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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 12 강사라는 생업

by 는개

S# 12-1 '나'의 사무룸 (밤)


_______새벽 한 시를 알리는 시계.

_______커다란 책상, 위에는 각종 교습자료 쌓여있는.

_______넓은 모니터가 두 개 연결되어 있다.

_______모니터에 수업 자료, 파일들이 마구잡이로 띄워져 있고

_______방송용 조명, 마이크, 카메라 설치되어 있다


_______화면에 띄워진 사이버 강의실.

_______조명, 마이크, 카메라 일제히 꺼진다.

______ 펜을 놓지도 못하고 의자에 널브러져 있는 나


_______교재 정리하는 나. 휴대폰이 울린다.

_______휴대폰 화면 '고3 강자주 어머님'



자주 모____(강한 대구 사투리로) 선생님,

__________국어 수업은 안 하고 와 쓸데없는 소리를 하십니까?

________네?

자주 모 ____애가 정시 한다카이!

__________수시 얘기는 왜 꺼내서

__________아를 헷갈리게 만드냔말입니더! __________

________(당황) 아… 자주가 미술학과를 희망하는데,

__________학교에서 상담을 못 받았다고 해서요.

__________수시도 미술실기가 없는 게 아니니

__________좋을 것 같아서…

자주 모____(끊지 않고 쏟아냄) 그건

__________미술학원에서 할 일 아닙니까?

__________국어 시간에 와 그런 얘기를 합니까?

__________애가 지금 멘붕이라예.

__________옆에서 다 들었거든요.

__________선생님이 뭔데 아 인생을 흔듭니까?



_______20분 넘게 이어지는 일방적인 말.

_______나는 말없이 듣는다.

_______(시간경과)

________


_______. 이번 수업은

__________수업시수에 포함하지 않겠습니다.

__________다시 해드릴게요.

자주 모____(냉큼) 그라믄 됐습니다. (뚝 끊어지는)

________(핸드폰을 내려놓는) 후........




S# 12-2. 학원 사무실 (다음날 낮)


_______조심스럽게 원장에게 다가가는 나


________어제 자주 어머님께 전화가 와서요…

__________수업 중 수시 얘기를 꺼낸 걸로 불편해하셔서,

__________시수에서 제외하고 보강하기로 했습니다.

원장______ 한 시간 내내 수시얘기를 했다는 건가요?

________ 아니요, 한 15분?...

__________학교에서 제대로 상담을 안 해줬더라고요.

__________수시에 실기전형도 있는데 전혀 모르고....

__________그래서 수시 써보는 게 좋겠다고 얘기해 줬어요.

원장 ______그런데요?

________자정 수업이었는데

__________새벽 한 시에 끝나자마자 전화 와서...

__________20분 넘게 화를 내시더라고요.

__________왜 쓸데없는 얘기를 해서 애를 흔드냐고.

원장______ (무표정하게) 그런 걸 왜 들어줘요?


______ 이해할 수 없는 얼굴의 원장.

______ 숙이고 있던 나의 고개가 더 내려간다.


________(작게) 학생이 너무 모르고 있어서…

__________그냥 조언 정도였는데…

원장_____ (한숨 쉬며) 바로 옆에서 보고 있는 학부모

_________ 많다고 몇 번이나 말했잖아요. 책잡힐 일을!

________(기어들어가는 목소리) 네…


원장_____ (냉정하게) 우린 국어만 가르치면 돼요.

__________물어보지 않는 한 굳이 말하지 말아요.

________......

원장_____ (안타까운. 한숨) 는개수석 마음은 알아요.

__________모든 아이를 진심으로 대하잖아요. 항상.

__________근데 괜히 감정 소비하지 마세요.

__________마음 다치고, 시간은 시간대로 버리고.

__________뭐예요, 이게... 본인만 손해잖아요.

__________그런 건 학부모가 원하는 대로 두는 게 맞아요.


_______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나.

_______씁쓸하게 돌아서서 나가는.

______ 그런 뒷모습을 보는 원장의 모습에서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소설이 아닌 드라마로 노선을 틀었다.

보통 평일 낮 시간인 드라마 작가 아카데미에 다니려고 직장을 그만뒀다.

안정적인 수입과 사회적 위치를 내려놓고, 다시 글로 돌아와 한 발을 내디뎠다.


하지만 꿈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었다.

생계를 위한 일이 필요했고, 시간을 유연하게 쓸 수 있으면서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다 보니, ‘강사’라는 생업이 손에 잡혔다.


아이들을 가르친 경험은 있었다.

국어를 가르치며, 글을 읽고 쓰는 법을 알려주고, 그 속에서 아이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이 나에겐 낯설지 않았다.


사람을 좋아하는 성격, 글을 쓰며 생긴 관찰 습관, 그리고 사람 하나하나에게 과하게 의미를 부여하는 천성은 나를 단순한 ‘강사’가 아닌, 아이들의 삶에 깊이 개입하는 존재로 만들었다.


모든 학생에게 최선을 다했다.

그들의 표정 하나, 말투 하나, 심지어 그날의 걸음걸이까지도 내겐 신호처럼 느껴졌다.


그 신호를 읽고,

조심스럽게 말을 건네고, 때로는 조언을 하고, 때로는 그저 들어주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았다.


내 진심은 종종 왜곡되었고, 걱정은 오지랖으로 받아들여졌으며, 국어 수업 시간에 건넨 한 마디 조언이 “쓸데없는 소리”가 되기도 했다.


사람을 잘 의심하지 못하는 성격은 수업료를 몇 번이나 떼이게 만들었으나,

나는 학습 능력이 없는 건지 마음은 조금도 단단해지지 못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면서도, 나는 여전히 사람을 믿고, 여전히 아이들에게 의미를 부여했다.


감히 ‘교육자’라고 스스로를 부를 수 있을까.

그런 자격이 내게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나는 그저, 드라마를 배우기 위해 선택한 생업 속에서 아이들과 마주하고, 그들의 삶에 잠시 스며들고,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진심을 건넬 뿐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이런 일이 있을 때면 내가 학생을 가르치는 이 자리에 있어도 되는 건가, 하는 회의감이 들었다.


다시 글을 쓰겠다고 결심하고 전업 강사로 생업을 정했던 그때도. 지금도 나는 작가가 아니다.

지금의 나는 방송국 공모전에 경쟁률을 높여주는 숫자의 하나로만 존재하는 지망생일 뿐이다. 작가로서도 기능하지 못하고 있는데, 전업강사로만 10년이 넘고 나니 이와는 별개로 나는 누군가를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인가를 자문하게 되었다. 그리고 자주 강사로서도 쓸모가 없는 것 같다는 감정에 종착했다.


수업이 끝난 후 자기 전까지 한두 시간 대본을 썼다.

한 씬도 못 쓸 때도 있었지만, 그렇게 했다.


하지만 오늘은 도저히 기운이 나지 않았다.

대부분 쓴 맛 가득한 에일 맥주를 들이키며 멍하니 창문 밖을 보았다.

조금이라도 싼 월세를 위해 발품을 팔아 얻은 이 공간은 창문 밖으로 옆 건물의 벽만 보였다. 처음엔 딴생각 안 하고 좋지 뭐,라고 생각했었던 그 벽이, 창문 밖으로 손을 길게 뻗으면 닿을 수 있을 것 같은 그 벽이, 세상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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