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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성의 그림자에 잠식되어

by 는개

저는 완전히 제 생각을 신뢰하지 못해요.

어떤 의견이 생긴다면, 그것이 사회적으로 맞는지, 보편적인 생각인지 아닌지를 확인하기 위해 포털사이트에 검색합니다. 검색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손은 습관처럼 키보드를 두드려요.


제일 많이 검색하는 건 제 마음에 들었던 원초적인 감정과 제가 했던 행동입니다.

내 마음이 보편적 감정인지, 혹은 나만 그렇게 느끼는 것인지 검열하듯 확인해요.


어려서부터 특이하거나 별종이라 불렸어요. 이상하다거나 나댄다거나 쟤 미친놈 같아, 하는 말이 버거웠습니다. 하지만 나름대로 노력해도 현실은 그렇지 않았어요.









어릴 땐 어리고 별난 애라고 불리며 그저 넘어가는 일이 많았어요.

친구도 없고, 외로웠지만 그저 그뿐이었죠.

나만 괴롭고 끝났으니까.


그런데 성인이 된 이후, 먹고사는 문제와 직결되면서 다른 어려움이 닥쳤어요.

사회 초년생일 땐 열심히 하고 열정 높은 신입으로 그럭저럭 회사에 다닐 수 있었는데,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후임도 생기고 중간 위치가 되다 보니 마냥 입 다물고 있어도 안 되는 순간이 오더라고요. 그런데 그렇게 어쩔 수 없이 의견을 내면 종종 험담이 들려왔어요.

“왜 저렇게 나대?”, “왜 자꾸 일을 벌여?”, "승진 시즌 가까워지니까 어떻게든 본인 어필 하고 싶은 건가?"" 헐, 인사고과 때문에? 과장님 눈에 띄려고? 웃기지도 않아. 정말."


화장실에서 들려온 뒷담화는 내 기분을 뚝, 가라앉게 했어요.

이런 소리를 듣는 내가 너무 싫었죠.

게다가 제가 낸 의견은 결국 현실적이지 않다며 초반부터 제외되었어요.

몇 번이나.


그 순간부터 저는 제 생각을 더 믿지 못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최대한 의견을 내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살았는데 우울증 진단 이후부터는 아예 저를 신뢰하지 못하게 됐습니다. 그저 일상적 부딪힘이 생겨도, 곧장 검색창을 열어봅니다. “내가 틀린 건가? 사회적으로 맞지 않는 건가?” 스스로를 검열하는 습관이 자리 잡았다.


검색은 나를 보호하는 장치예요.

틀리지 않기 위해, 이상해 보이지 않기 위해.

첫 번째 치료를 할 무렵이 코로나 때라 자연스럽게 사람을 안 만나게 되었어요.

재치료 전까지 인간관계도 하나 남기지 않았고 재택근무를 하며 세상은 내 집이 되었어요.











아직도 나는 내 집이 세상의 전부입니다.

재발 이후에는, 식당에서 계산하며 나오는 행동까지 사회적 행동인지 검색하게 됐습니다.


‘보편적인 생각’이라는 기준은 정말 존재하는 걸까요?

혹은 제가 만들어낸 환상일까요?


사회적 인간의 행동을 해야 일을 계속할 수 있잖아요. 결국 생존의 문제가 나를 고립시킨다고 생각했다가도 이상하다는 취급만 받는 나인데, 이게 정말 고립인가, 하는 마음도 들어요. 너무 많이, 너무 자주.


나는 여전히 검색창 앞에 앉아 있습니다.
내 생각을, 발상을 전혀 믿지 못한 채, 맞는지 틀린지 검열하며 스스로를 의심합니다.
검색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손끝은 또다시 키보드를 향합니다.


지금은 일단 이렇게라도 살고 있는데, 앞으로도 나는 계속 이렇게 살아가게 될까요.

틀릴까 두려워하며, 보편성이라는 이름의 그림자를 좇으며.
그리고 그 끝에서 남는 건, 믿지 못한 나 자신뿐인 것 같아요.

어차피 혼자 남을 거라면 굳이 이 세상에 있을 이유가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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