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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단종'이 있다

[역사 탐방기] 영월에서 만난 슬픈 역사

by 최경식

본인은 그동안 한국사와 세계사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책에 담았다. 그런데 유독 많이 다뤄준 내용이 있다. 바로 조선의 제6대 군왕인 '단종'에 관한 것이다. 그만큼 해당 내용이 역사적으로 큰 의미가 있고, 개인적으로도 관심이 많이 갔었기 때문이다.


단종 이야기를 함에 있어 강원도 영월을 빼놓을 수 없다. 본인은 강원도에서 태어난 만큼, 어릴 때 아버지를 따라 영월에 몇 번 갔었다. 하지만 이곳이 역사적인 장소인 줄은 몰랐다. 지루하고 따분한 곳 정도로 여겨졌다. 하지만 역사 작가로 활동하는 지금에 와서 방문한 영월은, 그 어느 곳보다 흥미진진하고 애틋한 곳으로 여겨진다.


KakaoTalk_20250914_214059987_04.jpg 단종 유배지였던 영월 청령포의 전경. 방문한 시점은 올해 4월이다.

영월에서 가장 먼저 찾는 곳은 단종의 유배지였던 청령포다. 이곳은 사방이 강으로 둘러싸여 있다. 유배지에 들어가려면 배를 타고 가야 한다. '계유쿠데타'(계유정난이지만 본인은 쿠데타로 규정한다.)를 일으켜 권력을 장악한 수양대군과 그 일파는 단종을 노산군으로 강봉시킨 뒤 청령포로 유배를 보냈다. 앞서 단종 복위운동이 연이어 발생한 만큼, 수양대군은 단종을 그 누구와도 만나지 못하는 장소로 보내버렸던 것이다. 이때 단종의 나이는 고작 15세에 불과했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곳에서 한 많은 삶을 살던 단종은 이 나무의 줄기에 자주 걸터앉아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단종의 울음소리와 공허한 혼잣말을 모두 지켜봤다고 하여, 이 나무의 이름은 '관음송'이라고 불린다. 나이가 약 630세나 된 천연기념물이기도 하다.


뒤편에 있는 언덕을 따라 올라가면 수많은 돌들이 쌓인 '망향탑'을 볼 수 있다. 단종이 한양을 그리워하며 쌓았던 탑이라고 한다. 그 어린 나이에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지, 감히 상상이 가지 않는다.


청령포 주변에는 단종의 유배길을 호송했던 금부도사 왕방연이 쓴 시조비가 있다. "천만리 머나먼 길의 고운 님 여의옵고..." 단종의 죽음을 확인한 후 한양으로 돌아가던 왕방연이, 슬픈 마음을 달랠 길이 없어 냇가에 앉아 해당 시를 지었다고 한다.


청령포 관람을 마친 뒤 곧바로 단종의 무덤이 있는 '장릉'으로 향했다. 지금은 조선 군왕에 적합한 릉의 형식을 갖췄지만, 이렇게 되기까지 약 200년이 걸렸다. 오랜 기간 군왕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노산군으로 여겨지다가, 숙종 대에 이르러서야 복권이 되면서 무덤도 정비됐다.


더 가까이서 보고 싶었지만,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 울타리가 있어 더 이상 나아가지 못했다. 본인은 장릉을 오랜 시간 뚫어져라 쳐다봤다. 단종의 절절한 '애사'가 내 마음에 다가오는 느낌이 들었다.


여담으로 단종의 죽음에 관해 이야기하겠다. 이와 관련해선 다양한 기록들이 존재한다. '세조실록'에는 단종이 (단종 복위 운동을 주도한) 송현수가 교형에 처해졌다는 소식을 듣고 상심한 나머지 스스로 자결했다고 나와있다. 이에 세조는 단종의 죽음을 애석하게 여기며 그 시신을 후하게 장사 지냈다고 한다. 그러나 '선조실록'에는 단종이 사사된 것으로 나와있고, 정황 상 그 시신도 거의 방치되다시피 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야사'에 따르면 금부도사 왕방연이 세조의 명으로 사약을 들고 단종을 찾아왔는데, 왕방연은 차마 단종에게 사약을 건네지 못했고 그저 말없이 엎드려 대성통곡을 했다. 이를 본 단종은 자신의 최후를 직감하고 자결을 결심했다고 한다. 단종은 자신의 목에 줄을 맸고, 그 줄의 반대편 끝 부분을 방 밖으로 빼내 하인에게 힘껏 당기게 함으로써 생을 마감했다. 가엾은 어린 왕은 비정한 권력의 피비린내 앞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장릉에서 내려오다 보면 한 비각(정려각)이 보인다. '엄흥도'의 충절을 기리는 비각이다. 목숨을 잃은 단종의 시신은 고스란히 방치됐다. 보복을 당할까 두려워 아무도 그 시신을 수습하려 하지 않았다. 이때 영월 호장인 엄흥도가 나타나 시신을 몰래 수습했다. 자칫 역적으로 몰려 3족이 죽을 수도 있었지만, 그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며 용감히 나섰다. 홀로 관 등을 구입해 정중하게 장례를 치른 후 벼슬을 내려놓고 아들과 숨어 살았다고 한다. 훗날 영조는 엄흥도의 충절에 감복해 특별히 그를 모시는 별묘를 건립했다.


단종 애사는 우리나라의 가장 아픈 역사 중 하나일 것이다. 그동안 글과 드라마로만 접했던 역사였는데, 관련 장소에 직접 와보니 해당 역사가 더욱 깊이 있게 와닿았다. 단종은 비록 당대에는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했지만, 도도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되살아났다. 단종을 끝까지 지키려 한 만고의 충신들도 마찬가지다. 국민들은 단종과 충신들이 누구인지, 얼마나 애달픈 삶을 살았는지를 잘 알고 있으며 그들을 기억하고 추모한다. 반면 수양대군과 그 일파는 격하게 비난하고 손가락질한다. 이 같은 사례를 보면, 인물들은 당대에만 잠깐 살 것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영원히 사는 게' 중요한 것 같다. 독자들에게 기회가 되면 영월에서 단종을 만나볼 것을 권한다. 지나간 아픈 역사의 현장에서 애틋함과 역사의 의미를 느껴보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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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식 인문・교양 분야 크리에이터 직업 기자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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