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시작
행복했다.
회사 화장실 첫 번째 칸 안에서 테스트기의 선명한 두 줄을 마주한 순간부터 12시간의 사무치는 고통 끝에 출산하던 순간까지 내 안에 싹튼 생명이 온 우주를 담고 있는 듯 그래서 그 우주가 온통 내 것인 듯 온 세상이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 같이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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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여름휴가를 다녀왔던 달이였다.
이제 슬슬 아기 천사가 우리에게도 찾아와 줘야 할 텐데 하면서도 여행이 언제나 그렇듯 계획대로 흘러가지는 않았고 해야 할 숙제들은 뒷전으로 미루었던 터라 별 기대 없이 흘러간 그런 달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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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후 1년 4개월.
우린 둘 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다.
신혼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알콩달콩 재미있었고 아기가 없어도 영원히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은 날들이었다.
아기는 무조건 신혼생활 1년 이후 차차라고 못 박았던 터라 양가 부모님 조차 '아기는 언제 낳을 거니?' 같은 고리타분한 말 한마디 꺼내시지 않았다.
누구도 말하지 않았지만 나의 가슴 한편엔 '아이'는 숙제처럼 남아있었다.
본래 고통의 시간은 더디게 흐르고, 행복의 시간은 빠르게 지나간다.
시간은 너무도 빨리 지나갔다.
신혼을 즐기겠다며 막연히 '아이는 적어도 1년은 있다가 가질래'라고 했던 그 1년이 지나가 버렸다.
남편과 이제는 아이를 가져보자고 했다.
우리가 원한다고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산부인과 검진을 다녀왔다.
자궁경부암 검진도 받을 겸 병원에 가서 피검사와 자궁 검사를 했다.
아이를 가질 계획이라고 하니 엽산을 챙겨 먹으라고 하시며 자연임신 먼저 시도 후 잘 안된다 싶을 때 다시 오라고 하셨다.
그날로 엽산을 먹기 시작했고, 이제는 피임을 하지 않는다.
한 달 후.
아기가 생긴 건 아닌지 괜히 의식하게 됐다.
물론 아니었고 그날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이렇게 바로 생길 리가 없잖아.
첫 달은 그렇게 웃으며 넘어갔다.
또 한 달이 흘렀다.
우리는 휴가 준비가 한창이었고 괜스레 만약 임신이 됐으면 휴가는 어떻게 되는 거지 하는 김칫국부터 들이마시고 있었다.
그날이 가까워지자 괜히 아랫배가 쿡쿡 쑤시는 것 같고, 임신 준비를 하며 맘카페에서 수없이 봤던 증상 놀이가 바로 이거구나 싶었다.
분명 그날이 왔는데, 이게 착상혈인가 하며 극심한 생리통을 참아내며 남편에서 테스트기를 사오라고 했었다.
그리고 테스트기를 해보자마자 생리통 약을 벌컥 삼켰다.
우리는 서로 말은 하지 않았지만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피임을 안하는데 벌써 두 달째 아기 천사가 오지 않았다.
잘될 거야.
일단 오래 준비한 여행을 잘 다녀오자.
행복했던 일주일의 휴가.
돌아올 땐 눈물이 날만큼 즐거웠던 일주일의 휴가였다.
돌아와서도 한동안 여행병에 걸려있었다.
꼭 다시 가자며 매일 속삭이며 잠이 들었다.
그 여운이 점점 사라져 갈 때 선물이 찾아왔다.
뱃속에 싹튼 나의 생명.
그 기억을 영원히 잊지 말라고 나를 찾아와 준 것 같았다.
나의 아기.
나의 생명.
한 생명이 내 안에 자리 잡았다.
그리고 그 생명은 열 달 동안 좁은 나의 뱃속에서 무럭무럭 건강하게 자라주었고 엄마, 아빠를 얼른 만나고 싶었는지 예정일을 열흘이나 앞두고 태어났다.
나의 짧고도 길었던 열 달.
안녕 나의 로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