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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바로 세우기

[이야기] 한국의 실패와 프랑스의 교훈

by 최경식

역사는 한 국가와 사회의 근간이다. 유구한 역사에 기반해 현재의 국가와 사회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다만 역사는 그냥 역사여서는 안 된다. 올바로 된 역사여야 한다. 만약 올바로 된 역사가 아니었다면, 추후라도 이를 세우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우리나라 역사를 살펴보면 안타까운 점이 많다. 역사를 바로 세우지 못하고 좌절했던 경험들이 많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친일파 청산에 실패한 것은 뼈아픈 일이다. 우리나라는 36년 간 일제의 지배를 받았다. 이로 인해 수많은 친일파들이 양산됐다. 해방 후 친일파들을 청산하는 것은 민족적 과제였다. '반민족행위 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가 출범해 친일파 청산에 나섰다. 하지만 철저히 실패했다. 이승만 정권은 친일파들을 두둔하면서 반민특위를 강제로 해산시켰다. 반공 이데올로기를 앞세우며 친일파 청산보단 온존을 선택했던 것이다. 결국 처벌을 받은 친일파는 단 한 명도 없었으며, 되레 기득권을 유지하고 풍요로운 삶을 지속했다.


이러한 실패의 역사는 추후 우리나라에 두고두고 악영향을 끼쳤다. 친일파와 그 후손들이 대를 이어 떵떵거리며 사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역사적으로 큰 잘못을 저지르고도 처벌을 받지 않을 수 있다는 부정적 기풍을 조성했다. 어제의 범죄를 소홀히 다룸으로써, 내일의 범죄에게 용기를 주는 셈이 됐다. 더욱이 일제강점기와 친일을 옹호하고 독립운동의 역사를 왜곡, 폄하하는 일까지 발생시키는 단초를 제공했다. 올바른 역사를 세우지 못한 데 따른 후과는 실로 엄청났다.


이쯤에서 자연스레 비교되는 외국의 역사가 있다. 프랑스의 '민족반역자 숙청'이다. 프랑스는 4년 간 나치 독일에게 지배를 당했다. 그 당시 자유 프랑스의 지도자였던 '샤를르 드골'은 해외로 망명해 반나치 저항 운동을 주도했다. 프랑스가 해방된 후 드골은 국내로 돌아와 민족반역자들에 대한 가혹한 숙청을 단행했다. 우선적으로 언론인, 작가들을 대거 숙청했다. 드골은 "이들이 도덕의 상징이었기에 가장 먼저 처단했다"라고 밝혔다. 이어 경찰, 군부, 중앙 및 지방 공무원들을 전방위적으로 숙청했다. 일각에서 숙청 대상자들에게 자비를 베풀라는 탄원도 제기됐다. 그 가족들이 찾아와 용서해 달라고 울부짖기도 했다. 그러나 드골은 숙청 대상자들을 '이미 죽은 사람' 취급했다. 그러면서 냉담하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들은 일찍이 우리의 곁을 떠났습니다. 사형 집행관들이 자신들의 의무를 다하길 바랍니다." 대기업 등 경제계도 숙청의 칼날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국가의 경제 문제를 감안하라는 지적도 있었지만, 드골은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경제계도 가혹하게 숙청했다. 반민족행위를 한 기업인을 처벌하는 것은 물론 소유주의 자산을 몰수하고 해당 기업 자체를 공중분해시켰다. 최종적으로 필리프 페탱을 비롯한 비시 정부 인사들까지 무자비하게 숙청함으로써 중대 과업을 성공적으로 완수했다. (자세한 내용은 저서인 <숙청의 역사-세계사편>에 담았다.)


숙청 규모를 종합적으로 살펴보면, 반민족행위 혐의로 수사를 받은 대상자는 약 100만 명에 달했다. 최고재판소와 숙청재판소에서 재판이 이뤄진 사건은 5만 7000건이었고, 7000명에게 사형이 선고됐다. 실제로 사형이 집행된 사람은 1000명에 육박했고, 유기징역형 3000명, 공민권 박탈형 3500명 등이었다. 시민재판소에서 재판이 이뤄진 사건은 11만 5000건이었고, 9만 5000명에게 부역죄가 선고됐다. 이 밖에 저항단체들의 즉결처분 등으로 죽임을 당한 민족반역자들이 셀 수 없을 정도였다.


프랑스에선 한국과는 완전히 다른 역사가 만들어진 셈이었다. 드골이 매우 단호하게 나온 이유는, '민족정기'를 바로 세워 후대에 이와 같은 민족반역자들이 다시는 나올 수 없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이때를 계기로 프랑스에서는 정의로움을 말하고 부정한 것을 거부하는 기풍이 생겼다. 훗날 프랑스가 또다시 외세의 지배를 당한다 할지라도, 국가와 민족을 배신하는 자들이 쉽사리 나올 수 없을 것이라는 전망에 무게가 실렸다. 올바른 '역사적 경험'의 힘이었다.


비록 우리가 과거에 올바른 역사를 세우지 못했다면, 추후라도 이를 세우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함이 마땅하다. 국가와 사회가 해당 작업을 하는 것은 물론 의식 있는 개인들도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본인은 역사 작가로서 이에 대한 나름의 사명감을 갖고 있다. 책을 집필하고 다양한 플랫폼에 글을 써서 역사의 진실을 알리는 게 우선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그러한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오프라인 현장으로 나가 제대로 된 역사 강연을 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민족사학자인 단재 신채호 선생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고 말했다. 어두웠던 역사를 반면교사로 삼아 올바른 역사를 만들어나가는 것은, 후손들의 미래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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