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성적 발표 D - 7, 희망을 연기하는 시간
D - 7
수능 성적표가 나오기 일주일 전, 하루에도 열두 번씩 기분이 업다운되는지 신나게 놀던 하양이들은 명랑하다가도 순식간에 초조해져서 메시지를 보낸다. 재밌게 놀다가 부침개 뒤집듯이 시무룩해져서.
강의실은 조용했지만, 그 조용함은 공부에 몰두한 집중이 아니라 결과를 기다리는 불안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하양이들은 수능 성적표가 나오기 전까지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었다. 나는 그들의 얼굴을 보며, 네 번째도 떨어진 나를 지우고 웃어주었다.
결과는 이미 나왔어. 아직 오지 않았을 뿐이지.
그러니 나처럼 덜덜 떨지 말고, 하루라도 덜 초조해하자.
나는 연락 오는 모든 하양이들에게 “결과가 전부는 아니다”라고 다정하게 말했다. 논술 지도를 하다 보니 반수, 재수, 삼수하는 애들이 많았다.
올해도 연락들이 왔다. 반수 했다는 하양이들이나, 재수했다는 하양이들. 이번에는 수능최저를 맞췄다고 하기도, 저번보다 잘 본 거 같긴 한데 불안하다고 하기도, 무섭다고 하기도 하며.
상급 클래스 탈락 통보메일을 떠올리며 나는 이제 스스로에게 결과가 전부인지 아닌지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결과는 자주 전부였다.
하지만 학생들은 아직 희망이 필요하다.
불안을 견딜 안심이 필요하다.
손바닥으로 하늘이 가려질 만큼이나 세상이 좁아, 말 한마디로도 웃게 만들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미, 이젠 모르겠다고 생각하지만 확신 있게 희망을 말해주었다.
열아홉은 필요하니까.
하지만
나 역시 잃지 않았는지 모른다. 잃었다고 생각하면서 또 다른 공모전을 기다리는 걸 보면.
기다림은 끝나지 않는다.
어른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들 앞에 서 있지만, 사실 나는 또 다른 수험생일 뿐이다.
결과 앞에서는 나도 하양이들과 전혀 다르지 않다.
씁쓸한 웃음이 입가에 번졌다.
나는 부러 더 밝고 다정하게 하양이들에게 얘기했다. 이번에 잘 안돼도 끝이 아니야. 학생부는 3년 동안 살아있으니까 계속 시도해서 레벨업 하면 돼. 그렇게 인서울 하는 거지. 현역은 재수생을 절대 이길 수 없어. 아무리 준비해도 경험의 힘은 세거든. 그러니까 우리 강아지는....(어쩌고 저쩌고 솰라솰라솰라).
그 말은 아이들의 마음속에 공기 속에 작은 온기를 불어넣었다. 아이들의 눈빛이 잠시 흔들리다, 다시 빛을 되찾았다.
그러나 내 마음은 달랐다.
이번 클래스 진급만 네 번째 떨어진 실패가 내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기회가 남아 있다는 말은 아이들에게는 희망이었지만, 나에게는 공허한 메아리였다.
나는 이미 기회를 소진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말한다.
희망은 때로는 거짓말이어도 좋다.
그 거짓말이 누군가를 버티게 한다면, 그것은 진실보다 더 따뜻한 힘을 가진다.
아이들에게 건네는 말은 그들의 내일을 위한 것이었지만,
어쩌면 나 자신을 붙들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나는 오늘도, 희망을 연기한다.
이 아이들에겐 분명히 존재하고, 당연한 희망.
그리고 그 연기 속에서,
나 역시 조금은 살아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