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 04 자주자주 실패하고, 꽤 틈틈히 성공하게
________개념 설명이 막 끝난 차, 개념 확인문제를 펼치는 나.
________문제를 본 순간부터 얼기 시작하는 핑크
________풀라고 말을 하려던 나, 핑크를 본다
나_________핑크, 문제 풀 때 뭐라고 했죠?
핑크_______(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다 틀려도 상관없다.....
나_________(못 들은 척) 뭐라고요?
핑크_______(여전히 기어들어가는 목소리) 다 틀려도 괜찮다.
나_________(계속 못 들은 척, 정색하고 반말) 안 들려.
핑크________(조금 더 커진 목소리) 틀려도 아무 일도 안 일어난다.
나_________(커진 목소리로 정색하고 반말하는) 뭐라고?
핑크_______(더 큰 목소리 크기, 외치듯) 틀려도 아무 일도 안 일어난다!
나_________(귀여워 죽겠다. 빙그레 웃어보이며) 그렇지. 잘해쪄.
___________(유아들에게 하는 목소리) 아이 예쁘다아. 풀어보까요?
_______문제 푸는 핑크, 이윽고 다 풀고,
_______나, 채점 맨다.
나__________(맑고 고운 목소리)딩동, 딩동, 딩동,
____________(<출장 십오야> 나영석 PD 말투로)땡!
____________딩동, 딩동, 딩동, 땡! 땡!!!
_______시무록해진 핑크, 점점 고개 숙인다.
_______나, 손가락 튕기는 소리로 나를 보게 하는.
_______여전히 시무룩한 얼굴이다.
_______빙긋, 웃는 나. 핑크 보고 다시 말한다.
나_________문제 틀리면 된다 안된다?
핑크_______(시무룩)...된다.
나_________문제 틀린다고 무슨 일 일어난다 안 일어난다?
핑크_______(좀 나아졌다)안 일어난다.
나는 내가 만나는 고등학생들을 ‘신생 어른이’라고 부른다.
자아가 태어나는 시기, 흔히 ‘질풍노도의 시기’라 불리는 2차 성징은 이제 더 빨라졌다.
빠르면 11살, 보통은 12~14살.
그때, 어른이 될 자아가 처음으로 세상에 얼굴을 내민다.
그로부터 7~8년.
이제는 마지막 미성년자의 시기다.
18살.
이 나이가 되면, 가족을 비롯한 주변 어른들은 아이가 다 컸다고 생각한다.
특히 덩치가 커진 남자아이일수록 더 그렇다.
“그 나이 먹고 이것도 못 하니?”
“나이 값 좀 해라.”
“그 정도 컸으면 알아서 해야지.”
“니가 몇 살인데 엄마가 그런 것까지 해줘야 해?”
덩치는 아이의 의도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른들은 그 덩치를 보고 아이를 다 큰 어른처럼 대한다.
그리고 아이가 못하거나 실패하면 야단을 친다.
요즘 아이들이 아무리 오냐오냐 자란다 해도,
덩치가 나이를 결정하는 건 아니다.
아이는 아이다워야 한다.
하지만 요즘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아이답지 않은 것을 요구한다.
조숙함이나 성숙함을 바라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다.
신생 어른이는 이제 겨우 여덟 살이다.
문제집을 풀면서 왜 틀리면 안 되는지를 모르는 아이들이 태반이다.
엎어져봐야 아픈 줄 알고,
무릎이 까져봐야 피가 나는 줄 알며,
싸워봐야 상대의 마음을 고려할 줄 안다.
‘나이 값’이라는 것도 가르쳐줘야 안다.
세상엔 나이 값 못하고 길거리에서 소변을 보는 노인들도 많은데,
아이에게 나이 값을 기대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공부하기 바쁜 아이들을 위해
학부모들은 힘든 일이 있으면 치워주고,
조금이라도 위험해 보이면 길을 막아버린다.
아이가 다치지 않도록 꽃길만 깔아주려 한다.
학부모들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것 역시 자식을 위하는 지극한 마음인건 분명히 안다.
하지만 그런 풍토가 생각지도 못한 결과를 가져왔다.
공부하느라 알 시간도 없고,
공부하느라 클 시간도 없다.
그래서 나는 유치원 선생님처럼 하나하나 가르치고 있다.
“틀리면 돼요, 안 돼요?”라는 질문에
망설임 없이 “돼요!”라고 답할 수 있을 때까지.
사진출처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