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독서] 니콜로 마키아벨리
"인간 본성과 권력 투쟁에 대한 통찰을 담은 정치철학의 고전"
<군주론>은 이탈리아 피렌체의 지배자였던 메디치가에 헌정된 책이다. 당시 이탈리아는 여러 도시국가로 분열된 채 이웃 국가의 침략에 시달려야 했다. 마키아벨리는 이탈리아가 통일되어 외세로부터 해방될 수 있기를 바랐으며, 탁월한 군주가 나타나 이를 실현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총 26장으로 구성된 이 책에서 군주가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는 방법에 대해 역사적 사례를 풍부하게 곁들여 조언하고 있다. 때에 따라서 군주란 권모술수와 악행을 적절히 이용할 필요가 있다고 권고하는 등 도덕적 기준에 반하는 내용 때문에, 마키아벨리라는 이름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정치가의 대명사로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세속에서 실현될 수 없는 도덕과 종교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국가 중심의 실제적 정치론을 역설함으로써 조국의 통일과 중흥에 기여하고자 했을 뿐이다. -책 본문 中
지금 존재하는 우리의 인생은 '첫째는 운명이며, 둘째는 이제껏 쌓은 덕망 덕분이며, 셋째는 역사가 부를 때 당신은 거기에 있었는가' 하는 세 가지로 결정됩니다.
다른 민족을 합병한 사람이 그들을 계속 지배하기를 바란다면, 다음의 두 가지 사실을 유념해야 합니다. 첫째로는 지난번 군주의 혈통을 끊어 버려야 할 것이고, 둘째로는 그들의 법률과 조세 제도를 변경시키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만 한다면 매우 짧은 기간 안에 정복자와 피정복자는 완전하게 일체가 될 것입니다.
여기에서 반드시 명심해야 할 점은, 그곳 원주민들을 잘 대접할 것이냐 아니면 완전히 박살을 낼 것이냐 하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이란 가벼운 피해에 대해서는 복수를 할 수 있지만, 치명적인 피해에 대해서는 그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원주민에 대한 억압은 복수를 할지도 모른다는 마음을 가질 수 없을 만큼 철저해야 합니다.
자유롭게 사는 데 익숙해 있는 도시의 지배자가 되었으면서도 그 도시를 완전히 해체하지 않는다면, 그 지배자는 저들로부터 오히려 붕괴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반란이란 항상 자유니 옛 법이니 하는 명목에서 그 동기를 찾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자유니 법이니 하는 것들은 상당한 시간이 흐르고 상당한 은총을 베풀어도 도무지 잊히지 않습니다.
군주가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두려움을 받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인가 아니면 그 반대인가 하는 의문입니다. 그 둘 가운데 하나를 포기하지 않을 수 없는 경우에는, 차라리 사랑을 받는 것보다는 두려움을 받는 것이 훨씬 더 군주를 편하게 해 준다는 점을 강조하는 바입니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인간이란 은혜를 모르고 변덕스럽고 가식이 많고 본심을 드러내지 않으며 위협을 피하고 싶어 하고 이익이 되는 일에는 걸신이 들려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남을 해치면서 남들로부터 두려움을 받고 있는 사람보다는 남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사람을 더욱 얕잡아 봅니다.
똑같이 잔인한 행동을 했으면서도 누구는 몰락한 반면에 누구는 안전할 수 있었다는 사실의 차이점은, 그 잔인함을 잘 이용했는가 아니면 잘못 이용했는가 하는 데에서 오는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잔인함을 선용했다는 것은 자신의 안전을 위해 단 한 번 행사하고, 그 뒤로는 그것을 되풀이하지 않고 오로지 백성의 이익을 위하여 할 수 있는 선행만을 하는 경우를 의미합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든지 착한 사람이 되기로 결심한 사람은, 착하지 못한 숱한 사람들 사이에서 파멸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자신을 부지하고자 하는 군주는 모름지기 악한 짓을 저지르는 방법을 알아야 하며, 그것이 언제 필요하고 언제 필요하지 않은가도 알아야 합니다.
국권을 잡은 사람은 그가 행하지 않을 수 없는 모든 악행을 심사숙고해야 하며, 악행을 저질러야 될 경우에는 한 번에 몰아서 해야 할 것입니다. 백성들이 아픔을 한순간에 느낄 수 있도록 하려면 악행은 한꺼번에 몰아서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백성들을 덜 동요시킵니다. 은전은 한 번에 조금씩 베풀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그 달콤함을 잘 맛볼 수 있습니다.
군주가 덕을 갖춘 것처럼 보인다는 것은 유익한 일입니다. 군주는 인자하고 신실하고 인간적이고 정직하고 종교적이어야 하며 또 실제로도 그렇게 행동해야 하지만, 마음을 굳게 먹고 그러한 덕과 반대되는 일을 해야만 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자세를 표변하여 능숙히 해낼 수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할 수만 있다면 도덕적으로 옳은 일을 저버려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을 경우에는 악행을 저지를 줄도 알아야 합니다.
군주가 동물의 형태를 선용하는 방법을 취할 필요가 있을 때는, 그들 가운데 여우와 사자의 형태를 취해야 합니다. 사려 깊은 군주라면 신의를 지키는 것이 자기에게 손해가 되거나, 약속하지 않을 수 없었던 사유가 소멸됐을 때에는 신의를 지킬 수도 없으려니와 지켜서도 안 됩니다. 인간은 사악하며, 또한 그들이 전하에게 지켜야 할 약속을 지키지 않기 때문에 전하께서도 그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에게 부담을 갖지 않습니다. 여우처럼 처신하는 방법을 가장 잘 아는 군주만이 그 시대의 일인자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능력을 가진 군주는 그것을 어떻게 은폐할 것인가를 아는 노련한 위선자가 되어야 합니다.
군주가 자신의 군대를 거느리지 못했을 때, 그의 지위는 안전할 수 없습니다. 만약 그에게 자신만의 군대가 없으면, 그는 전적으로 요행의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의 힘에 기초를 두지 않는 권세의 명성보다 허약하고 덧없는 것은 없다."
따라서 새로운 통치권을 장악한 새로운 군주는 다음과 같이 처신해야 할 것입니다. 셋째, 폭력을 쓰든 기만을 하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승리할 것. 다섯째, 군대가 자기를 따르고 존경하도록 만들 것. 여섯째, 자기를 해칠 수 있는 힘을 가졌거나 그럴만한 이유를 가진 사람들을 숙청할 것. 여덟째, 가혹하고 인자할 것.
사려 깊은 궁수는 자기가 맞히고자 하는 목표물이 너무 멀고 또 자기 활의 위력이 어느 정도인가를 알게 되면 목표물보다 더 높은 곳을 향하여 겨냥하게 되는데. 이는 그 궁수가 목표물보다 더 높은 곳을 맞히려 함이 아니요, 화살을 더 높이 쏨으로써 목표했던 것을 맞히고자 함입니다. 군주의 이상 또한 이와 같습니다.
시류에 따라 처신하는 군주는 성공할 것이고, 시류를 거스르는 군주는 실패하리라고 저는 믿습니다. 성공과 실패의 결과는 당시의 시류가 그 사람의 처신과 조화를 이루었거나 이루지 않았다는 이유밖에 없습니다. 최선의 방법이라 할지라도 그 성공의 여부는 시류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조심스러운 사람일지라도 대담하게 방향을 전환해야 할 시기를 맞이해서 어찌할 줄을 모르면 끝내는 파멸에 이르고 맙니다. 그러나 시류와 주변 상황에 따라 자신의 성품을 바꿀 수 있다면, 운명의 여신도 자신의 미소를 거두지 않을 것입니다.
#. 니콜로 마키아벨리
피렌체 공화국의 외교관, 철학자, 정치학자, 역사가, 극작가. <군주론>의 저자로서 근대 정치철학의 기틀을 만든 사상가다. 고대 철학이 '정치는 어떻게 되어야 할 것인가?'라는 당위적인 목표를 두고 도덕적 관점에서 정치를 서술했다면, 마키아벨리는 '정치가 실제 세계에서 작동하는 방식은 무엇인가?'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관점에서 근대 정치철학을 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