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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들이 기억해야 할 '두 인물'

[이야기] 조지 워싱턴과 에이브러햄 링컨

by 최경식

최근 미국의 주요 50개 도시에서 '노 킹스(No Kings)' 시위가 벌어졌다. 트럼프 행정부의 여러 정책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였다. 시위 참가자들은 미국 내 치안유지 목적의 군대 동원, 법원 판결 무시, 이민자 대거 추방, 대외 원조 삭감 등을 비판하며 거리를 행진했다. 비폭력, 평화적 방식으로 시위가 전개된 게 특징이었다. 트럼프가 종종 거론해 왔던 '반란법' 발동의 명분을 주지 않기 위해 각별히 신경 쓰는 모습이었다.


본인은 트럼프 집권 이후로 심각해진 미국의 내부 상황을 보면서 두 명의 인물이 떠올랐다. 바로 '조지 워싱턴'과 '에이브러햄 링컨'이다. 이들은 미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이념적 성향을 가리지 않고) 존경과 사랑을 받는 인물들이다. 어릴 때부터 익숙했던 두 인물이 새삼스럽게 떠오른 이유는, 현재 미국에서 위기에 처해있는 전통적 가치, 즉 민주주의와 국가 통합을 대표하는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조지 워싱턴이 이끄는 미군이 1776년 12월 25일 델라웨어 강을 건너고 있다.

조지 워싱턴은 미국의 초대 대통령이다. 뛰어난 군사적 능력을 발휘하며 '독립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독립 전쟁은 군사적 기적이나 다름없었다. 최강대국인 영국에 맞서 불가능해 보였던 승리까지 할 수 있었던 것은, 워싱턴의 맹활약이 심대한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본인은 독립 전쟁의 전개 과정에 관심이 많아, 저서인 <전쟁의 역사>에 담고 싶었다. 하지만 지면의 한계로 인해 담지 못한 게 아쉬웠다. 추후에 독립 전쟁을 자세히 다뤄볼 계획이다.)


그런데 미국인들은 훌륭한 군사 지휘관으로서의 워싱턴보다 대통령 워싱턴을 더 높이 평가한다. 주요 처신들을 살펴보면 그 이유가 나온다. 당시 사람들은 워싱턴을 '왕'으로 모시려고 했다. 많은 이들의 뜻을 담아 간곡히 요청했지만, 워싱턴은 이를 단박에 거절했다. 나아가 헌법에 임기 제한 조항이 없었음에도 대통령을 재선만 하고 물러났다. 마음만 먹었으면 종신 대통령도 가능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공화정과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는 물러나면서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서는 내가 물러나야 한다. 국민들이 함께 피 흘리면서 무너뜨린 폭정의 정치가 나의 3선 대통령 취임으로 다시 되살아날 수도 있고, 또는 민주적 가치를 무너뜨리는 선례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기실 워싱턴처럼 행동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절대 권력을 갖춘 이들은 거의 대부분 종신 독재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다. 더욱이 그 당시에는 왕정이나 군주제가 더 익숙한 정치 체제였다. 워싱턴의 위대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미국 대통령은 재선만 하고 물러난다는 아름다운 전통이 확립됐고, 미국은 민주적인 정치 시스템을 선도적으로 운영하는 국가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이 밖에도 워싱턴은 연방정부의 기반을 안정적으로 확립했으며, 중립외교 정책 및 국가의 재정 제도 등을 훌륭하게 정비했다. 지금까지도 미국인들이 워싱턴을 가리켜 "전쟁에서도 으뜸, 정치에서도 으뜸, 그리고 국민들의 마음속에서도 으뜸"이라고 말하는 이유가 명백한 셈이다.


에이브러햄 링컨이 1863년 11월 19일 게티즈버그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에이브러햄 링컨은 미국의 제16대 대통령이다. 링컨이 대통령으로 재임한 시기는 미국의 분열이 그 어느 때보다 극심했던 때였다. 급기야 북부연방과 남부연합으로 나뉘어 4년 간 '남북 전쟁'까지 치렀다. 링컨은 이 어려운 시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해 냈다. 남부연합의 반란에 군사적으로 단호하게 맞서는 것은 물론 포용의 리더십까지 발휘해 국가를 하나로 통합시켰다. 주변의 무수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남부연합의 지도자들을 관대하게 처리했으며, 남부연합 주들에 대한 보복도 금지했다. 이로 인해 (링컨 이전의 미국이 각 주의 연합체 성격이 강했다면,) 링컨 이후의 미국은 비로소 하나로 통합된 '미합중국'으로 거듭났다. 단적인 예로 이전에는 'The United States are~'이라고 복수형으로 표현해 주들의 연합체를 나타냈다면, 이후에는 'The United States is~'라고 단수형으로 표현해 하나의 국가를 나타냈다.


또한 링컨은 민주주의의 정수가 무엇인지를 위대한 언어로 보여줬다. 참혹한 전쟁터에서 행해진 '게티즈버그 연설'이 그것이다. 1863년 11월 19일, 링컨은 전사한 병사들을 위한 국립묘지 봉헌식 때 해당 연설을 했다. 당시 목격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링컨이) 망원경이라도 끄집어내는 것처럼 어색한 동작으로 일어나 안경을 고쳐 쓴 뒤, 원고에서 거의 눈을 떼지 않고 높은 음성으로 연설을 시작했다"라고 한다. 원래는 당대 최고의 웅변가였던 에드워드 에버렛의 1시간 연설이 주목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에버렛의 연설은 묻혔고, 고작 10개의 문장으로 구성된 링컨의 2분 연설만이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다. 미국의 건국 정신을 수호하기 위해 목숨을 바쳤던 병사들의 뜻을 이어받아, 살아남은 자들이 민주주의의 가치를 굳건하게 지켜나가야 한다는 요지의 연설이었다.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이 인용된 연설이자, 가장 위대한 연설로 손꼽히는 게티즈버그 연설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87년 전에, 우리의 선조들은 자유가 실현되고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원리가 충실히 지켜지는 새로운 국가를 이 대륙에 탄생시켰습니다. 우리는 지금 내전에 휩싸여, 우리 선조들이 그토록 지켜지길 원했던 국가가 오랫동안 존립할 수 있을지를 시험받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던 그 자리에 모였습니다. 우리는 조국을 구하려다 전사한 분들에게 마지막 안식처로서 이 전쟁터의 일부를 바치고자 합니다. 하지만 더 엄밀한 의미에서 보면, 이 땅을 봉헌하고 성지로 만드는 존재는 결코 우리가 아닙니다. 우리가 끼어들 여지도 없이 여기서 싸웠던 용감한 분들이 이미 이곳을 성스러운 공간으로 탈바꿈시켰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가 여기서 하는 말에 그다지 주목하지 않을 것이며, 오래 기억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들이 여기서 이뤄낸 업적만큼은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살아남은 자로서, 이곳에서 싸웠던 분들이 그토록 애타게 이루고자 염원했던 미완의 과업을 달성하기 위해 헌신해야 합니다. 우리는 대의에 헌신할 수 있는 커다란 힘을 그분들로부터 얻고, 그분들의 죽음을 결코 헛되이 하지 않겠다고 굳게 다짐함으로써 위대한 과업 달성에 헌신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헌신적인 노력을 기울일 때, 우리나라는 하나님의 가호 속에서 새롭게 보장된 자유를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가 이 지구상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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