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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 11. 그래도 그렇지, 이런 것까지 가르쳐야 해?

교과서에 없는 것들을 가르치는 순간들

by 는개


S# 11. 자습실 (밤)


_______무표정으로 들어와 책상 앞에 서는 카키

_______손에는 문제집이 들려있다.

_______채점된 문제집에 객관식은 다 맞은.

_______주관식 문제는 아예 빈칸이다.

_______받아 들고 카키 쳐다보는 나.



카키______쌤, 이거… 답은 ‘자아 분열’에 대한 내용을 쓰면 되는데요.

__________어떻게 써야 돼요?

________(문제집 받아 읽는) ‘자아 분열’…

__________그대로 쓰면 되지? 왜?

카키______(잠시 침묵하다) 못 쓰겠어요.

________(쓴웃음) 그래도 그렇지, 고등학생이 이정도 문장 구사가 안돼?

카키______(작게) 저 중학교땐 지필고사에 주관식 문제 없었단 말이에요.

__________서답형은 그래도 할 만 한데, 서술형은 진짜 못 쓰겠어요.

________(단호) 그러니까 틀리지. 답을 알아도.

__________처음부터 어떻게 잘해? 틀리는 게 당연한 거 아냐?

__________근데 틀릴까 봐 말도 안 해. 틀리면 죽는 줄 알아.

__________그 한 번도 무서워하면 어떻게 하냐...

__________일단 문제에서 주어를 따와봐.



_______[(가) 인물의 심리를 조건에 맞게 쓰시오] 문장 화면에 보인다

_______문제 쳐다보며 주어 받아 적는 카키.

_______샤프 끝서 [(가) 인물의 심리는... ] 써지는.

_______몇 번이고 썼다 지웠다 하는 카키.

_______아무 말 없이 지켜보고 있는 나.

_______살짝 말해주고, 카키는 ‘아!’하고 적고,

_______다시 지웠다가 또 적는다.



_________좋아. “(가) 인물은 외부의 압박 속에서 자기감정을 숨기다가 결국 폭발한다.”

___________이게 네 문장이야. 네가 만든 거. 됐어?

카키 ______좀… 이상한 것 같기도 하고…

_________이상해도 괜찮아. 너는 지금, 네 생각을 글로 옮긴 거야.

_____________그게 시작이야.











요즘 아이들은 단순히 공부만을 가르치면 되는 게 아니다. 고등학생으로서 당연히 할 수 있어야 하는 것들을 못하는 애들이 태반이다.


주관식 답을 쓰게 하기 위해 (답을 아는데 문장 구성을 못하는 고딩이들이 너무 많다!) 작문을 가르치는 것은 물론이고, 뭐 하나라도 잘못하면 큰일 나는 줄 아는 애들이 틀려도 의연해지게 만들기(무엇이든 조금만 잘해도 물개 박수를 쳐준다) 밥도 안 먹고 공부하는 애들한테 밥은 먹어야 한다고 잔소리하기.


코로나 이전에도 놀랄 때가 많았는데 팬데믹 이후로 더 어려질 수 없을 만큼 더 어려지고 있다.


그래도 그렇지, 이런 것까지 내가 가르쳐야 해?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다.

문장 구성, 감정 조절, 밥 먹는 습관까지. 이건 부모님이, 학교가, 사회가 해줘야 하는 일 아닌가?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 생각이 바뀌었다.


아이들은 지금, 너무 많은 걸 놓치고 있다.

팬데믹 이후로는 더 심해졌다. 친구들과 싸우고 화해하는 법, 동아리에서 역할을 나누는 법, 실수하고도 다시 일어서는 법. 그런 것들을 배울 기회가 사라졌다.


그래서 나는 문장을 쓰는 법을 가르친다. 단순히 문장을 잘 쓰는 법이 아니라, 자기 생각을 정리하고, 세상과 연결되는 법을 알려주기 위해. 단어로 대답하기만 하던 아이들은 그 문장을 쓰는 시간만큼은 자기 자신의 생각을 알게 된다.


처음엔 지필고사에 의무적으로 담기게 된 서술형 평가의 답안을 쓰기 위해 배웠던 작문을 배웠던 아이들이 자신을 표현하고, 실수하고, 고쳐가며, 조금씩 성장한다.


작가지망생으로서 나 역시 글을 쓰며 수없이 틀렸고, 수없이 고쳐야 했다.

그 과정에서 표현하고 싶은 걸 표현할 수 있는 표현력이 점점 좋아졌다.


나는 적확하게 쓰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글을 쓰고 싶었던 시간이 더 흘러가면 흘러갈수록 점점 잘하는지 모르겠다. 솔직히... 나는 사실 아직 멀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써 보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된다. 또, 그런 시간이 필요하다. 느려도 괜찮고, 틀려도 괜찮다는 걸 알려주는 글쓰기. 그때만큼은 내가 작가 지망생인 게 다행으로 느껴졌다.


공부는 지식을 쌓는 일이기도 하지만, 결국은 사람답게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

한 번씩 자문한다. 내가 이런 걸 가르칠 자격이 있는 걸까. 가르쳐도 되는 걸까? 하고.


그러다가도 생각한다. 그래도 그렇지, 이런 것까지 가르쳐야 하나?

그래, 애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가르쳐야겠다고.


누군가는 해줘야 하니까.

그리고 나는, 그걸 할 수 있는 사람이고 싶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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