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 05 9월 모의고사 망쳤다고 세상 끝나지 않아
________한 가정집, 보라의 방. 밤, 불 켜지 않은 방 안이 어둡다.
________2025년 9월 3일에 [9월 모고]라고 빨간색으로 별표 가득 쓰여 있다.
________책상 위, 잔뜩 찢어져있는 채점 맨 시험지
________교복차림의 보라, 침대 위에 이불 뒤집어쓰고 울고 있다.
________속상한 얼굴의 보라 모, 보라에게 휴대폰 건네주고 나간다.
보라_______(잔뜩 운 목소리) 쌤...
나(F)______(전화 목소리) 보라.
보라_______쌤 어떡해요?... 저 대학 어떻게 가요 ㅠㅠㅠㅠ
나_________(나지막이) 보라. 학업이 뭐라고 했어?
보라________직업이요
나_________너는 어떤 일 하지?
보라_______학생이요
나_________응 학생은 뭐야?
보라_______학업에 종사하는 사람이요
나_________응 직업이랬지, 일이야 일.
보라_______(넋 빠진) 네에.. 직업... 일....
나__________(더 단호하게) 일을 하다 보면 실적이 올랐다가
____________떨어졌다 할 수 있어? 없어?
보라_______있어요.....
나_________실적이, 내가 원할 때, 내가 원하는 만큼,
___________내가 의도한 대로 나온댔어?
보라_______아니요......
나_________학업도 업인데, 네가 원한만큼, 원할 때,
___________네가 의도한 대로 나올까?
보라_______아니요......
_______여전히 힘 빠져 있는 목소리의 보라
_______2025년 9월 3일에 [9월 모고] 빨간 별표 가득 보인다.
_______기운 빠져 힘없이 대답하고 있다.
나_________보라. 쌤이 뭐랬어. 학업이 뭐라고 했어?
보라________직업이요
나_________너는 어떤 일 하지?
보라_______학생이요
나_________응 학생은 뭐야?
보라_______학업에 종사하는 사람이요
나_________응 직업이랬지, 일이야 일.
_______전화받기 전 보다 나아진 보라의 얼굴
_______휴대폰 스피커로 계속 나의 목소리 들린다.
_______그래도 여전히 시무룩한 보라
나_________성적이 좋았다가 나빴다가 그럴 수도 있는 거야.
___________그래 안 그래?
보라_______(시무룩)... 그래요......
나_________방법 있댔어, 없댔어
보라_______있어요......
나_________그쵸, 방법 있다고 했죠?
보라_______네에
나_________기회는 얼마든지 있다고 했죠?
보라_______네에...
나_________(더 다정해진 목소리)그니까 뚝.
보라_______이잉.......
나_________뚜욱~~~~~~~~
보라_______(복받혀 더 우는) 이잉.....
나_________스읍- 뚝 안 그치지...?
보라_______(너무 불안한) 어떡해요. 다음 주에 떨어지며언
_______우는 보라 뒤로 비치는 달력.
_______9월 8일에 동그라미 되어있고, 원서 접수 쓰여 있다
_______다시 울기 시작하는 보라.
나_________(별 것 아닌 것처럼) 원서 그럼 낮춰 써, 그럼 되지
보라_______낮춰 써도 떨어지면 어뜨케요...
나_________그럼 수시에 전문대 쓰면 되지
보라_______그랬다가 붙으면 어떡해요
나_________그럼 안 쓰면 되지
보라_______그랬다 떨어지면...
나_________떨어지면 뭐 인생 망해?
보라_______아니요...
나_________쌤이 어떡하면 된댔지?
보라_______반수 하고 군대 가고 재수하고 유학 가고...
나_________학생부 3년까지 살아있으니까 반수도 할 수 있고,
___________재수도 할 수 있고 삼수도 할 수 있고
___________대학 가서 전과도 할 수 있고, 편입도 할 수 있고,
___________유학도 갈 수 있고.. 길이야 많다고 했지?
___________방법 무궁무진하게 많다고 했잖아.
보라_______마쟈요...
나_________ 쌤이 방법 찾아 준댔어, 안 했어?
___________ 선생님이 가만히 내버려 둬?
보라_______아니요.
나_________ 그래, 나 여기 있잖아.
___________ 보라 잘못되게 쌤이 가만 두겠어?
보라_______ 이잉.......
나_________ 그럼 진짜 뚝. 너 좋아하는 프라푸치노 먹으러 가자. 쌤이 쏘께.
___________ 그니까 뚝하는 거야? 우리 이쁜이를 누가 그래쪄어~
2025년의 9월 모의고사는 9월 3일에 시행되었다.
나는 고등학생 전문 강사고, 매년 그중 3학년이 절반 즈음이다.
이렇게 산지도 13년째.
대입 입시는 인생 전체로 보면 삶의 과정 중 하나이다.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그렇지 않다.
한 문제 한 문제가 아이들에겐 목숨줄처럼 여겨진다.
모의고사가 끝나고 수업 중간중간 전화하고, 사실 우는 친구들 달래느라 오늘 새벽 한 시 넘어서까지 진을 뺐다. 의대지망을 희망하는 초 1등급 친구들은 자신의 하루 공부할 시간을 감정으로 망치지 않기 위해,, 채점을 하나도 매지 않고 독서실까지 다녀와서, 자정 넘어 집에 들어와 채점을 하고 그제야 우는 친구들도 있다. 우는 시간도 아까워서 울다가 피곤해서 잠들려는 의도를 가진 아이들.
그렇게 아이들은 살고 있다.
스무 살이 다 된, 덩치가 산만한 애들이지만
이렇게 사지에 몰려서 울면, 마음이 찢어진다.
처음에는 나도 마음이 아파서 매번 울었다.
하지만 연차가 쌓이면서 나도 대응하는 노하우도 생겼고, 달래는 방법도 많아졌다.
또 타격을 최소로 받을 수 있게, 틈만 나면 공부는 전부가 아니라고, 삶의 과정 중에 하나라고. 공부는 잘해도 되고, 못 해도 된다고, 성적이 너의 가치를 알려주지 않는다고 늘 잔소리도 하고 세뇌도 시킨다.
하지만 아이들은
너무 약하다.
신생아도 아닌데
너무 약한 이 아이들.
나는 오늘도 아이들의 성적이 적힌 데이터를 잔뜩 컴퓨터 앞에 띄워놓고
입시 컨설팅 자료들을 책상 위에 잔뜩 늘어놓고,
전년도 경쟁률, 수능최저, 아이들 성적 등 정신없이 분석하고 또 분석한다.
애들은 자고 있을 시간. 일을 그렇게 많이 한건 아닌 것 같은데 창문 밖에 밝아온다.
벌써 휴대폰 액정 위의 시간은 5시가 넘어있다.
일단 눈을 좀 붙이고 다시 일어나서 볼까.
4년제 대학의 원서 접수 기간은 바로 다음 주.
오늘 발생한 변수를 보고 또 보고.
원서 접수 현황을 보며 눈치 싸움 할 준비도 하고,
다음 주까지 피 말리는 전쟁을 치르기 위해 총알을 많이 준비해야지.
울지 마,
쌤 여깄어,
얘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