렸다.


글을 쓰면서 가장 큰 즐거움도 느꼈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수렁 같은 큰 절망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기도 했다.

꿈을 이룬다고 파라다이스가 펼쳐지는 것도 아니었지만, 꿈 근처도 못 가고 이렇다 할 이력도 남기지 못한 채 오랫동안 지망생으로 사는 건 끝없이 나의 재주를 의심하고 자문하게 만들었다.


꿈이 있어서 행복한 날보다

능력이 부족해 절망하는 날이 월등히 많았다.


일 년이면 행복한 날은 열흘이나 됐을까?

일주일이나 됐을까......


... 하지만 아직

그걸 알 나이는 아니었다.


그 맘 땐, 있어서 얻게 되는 확실함보다,

없어서 갖고 있는 불안이 훨씬 커 보이는 법이지.



내 꿈이 너보다 나이 많아


꿈이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좋은 것도 있고 나쁜 것도 있어.


이루지 못한 꿈이 버려지지도 않는데...

네가 보기엔 내가 좋은 날만 있었을 거 같냐?


나도 모르게 냉소적인 얼굴로 쏘아붙이듯이 말했다.

일하는 자리에서. 공적인 자리인데.

일 하는데 가면이 깨진 건 오랜만이었다.





_______벙찐 얼굴의 민트.

_______생각지도 못한 말에 허를 찔린 표정이다.

_______정신차리고 장난스레 분위기 전환하는 나.


________나는 너 꿈이 없어서 더 좋은데? 흐흐

민트______(고개 갸웃) 엥? 꿈이 없어서 좋다니요?

_______(귀엽다) 입시컨설턴트 입장에서는

_________꿈 없으니 원서 선택 폭이 넓어지잖아요~

________학부제로 뽑는 데를 찾아봐도 되고.

민트_____아~

______(부러 가볍게) 이도 저도 아님 자유전공도

________있어. 2학년 때 전공 선택하는 거.

_______ 유예기간을 주는 거지. 1학년 땐 교양듣고

________이것저것 해보고 충분히 생각해 봐.

________아직 애기잖아.

민트_____오호?

______ 그리고도 하고 싶은 거 없으면 돈 많이 버_________는거 해. 자본주의 사회에서 취할 수 있는

________물질이 많으면 중간은 가겠지.

________그럼 불행하게 살진 않을 걸.






그래서 나는 강사로서는 생각의 필요를 가르치고,

입시컨설턴트로서는 시간을 벌어주기로 했다.


미래는 대학진학으로만 결정되는 게 아니야.

전공 하나 잘못 선택하면 인생 망하는 건 더더욱 아니고.

그러니까 세상 끝날 거처럼 울지는 말자

꼬맹이들아



열심히 찾고,

열심히 놀고,

많이 경험하고

많이 생각하자


그럼 분명 시나브로,

갈 길에 서게 될 거야.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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