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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내전

[이야기] 160년 만의 위기

by 최경식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에 주방위군이 배치되고 있다. AFP=연합뉴스.

미국의 내부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다. 트럼프가 민주당 우세 지역에 치안 유지를 명목으로 군대를 배치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일리노이주 시카고에 약 500명의 주방위군을 배치했다. 앞서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와 수도인 워싱턴에도 주방위군을 투입했다. 오리건주 포틀랜드에도 병력 배치를 추진했다. 주방위군은 평소 주지사에게 지휘권이 있지만, 유사시에는 대통령의 지시로 연방군처럼 동원될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공격을 받고 있는 도시들은 결사적으로 저항하고 있다. 프리츠커 일리노이 주지사는 "대통령은 제정신이 아니고 치매까지 앓고 있다"면서 소송 전을 벌였다. 오리건주와 캘리포니아주는 오리건주에 주방위군을 투입할 수 없도록 해 달라며 오리건 연방지법에 가처분 신청을 냈고, 카린 이머거트 판사는 이를 받아들였다.


트럼프는 조금도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전 세계에 흩어져 있던 미군 장성들을 한 자리에 불러놓고, '내부에서의 전쟁'을 강조했다. 급기야 1807년에 제정된 '반란법'까지 거론하며 대립을 극단으로 몰아가고 있다. 반란법 발동은 사실상 '계엄령' 선포나 마찬가지다. 매우 엄격한 조건에서만 발동할 수 있는 이 카드를 언제라도 사용할 것처럼 보인다. 만약 이것이 발동된다면, 유혈 사태는 물론 '내전'에 준하는 사태까지 발생할 수 있다. 무엇보다 미국인들 각각이 총기를 소유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의 심각성을 가중시킨다. 언론에서도 '160년 만의 내전 위기'를 공개적으로 언급하기 시작했다.


<전쟁의 역사> 남북전쟁 편.

이런 상황까지 오자, 자연스럽게 160년 전에 발발했던 미국 내전사 '남북 전쟁'이 떠올랐다. 당시 미국은 북부연방과 남부연합으로 나뉘어 4년 간 대규모 전쟁을 치렀다. 노예제 갈등으로 촉발된 이 전쟁은 도덕(북부)과 경제(남부)의 정면충돌이었다. 자칫 미국의 분단이 영구화될 수 있는 위기 상황에서, 연방 지도자인 '에이브러햄 링컨'의 지도력이 빛을 발했다. 그는 훌륭한 리더십을 발휘해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고, 미국을 다시 하나로 통합시켰다. 이 과정에서 개인적 숙원이었던 노예 해방도 이뤄냈다. 링컨 이전의 미국이 각 주의 연합체 성격이 강했다면, 링컨 이후의 미국은 비로소 하나로 통합된 '미합중국'으로 거듭났다.


과거에 비춰서 현재를 돌아봤을 때, 가장 큰 문제는 트럼프가 링컨과는 정반대의 지도자라는 것이다. 링컨은 시종일관 통합과 관용, 민주주의를 내세웠지만, 트럼프는 주로 갈등과 혐오, 독재적 노선을 견지하고 있다. 정부 정책에 대한 반대 운동은 일어날 수 있다. 그것이 폭력적 수단을 동원해 극단으로 격화하지 않는다면,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용인하는 게 당연하다.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에서도 극단으로 격화하지 않은 집회와 결사의 자유를 최대한도로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미국에서 벌어지는 시위는, 폭력적 수단이 동원돼 극단으로 격화하는 수준까지 도달하지 않았다는 게 일반적 견해다. 그럼에도 트럼프가 군대를 동원하고 반란법까지 운운하는 것은 대단히 잘못된 처사다. 이는 건국의 아버지들이 독립선언문에 써놓은 헌법적 가치와도 맞지 않는다. 일각에서는 지지율이 떨어지고 내년 중간선거에서 패배가 확실시되는 트럼프가 위험한 정치적 도박을 하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제기된다. '내부의 적'을 만들어 실정을 덮어버리려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은 히틀러와 스탈린이 자주 구사했던 전법이기도 하다.


미국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천조국'으로 불리며 전 세계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던 국가다. 경제적 부와 군사적 힘에 더해 자유와 민주주의를 선도하는 초강대국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분열과 내전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이르렀다. 그동안 우리가 알았던 미국의 모습이 결코 아니다. 지도자 한 사람의 잘못된 처사가 어떻게 나라 전체를 위기에 빠뜨릴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미국은 160년 만에 중대한 시험대에 올랐다. 이를 어떻게 통과하느냐에 따라 미국과 전 세계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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