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독서] 카를 마르크스
"혁명의 과학, 노동자 계급의 영원한 성서"
1849년, 카를 마르크스는 영국으로 건너가기 직전 브뤼셀에서 유럽 전역을 휩쓴 혁명의 불길을 직접 보았다. 혁명이 성공하리라는 기대에 들뜬 마르크스는 그 기대를 담아 <공산당 선언>을 집필하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그의 간절한 소망과 달리 혁명은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 영국에서 경제학 연구를 시작한 마르크스에게는 당연히 혁명이 실패한 원인의 해답을 구해야 한다는 절박한 요구가 있었다. 그는 혁명이 의지나 소망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으며, '과학'이라는 지렛대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본론>은 바로 그 과학의 정수였다. 마르크스는 이 과학을 경제학에서 발견하였던 것이다. 우리는 <자본론>에 대한 다양한 견해를 겁낼 필요가 없으며, 그것이 100년도 더 넘은 책이라는 사실만으로 섣불리 예단할 필요도 없다. 그것은 단지 산으로 올라가는 길을 보여줄 뿐이며, 산을 올라가는 문제는 전적으로 우리의 문제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죽었다"라고 말하는 것은 가난과 노동의 불일치 문제를 외면하는 것이며, 이는 마치 "예수는 죽었다"라고 말하는 것이 인간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가난과 노동의 불일치가 존재하는 한, 그리고 자본주의가 존재하는 한, <자본론>은 영원한 '현재진행형'인 저작이다. -책 본문 中
#. [상품] 어떤 한 물적 존재의 유용성은 그 물적 존재를 사용가치로 만든다. 철, 밀, 다이아몬드 같은 상품은 그 자체로서 사용가치 또는 재화이다. 사용가치는 오로지 사용되거나 소비됨으로써 스스로를 실현한다. 또한 사용가치는 우리가 고찰하게 될 사회형태에서 교환가치의 소재적 담지자가 된다. 교환가치는 우선 양적 관계, 즉 어떤 하나의 사용가치가 다른 종류의 사용가치와 교환되는 비율로 나타나며, 이 비율은 때와 장소에 따라 끊임없이 바뀐다.
어떤 사용가치의 가치 크기를 결정하는 것은 오로지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량, 즉 그 사용가치의 생산에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뿐이다. 같은 크기의 노동량이 포함된 상품들, 또는 같은 노동시간에 생산될 수 있는 상품들은 같은 크기의 가치를 갖는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노동생산력이 높을수록 어떤 물품의 생산에 필요한 노동시간은 그만큼 작고, 또한 그 물품에 응결되어 있는 노동량도 그만큼 작으며, 따라서 그 물품의 가치도 그만큼 작아진다. 한 상품의 가치 크기는 그 상품에 실현된 노동량에 정비례하고, 그 노동생산력에 반비례하여 변동한다.
상품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단지 사용가치를 생산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타인을 위한 사용가치, 즉 사회적 사용가치를 생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상품'이 되려면 생산물은 교환을 통해 그것이 사용가치로서 쓰일 다른 사람의 손으로 옮아가야만 한다.
어떤 상품도 자기 자신에 대해 등가로서 관계를 맺을 수 없고. 따라서 자신의 자연적 형상을 자신의 가치표현으로 삼을 수는 없기 때문에, 모든 상품은 다른 상품과 등가로서의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으며, 다른 상품의 자연적 형상을 자신의 가치 형태로 삼아야만 한다.
어떤 상품(예를 들어 아마포)의 상대적 가치 형태는 자신의 가치존재를 자신의 몸체나 속성과는 완전히 다른 것(예를 들어 웃옷과 같은 것)을 통해서 표현하기 때문에, 이 표현은 그 자체가 벌써 어떤 사회적 관계를 배후에 숨기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한 상품의 단순한 가치 형태는 그 상품이 다른 종류의 한 상품과 맺는 가치관계나 교환관계 속에 포함되어 있다. 질적으로는, 상품 A의 가치는 상품 B가 상품 A와 직접 교환될 수 있다는 사실을 통해 표현된다. 양적으로는, 상품 A의 가치는 상품 B의 일정량이 상품 A의 일정량과 교환될 수 있다는 사실을 통해 표현된다. 달리 말해서 한 상품의 가치는 그것이 '교환가치'로 표시됨으로써 자립적으로 표현된다.
한 상품이 일반적 등가형태를 취하는 것은 오직 그 상품이 다른 모든 상품에 의하여 등가물로 선출되었기 때문이고, 또 반드시 그럴 경우에만 가능하다. 현물형태와 등가형태가 사회적으로 결합되는 특수한 상품은 이제 '화폐상품'이 된다. 즉 그것은 화폐로서 기능한다.
다른 모든 상품과 마찬가지로 금도 역시 단순한 교환 행위에서는 개별적 등가물로 기능하였고, 전개된 교환 행위에서는 다른 상품 등가물들과 나란히 하나의 특수한 등가물로 기능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금은 점차 때로는 좁은 범위에서 때로는 넓은 범위에서 일반적 등가물로서 기능하게 되었다. 상품 세계의 가치표현에서 금이 지위를 독점하게 되면서 금은 곧 화폐상품이 되고, 비로소 제4형태가 제3형태와 구별되며 또 일반적 가치형태는 화폐형태로 전화하는 것이다.
#. [교환과정] 이들 물적 존재가 서로 상품으로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상품보호자들이 자신들의 의지를 이들 물적 존재에 담아서 서로 사람 대 사람으로 상대해야만 한다. 즉 양쪽 모두가 서로 합의하는 하나의 의지행위를 통해서만 다른 상품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게 된다. 즉 그들은 서로를 사적 소유자로 인정해주어야만 한다.
모든 상품은 그 소유자에게는 사용가치가 없으며, 그것을 소유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사용가치를 갖는다. 그러므로 그것들은 모두 주인이 바뀌어야 한다. 그 교환은 이들 상품 간의 관계를 가치로 맺어주고 또 그것들을 가치로 실현시킨다. 그 생산물이 다른 사람들의 욕망을 충족시키는지는 오직 교환을 통해서만 증명될 수 있다. 이제 교환은 그에게 일반적인 사회적 과정이다.
다른 모든 상품은 화폐의 특수한 등가물에 불과한 반면 화폐는 그것들의 일반적 등가물이므로, 그 상품들은 일반적 상품으로써의 화폐에 대하여 특수한 상품으로 관계한다. 이미 살펴보았듯이 화폐형태란 다른 모든 상품의 관계가 반사되어 하나의 상품에 고정된 것일 뿐이다. 교환과정은 어떤 상품을 화폐로 전화시키면서 그 상품에 자신의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특수한 가치형태를 부여한다.
자본으로서의 화폐유통은 그 자체가 목적인데, 왜냐하면 가치의 증식이 끊임없이 갱신되는 이 운동 내에서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본의 운동은 무한히 계속된다. 화폐소유자는 이 운동을 의식적으로 수행하는 담당자로서 자본가가 된다. 자신의 모든 행동의 동기를 단지 추상적인 부를 더 많이 벌어들이는 데 두는 한 그는 자본가로 기능하는 것이며 또한 인격화된 자본으로, 즉 의지와 의식을 부여받은 자본으로 기능한다.
다시 말해 우회하여 화폐를 화폐와 교환하는 것, 즉 같은 것을 같은 것과 교환하는 것은 목적이 없고 무의미한 행동처럼 보일 것이다. 어떤 화폐액이 다른 화폐액과 구별되는 것은 오로지 그 액수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따라서 과정 G-W-G도 그 양쪽 끝이 모두 화폐이기 때문에, 그 과정의 내용은 이들 양쪽 끝의 질적인 차이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양적인 차이에 의해서만 이루어진다. 그래서 마지막에 유통으로부터 회수되는 화폐는 처음 유통에 투입된 것보다 많게 된다. 즉 '처음 투하된 화폐액+일정 증가분'이 된다. 이 증가분(또는 처음의 가치 이상의 초과분)을 나는 '잉여가치'라고 부른다. 다시 말해 스스로 가치를 증식한다. 그리하여 이 운동은 이 가치를 자본으로 전화시킨다.
가치가 전체 과정의 주체이며 가치는 이 과정을 통해 화폐와 상품으로 번갈아 형태를 바꾸면서 자신의 크기를 변화시키고 또한 자신의 본래 가치로부터 잉여가치를 만들어냄으로써 스스로를 증식시킨다. 왜냐하면 가치가 잉여가치를 부가하는 운동은 가치 자신의 운동이며 가치의 증식이고 따라서 자기 증식이기 때문이다. 가치는 오로지 화폐를 통해서만 자립적 형태를 갖는다. 그래서 화폐는 모든 가치증식 과정에서 항상 출발점과 종점을 이룬다.
#. [노동력] 어떤 상품의 소비에서 가치를 뽑아내려면 우리의 화폐 소유자는 운 좋게도 유통영역 내부(시장)에서 다음과 같은 특성을 갖는 하나의 상품을 발견해야 한다. 즉 자신의 사용가치가 곧바로 가치의 원천이면서 동시에 그것의 현실적 소비가 곧 노동의 대상화이자 가치의 창출이 되는 그런 상품을 발견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화폐 소유자는 시장에서 실제로 그런 특수한 상품을 발견한다. 노동능력(노동력)이 바로 그것이다.
자본은 생산수단과 생활수단의 소유자가 시장에서 자신의 노동력을 판매하는 자유로운 노동자를 발견할 때에만 비로소 발생하며, 이것이야말로 세계사적인 역사적 조건을 이룬다. 따라서 자본은 처음부터 사회적 생산과정의 한 시대를 알린다. 노동력은 그것을 사용함으로써만 실현되며 따라서 노동을 통해서만 스스로를 입증한다.
노동력의 소비과정은 동시에 상품의 생산과정이기도 하며 또한 잉여가치의 생산과정이기도 하다. 노동력의 소비는 다른 모든 상품의 소비와 마찬가지로 시장(유통영역)의 외부에서 이루어진다.
이곳에서는 자본이 어떻게 생산하는지에 대한 것뿐만 아니라, 자본 그 자체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한 것도 함께 밝혀질 것이다. 화폐증식의 비밀이 마침내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노동 과정은, 그것이 자본가에 의한 노동력의 소비 과정으로 수행될 때에는 두 가지 독특한 현상을 드러낸다. 첫째, 노동자는 그의 노동이 귀속되어 있는 자본가의 통제 아래 노동한다. 둘째, 생산물은 자본가의 소유물이지 직접생산자인 노동자의 소유물이 아니다. 노동자가 자본가의 작업장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그의 노동력의 사용가치(노동)는 자본가에게 속하게 된다.
#. (노동력에 기반한) 가치증식과정. 우리의 자본가는 두 가지 목적을 갖고 있다. 첫째, 그는 교환가치를 갖는 사용가치, 즉 판매하기로 되어 있는 상품을 생산하려고 한다. 둘째, 그는 생산을 위해서 필요한 상품의 가치 총액, 즉 그가 상품시장에서 상당한 화폐를 투하하여 구입한 생산수단과 노동력의 가치 총액보다 큰 가치를 갖는 상품을 생산하고자 한다. 나아가 가치 외에 잉여가치까지도 함께 생산하려 한다.
노동력의 가치와 노동과정에서 노동력의 가치증식은 서로 그 크기가 전혀 다르다. 자본가는 노동력을 구매할 때 이런 가치크기의 차이를 이미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런데 결정적인 것은 이 상품의 특수한 사용가치인데, 그것은 곧 가치의 원천이면서 동시에 자신이 지니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가치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는 바로 그 성질이다. 이것이야말로 자본가가 이 상품으로부터 기대하는 특수한 봉사이다.
생산수단(원료나 보조재료 또는 노동수단)으로 전화하는 자본 부분은 생산과정에서 그 가치크기가 변하지 않는다. 불변자본이라고 부른다. 반면 자본 가운데 노동력으로 전화한 부분은 생산과정에서 그 가치가 변한다. 이 부분은 자신의 등가와 그것은 넘는 초과분(즉 잉여가치)을 재생산하는데, 이 잉여가치도 변동할 수 있는 것이어서 커질 수도 있고 작아질 수도 있다. 가변자본이라고 부른다. 노동과정의 관점에서는 객관적인 요소와 주관적인 요소로(즉 생산수단과 노동력으로) 구별되는 자본의 구성 부분이 가치증식과정의 관점에서는 불변자본과 가변자본으로 구별된다.
나는 노동일 가운데 재생산이 이루어지는 부분을 필요노동시간이라고 부르고, 이 시간에 지출되는 노동을 필요노동이라 부른다. 노동자가 필요노동의 한계를 넘어서 땀을 흘리는 기간은, 그에게는 노동(곧 노동력의 지출)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으면서도 그를 위해서는 아무런 가치도 형성하지 않는다. 그것은 자본가에게 웃음을 보내는 잉여가치를 형성한다. 거기에 지출된 노동을 잉여노동이라 부른다.
자연히 가변자본에 대한 잉여가치의 비율은 필요노동에 대한 잉여노동의 비율이다. 그래서 잉여가치율은 자본에 의한 노동력의 착취도(또는 자본가에 의한 노동자의 착취도)의 정확한 표현이다.
자본가로서 그는 오로지 인격화된 자본일 뿐이다. 그의 영혼은 자본의 영혼이다. 그런데 자본은 단 하나의 생명력, 즉 자신을 가치증식하고 잉여가치를 창조하며, 자신의 불변 부분인 생산수단을 통해 가능한 한 최대한의 잉여노동을 흡수하려는 생명력만을 갖고 있다. 자본은 죽은 노동이며, 이 노동은 오직 흡혈귀처럼 살아있는 노동을 흡수함으로써 활기를 띠며, 그리고 그것을 흡수하면 할수록 더욱더 활기를 띠어간다.
자본은 노동력의 수명을 문제 삼지 않는다. 자본이 관심을 쏟는 것은 오로지 1노동일 가운데 사용 가능한 노동력의 최대한뿐이다. 결국 본질적으로 잉여가치의 생산이자 동시에 잉여노동의 흡수인 자본주의적 생산은 노동일의 연장을 통해서 인간 노동력의 위축을 낳고, 그로 인해 노동력은 정상적인 정신적, 육체적 발달과 활동의 조건을 빼앗기게 된다. 그것은 노동자의 생명시간을 단축시킴으로써 주어진 기간 동안 노동자의 생산시간을 연장하기 때문이다.
노동자가 자본가에게 자신의 노동력을 판매한 계약은 그가 자유롭게 자기 자신을 처분하였다는 것을 서면으로 증명하고 있다. 그러나 거래가 끝나고 나면 그는 자신이 결코 '자유로운 거래자'가 아니라는 것, 자신이 자유롭게 노동력을 팔 수 있는 시간은 노동력을 팔지 않으면 안 되도록 강제된 시간이라는 것, 그리고 사실상 그의 흡혈귀는 "아직 한 조각의 근육, 한 가닥의 힘줄, 한 방울의 피라도 남아 있는 한, " 결코 그를 자유롭게 놓아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하여 자기들을 괴롭히는 뱀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노동자들은 동료들을 규합하여 하나의 계급을 이룬 다음 강력한 국가법(즉 사회적 방지책)을 -스스로 자유의지에 따라 자본과 계약을 맺음으로써 자신과 자기 종족을 죽음과 노예상태 속으로 팔아넘기지 못하도록 방지하는- 쟁취해야만 하게 되었다. 그 결과 '양도할 수 없는 인권'이라는 화려한 표제 대신 "노동자가 판매한 시간이 언제 끝나며 그에게 속하는 시간은 언제 시작되는지를 궁극적으로 명백히 하는" 소박한 대헌장(즉 법적으로 제한된 노동일)이 나타난 것이다. 이 얼마나 기막힌 변화인가!
#. 카를 마르크스
독일의 역사·사회·경제·인문학자, 사상가, 작가, 언론인. 철학·사학·경제학·사회학에 두루 걸쳐 지대한 학문적 업적을 남겼으며, 특히 공산주의를 체계화하고 마르크스 경제학을 통해 자본주의의 작동원리에 대한 분석을 개진했다. 그의 사상인 마르크스주의는 주로 철학적 측면에서는 헤겔의 변증법과 포이어바흐의 유물론으로부터, 경제학적 측면에서는 애덤 스미스와 데이비드 리카도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그는 각 역사적 시대의 경제적 생산과 그로부터 발생하는 사회구조가 그 시대의 정치, 법, 종교, 예술 등의 기초가 되며, 따라서 원시공산제 사회의 해체와 계급제 사회 형성 이래의 모든 역사는 피착취계급과 착취계급 간 '계급투쟁'의 역사라고 보았다. 즉 그의 근본적인 사상은 한마디로 "토대가 상부구조를 결정한다"로 요약될 수 있다.