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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t It Be

[역사 탐방기] 애비로드의 비틀스

by 최경식

'비틀스'. 이 위대한 그룹의 명칭은 아주 어릴 때부터 들었지만 크게 와닿지는 않았다. 오래전에 인기를 끌었고 지금은 사라진 '화석화된' 밴드 정도로만 여겼다. 그랬던 비틀스가 진심으로 내 마음에 와닿았던 것은 15년 전 초겨울이었다. 당시 본인은 어머니와 함께 강릉 경포바닷가를 걷고 있었다. 그때는 개인적인 일로 마음이 심란할 때였다. 어머니와 대화를 나누면서 마음이 가라앉기도 했지만, 이내 찾아오는 차가운 바다 바람은 마음을 다시 스산하게 만들었다.


얼마쯤 걸었을까. 먼발치의 한 카페에서 아름다운 피아노 소리가 들려왔다. 잔잔히 깔린 피아노 소리 위에 아름다운 목소리가 더해졌다. 어머니는 매우 반가워하며 환하게 웃었다. 본인도 익히 들어서 알고 있던 곡이었다. 비틀스의 'Let it be'였다. 폴 매카트니의 목소리와 피아노 및 기타 선율이 당시 초겨울 바다 분위기와 기가 막히게 어우러졌다. 황홀할 지경이었다. 음악을 감상하면서 그 안에 담긴 메시지를 음미하기도 했다. 'Let it be'는 '그냥 내버려 둬라'는 뜻을 갖고 있다. 폴 매카트니가 인생에서 어려움을 겪을 때, 꿈속에서 어머니를 만나 해당 말을 전해 듣고 음악을 만들었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힘든 시기를 보내던 본인에게 전해진 'Let it be'의 메시지는 커다란 위안으로 다가왔다. 풀리지 않는 어려움에 얽매여서 힘들어만 할 게 아니라, 마음 편히 순리에 맡기는 여유로움을 가져보자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때부터 본인은 비틀스의 광팬이 됐다. 이들의 명곡들을 열심히 찾아들었고, 유튜브에서 오래된 공연 영상들도 많이 봤다. 그러면서 비틀스가 탄생한 나라인 영국에 가서 이들의 흔적을 살펴보고 싶어졌다. 그 기회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2022년 10월에 영국 런던으로 출장을 가게 됐다. 6박 7일간의 출장 일정을 무난하게 소화한 뒤, 한국으로 돌아가는 마지막 날에 '애비로드'에 잠깐 가보기로 했다. 애비로드는 런던 캠던구와 웨스트민스터에 있는 거리였다. 이곳에 비틀스의 마지막 앨범인 <Abbey Road>를 녹음한 스튜디오가 있었다.


애비로드 전경.

설레는 마음을 안고 전철에서 내린 후 애비로드로 향했다. 가는 도중에 보이는 영국 특유의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청명한 가을 날씨는 기분을 매우 상쾌하게 만들었다. 약 15분 정도 걸어가자, 마침내 애비로드가 나타났다. 거리 주변의 아기자기한 건물들과 나무들이 예술적 정취를 자아냈다. 도보와 차길의 폭은 다소 좁았던 만큼, 위대한 팝의 역사가 탄생한 장소치고는 상당히 소박한 느낌이 들었다.


애비로드 스튜디오의 과거와 현재.

거리를 걸어가다가 왼쪽에 있는 한 건물에 애비로드 스튜디오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누구나 이곳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왜냐하면 스튜디오 건물 울타리에 비틀스를 기억하는 수많은 팬들의 메모가 붙어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아쉽게도 스튜디오 건물 내부로 들어가지는 못했다. 특별한 행사가 열리는 관계로 당일만큼은 스튜디오를 개방하지 않았다. 대신에 스튜디오 사진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사진은 스튜디오 곳곳의 과거와 현재를 정교하게 비교할 수 있게끔 해줬다. 여기서 탄생한 비틀스의 <Abbey Road>는 UK 앨범 차트 11주 연속 1위(총 17주 1위), 빌보드 앨범 차트 12주 연속 1위를 기록했다. 지금도 <Sgt. Pepper Lonely Hearts Club Band>와 더불어 비틀스의 최고작이자 팝 역사상 최고의 앨범으로 손꼽힌다.


비틀스의 수많은 명반들.

스튜디오 옆 건물에는 비틀스 관련 기념품을 판매하는 상점이 있었다. 비틀스의 수많은 명반들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몇 개의 앨범들과 티셔츠를 구입했다. 판매원은 본인에게 "한국인들이 자주 오는 편"이라고 귀띔했다. 머나먼 타지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으니 반가웠다. 상점은 끊임없이 사람들로 붐볐다. 저마다 즐거운 얼굴들을 한 채로 비틀스의 기념품들을 맞이했다.


이제 비틀스의 <Abbey Road> 앨범 표지 사진을 찍은 장소에 가볼 차례였다. 상점에서 나와 왼쪽으로 조금 걸어가다 보면, 그 유명한 장소에 도달할 수 있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와서 역사적인 장면을 재현 중이었다. 단체로 또는 개별로 비틀스가 건넜던 횡단보도를 지나갔다. 본인 역시 비틀스를 생각하며 횡단보도를 건넜지만, 미처 사진으로 남기지 못한 게 아쉬웠다. 원래 비틀스는 현대 음악의 정수를 담는다는 의미로, 앨범 제목을 '에베레스트', 표지 사진은 히말라야에 가서 찍으려고 했다. 하지만 계획이 틀어졌고, 스튜디오에서 가까운 횡단보도로 촬영 장소가 정해졌다. 현재 애비로드 스튜디오와 횡단보도는 세계적인 관광 명소로 자리 잡았으며, 영국 정부도 그 중요성을 인정해 2급 등록건축물로 지정했다.


히드로 공항에 있는 비틀스의 사진.

큰 감흥을 선사한 애비로드를 뒤로 하고, 귀국하기 위해 히드로 공항으로 갔다. 귀에다가는 무선 이어폰을 꽂고 비틀스의 'Let it be'를 들었다. 과거 경포바닷가에서처럼, 마음이 잔잔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비행기에 탑승하기 직전, 우연히 공항의 한쪽 벽에 붙어있는 대형 비틀스 사진을 봤다. 전설적인 4명의 멤버(존 레논, 폴 매카트니, 조지 해리슨, 링고 스타)가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마치 "고국으로 잘 돌아가"라고 인사하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히드로 공항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에도 비틀스의 사진을 봤었다. 영국 출장의 처음과 끝이 비틀스였다니. 그랬다. 영국은 '비틀스의 나라'였던 것이다. 팝 음악 본고장에서의 특별한 경험은 앞으로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https://youtu.be/AbNFLI720_U?si=-YLhso9Rq8BFDLE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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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식 인문・교양 분야 크리에이터 직업 기자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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