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미 Feb 09. 2020

조리원은 천국일까

나의 조리원 적응기

나는 그 흔한 무통주사 하나 없이 12시간 진통 끝에 자연분만으로 출산했다.

(물론 자의는 아니었으나 지금 생각해보면 가장 잘한 일)


몸은 빠르게 회복되어 갔고 2박 3일의 병원 생활을 마친 후 남들처럼 조리원으로 직행했는데 여기서부터 나의 감정선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출산 후 이튿날 밤.

온갖 축하와 안부인사로 정신없는 출산 후 첫날밤을 지내고 그다음 날이었다.


밤새 맨 정신에 온몸으로 겪었던 고통의 시간이 떠오르며 엄마가 됐다는 왠지 모를 복잡한 감정이 한데 뒤섞여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잠들기 전 남편 앞에서 펑펑 울어버렸다.


그리고 그다음 날 아침에 퇴원을 했다.


신생아실에서 나온 아가를 소중히 안고 행복해하며 남편과 어머님과 내가 함께 조리원으로 갔다.


조리원은 아기와 엄마, 아빠만 출입할 수 있어서 아기를 안고 왔던 우리 어머님과 조리원 문 앞에서 갑작스럽게 헤어지게 됐다.


거기서부터였다.


어머님에게서 아기를 건네받은 조리원 직원은 인사할 틈도 주지 않고 아기를 데리고 곧장 들어갔고 나와 남편은 서둘러 소독을 하고 입소 설명을 듣고 있었다.


안쪽에서 아기를 살펴보던 직원분의 목소리가 이따금 들려왔다.

'아기가 살짝 콧소리가 있어요'

'황달은 괜찮네요'

.

.

.

이런저런 설명을 듣고 방을 배정받았다.


조리원은 감염 및 개인위생에 엄격한 곳이었다.

문밖을 나갈 땐 항상 마스크를 착용하고 면회는 절대 금지.


지독하게 힘들게 아기를 낳았는데 나는 혼자 남겨졌다.


며칠 전 까지만 해도 내 안에서 힘차게 살아 움직이는 아가를 온몸으로 느끼며 참 행복했는데 누군가 아기를 쏙 빼앗아가 갈기갈기 찢긴듯한 몸뚱이 하나만 남겨진 것 같았다.


샤워를 할 때마다 내 안에서 빠져나간 아기의 빈자리를 보듯 홀쭉해진 배를 볼 때마다 눈물이 났다.

아직도 선명한 임신선이 그대로인데 더 이상 느껴지지 않는 태동이 야속했다.


조리원의 하루는 바쁘게 돌아간다.

오전, 오후 교육.

마사지.

한방치료.

수유 콜.

세 시간마다 유축을 하며 밤잠을 설쳤다.


외출을 하지 못하는 탓에 남편이 출근하고 혼자 방에 남겨져 있을 때면 창문가에서 바깥을 보며 일기도 쓰고 밥을 먹었다.

왠지 모르게 세상과 단절된 느낌이 들었다.

나는 여자가 아닌 엄마가 되었구나.

하루에도 몇 번씩 그 생각에 우울했다.


그러다 아기를 만나는 하루 1시간의 모자동실 시간에는 언제 우울했냐는 듯 아기를 안고 행복해했다.


물론 산후 조리원은 몸조리에는 탁월한 곳이다.

하루 세끼의 식사와 세 번의 간식을 싹싹 비웠다.


마사지와 한방치료로 몸은 빠르게 회복되어 갔고 좀처럼 추슬러지지 않았던 감정도 차차 진정되기 시작했을 무렵 퇴소가 가까워졌다.


외부와 단절된 채 갑자기 혼자 몸이 된 엄마들의 감정만 조금 챙길 수 있다면 조리원은 그래도 나름 지낼만한 곳일텐데.


생각해보면 갑자기 세상 밖으로 나와 엄마품이 아닌 플라스틱 침대에 누워있어야 했던 우리 아기도 힘들었겠다.


우린 서로를 그리워했겠구나.


그렇게 2주를 보내고 우리 세 가족은 집으로 왔다.


현실 육아가 시작되었고 그 모든 우울은 사라져 버렸다.

우울한 감정선의 해결방법은 함께 있으면 되는 거였다.



누가 조리원을 천국이라 했는가.



매거진의 이전글 임신 그리고 출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